주체110(2021)년 3월 18일 《우리 민족끼리》

 

사회주의큰집을 떠받드는 사람들 (6)

 

전체 인민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어버이로 높이 모시고 한가정, 한식솔이 되여 고락을 같이하며 단합된 힘으로 전진하는 사회주의큰집.

이 큰집이 날이 갈수록 더욱 화목해지고 굳건해지고있는것은 과연 무엇때문인가.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을 자기의 깨끗한 량심을 다 바치는 길에서 인생의 참된 삶을 찾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에서 찾아보려 한다.

 

《이 사람이 바로 내 사위요》

 

얼마전 우리 본사로는 평양시 대성구역에서 사는 한 로인의 기고가 들어왔다.

기고의 내용을 그대로 소개한다.

... ... ...

나는 평양시 대성구역 미산2동 125인민반에서 사는 주민 피향미입니다.

현재 여든살이 넘은 나는 딸, 사위, 손자와 함께 행복하게 그리고 재미나게 살고있습니다.

내가 펜을 들게 된 리유는 단 한가지 우리 사위를 자랑하고싶어서입니다. 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매련없는 늙은이라고 비웃을수도 있을것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의 그 어디에나 사경에 처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피와 살까지도 서슴없이 바치고 운신 못하는 영예군인의 일생의 길동무, 부모잃은 아이들의 친부모가 되여 남을 위해 자신을 깡그리 바치는데서 삶의 보람과 긍지를 찾는 미덕, 미풍의 소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땅히 이런 사람들을 널리 소개하고 떠받들어야 할것입니다.

우리 사위도 이런 아름다운 인간들의 대렬에 당당히 들어설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지붕아래에서 같이 살고있는 사위에 대한 자랑을 한다는것이 멋적고 실성한것처럼 느껴져 지금껏 자제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꼭 한번만은 누가 뭐라든 묻어온 생각을 터놓으려고 합니다.

우리 사위는 정말 사람이 무던하고 인정이 많습니다. 특히 웃사람을 존경하고 위해주는 마음이 누구보다 뜨겁답니다. 물론 다른 집 사위들도 같겠지만 난 별스레 우리 사위가 누구보다 더 돋보이고 훌륭하게 느껴지군 합니다. 허허허.

25년전 맏아들네와 함께 살던 나는 뜻밖에도 뇌출혈로 쓰러졌지요. 사실 그때 사망선고를 받았었는데 사회주의보건제도의 혜택으로 두번 다시 살아났습니다. 수술은 성과적으로 되였지만 그 후유증으로 왼쪽반신을 잘 쓰지 못하는 장애자가 되고말았지요.

얼마 안있어 맏아들네 온 가족이 국가적조치로 해외에 나가 사업하다보니 딸과 사위가 나를 데려다 지금껏 돌봐주고있습니다.

옛말에 막내딸 시집보내려면 내가 가는것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딸자식을 시집보내는 부모의 서운하고 애석한 정을 표현한 말이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옛말로 되였습니다. 오히려 그 딸은 우리 가정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 반드시 있어야 하는 믿음직한 남편을 만났고 령감없는 이 늙은이도 기대고 의지하고싶은 친아들같은 사위를 맞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 사위는 저녁에 잠잘시간이 되면 내 잠자리를 펴주고 나를 눕힌후 팔다리도 주물러주고 아침엔 또 아침대로 아무리 바빠도 나를 부축하고 산보도 나간답니다.

공원을 한바퀴 돌고 들어와서는 옷과 양말을 벗겨준다, 치솔에 치약을 묻혀준다, 세면을 시켜준다 하며 그야말로 각근하고 싹싹하답니다. 지어 저녁마다 안해와 번갈아가며 내발을 씻어주는 사위의 모습을 보며 눈물흘린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지요. 내가 한손만은 쓸수 있다고 하는데도 사위는 그래도 불편할거라며 이렇게 극성이질 않습니까. 이젠 그것이 습관이 되여 그저 사위가 하자는대로 몸을 맡긴답니다. 허허허.

뭐 딸도 있는데 사위에게만 매달린다구요?

물론 딸도 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지요. 딸은 모란봉구역 도로시설관리소에서 일하고있습니다. 사위는 안해가 도로관리공으로 수고한다며 내 딸이 할 일까지 도맡아 할 때가 많답니다. 어떤 때는 나를 돌보는 문제를 가지고 량주끼리 재미나는 다툼도 열이 나서 하지요.

그때마다 사위는 안해에게 《옛날부터 사위는 장모 사위라고 하질 않소.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아오? 장모마음 사위가 제일 잘 알고 사위와 장모는 서로가 위해주는 마음이 뜨겁고 진실하기때문이요.》라고 말하군 합니다.

처음엔 내 딸도 남편의 그 말이 고마워 울먹울먹 하댔는데 지금은 습관이 되였는지 나를 남편에게 맡겨두고 제 할일만 할 때가 많답니다.

그렇다고 뭐 우리 사위가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지요. 오히려 누구보다 더 바쁘답니다.

우리 사위는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강좌장으로 사업하고있습니다. 아침에는 일반교원들보다 빨리 출근해야 하고 저녁에는 또 저녁대로 남보다 늦게 퇴근하면서 다음날 강의준비, 연구사업 등을 하지요. 최근에는 당 제8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해 자기 강좌에서도 새 교수방법을 연구도입하고있다나요. 또 굉장한 과학연구종자도 잡고 그것을 성공시키기 위해 전투를 벌린다고 합디다.

그런속에서 이 늙은이까지 돌본다는것이 헐한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누구보다 잠자리에도 늦게 들고 아침에 가정주부들처럼 빨리 일어나 집일도 하면서 이렇게 나를 극진히 돌봐주고있답니다.

자식이 부모마음 백분의 일만 알아도 효자라 하였는데 우리 사위는 내 심정을 다 알고있는듯 합니다.

나를 즐겁게 하는데서도 우리 사위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사위는 20년나마 한집안에서 살아오면서 명절일과 휴식일마다 변변히 걷지도 못하는 나를 부축하여 거리구경을 다닌다, 영화관과 극장에 관람을 다닌다 하며 극성입니다. 또 내가 적막감을 가질세라, 나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질세라 집안사람들을 불러앉히고 내가 좋아하는 윷놀이를 한다, 재미나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하며 웃음꽃을 피운답니다. 대학에서 퇴근하기 전에는 아무리 늦었어도 나에게 들려줄 재미나는 이야기나 유모아같은것을 《발굴》, 《채취》해가지고 오지요.

우리 집에서도 3.8국제부녀절을 즐겁게 쇤답니다. 3.8절에는 우리 사위가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 안해와 가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준비하여 상을 차리는데 정말 볼만 합니다. 료리솜씨는 어디서 익혔는지 내 구미에 딱 맞지요. 그저 사위가 하는 음식은 아무것이나 다 맛있습니다. 그때에는 밥 한그릇을 다 먹고도 곱배기를 할 때가 많지요. 허허허.

어머니날에는 또 어떻구요. 한가지만 이야기하겠는데 언제인가 어머니날에 사위는 봄향기화장품을 나에게 선물하는것이 아니겠소. 자기 친어머니도 아닌 이 가시어머니에게 말이지요.

그래서 난 《아니, 세흥이아버지, 이런것까지 나에게 선물할 필요야 없지. 그저 난 세흥이아버지가 옆에 있어주는것만도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야. 또 이렇게 늙고 얼굴에 주름이 많은 내가 화장을 한다고 고와지겠나. 난 일없으니 세흥이어머니에게나 주라구.》하고 말했지요.

그때 사위가 한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젊었을적에는 이런 화장품을 써볼 겨를도 없었을것입니다. 어머니는 전후복구건설, 사회주의대건설전투에 한몸을 깡그리 바치며 땀으로, 흙먼지로, 눈비로 얼굴을 <단장>했지요. 그래서 이렇게 늦게나마 이 유명한 봄향기화장품을 드리는겁니다. 어머니, 마음껏 젊어지고 고와지십시오. 어머니같은 혁명선배들이 생활의 활기와 랑만을 안고 건강해서 오래오래 앉아계셔야 우리 세대들도 힘을 얻고 일을 잘할게 아닙니까. 100살도 넘게 살아야 합니다.》

내 사위는 바로 이렇습니다. 이러니 내 어찌 청춘의 활력을 되찾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우리 사위가 가정일도 하면서 장모를 너무 극성스레 돌보느라 밖에 나가 맡은 일은 제대로 하기나 하겠는지 의심할수 있는데 그건 괜한 생각입니다.

부모에게 효도를 잘하는 사람 나라에도 충성한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 사위는 김책공업종합대학적으로도 손꼽히는 인민교원이고 교수, 박사입니다. 숱한 제자들을 석사, 박사로 키우고 인민경제 여러부문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한것으로 하여 많은 발명증서까지 받은 사회주의애국공로자입니다.

명절날에는 정말 굉장해요. 집으로 찾아오는 제자들이 너무 많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볶이군 한답니다. 허허허. 그럴 때면 내 딸은 하루종일 손님맞이, 음식차림에 괜히 바쁜체 뛰여다니고 반대로 난 사위와 함께 제자들속에 끼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요.

많은 제자들이 찾아오는데 거기에는 과학자와 교원으로부터 시작하여 벌써 젊은 나이에 련합기업소 기사장이나 성기관 책임일군으로 사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때는 내 사위에 대한 긍지로 더욱 가슴이 부풀어오르지요.

어느해 설명절날 우리 집을 찾아온 한 대학생제자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선생님의 강의시간을 제일 기다린답니다. 선생님의 강의내용은 얼마나 풍부하고 또 얼마나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의 임의의 질문에도 언제나 막힘없고 성의있는 대답을 주시는데 누구나가 감탄하고 존경하고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강좌장선생님의 그 지식과 열정, 품성을 따라배우기 위해 노력하고있습니다.》

우리 사위는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사위에 대한 자랑을 다 하자면 정말 끝이 없습니다.

나는 때때로 이런 생각도 해보군 합니다. 만일 자본주의나라에서라면 나의 운명이 어떻게 되였을가 하고.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인간의 참되고 고상한 륜리도덕이 여지없이 짓밟히고 개인의 편안과 안락, 패륜패덕이 《선진적》인것으로 미화되고 풍조로 되고있지요. 가족관계가 돈으로 얽혀있고 리해관계가 없어지면 부모처자도 서슴없이 버리는가 하면 재산을 위해서는 형제끼리도 서로 죽일내기를 하는 사회에서 과연 가정의 보존이나 평온, 행복에 대해 생각할수 있겠습니까. 아마 장애자인 나같은 늙은이는 버림받은지 오래되였을것이고 우리 가정의 운명도 비참해졌을겁니다.

그래서 미덕과 미풍이 가풍으로, 국풍으로 되여있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하는것이지요.

… … …

우에서 사위자랑을 많이 했는데 내 나라에 우리 사위와 같은 사람이 어찌 한둘뿐이겠습니까. 이 나라 가정의 자식들모두가 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다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 당이 우리 인민모두를 고상한 륜리도덕의 소유자들로, 훌륭한 사람들로 키워주었지요.

우리 수령님들께서 품들여 마련해주시고 우리 원수님께서 이끄시는 사회주의제도가 있어 온 나라 가정들에 언제나 행복의 노래소리, 웃음소리가 넘쳐납니다. 또 이런 화목한 가정들로 이루어진 내 나라가 덕과 정이 차넘치는 하나의 대가정으로 서로 돕고 이끌며 복락을 누려가고있는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럴수록 고마운 사회주의제도에서 복된 삶을 누려가는 긍지가 더욱 넘쳐나고 이 고마운 제도를 위해 비록 늙은 몸이지만 무엇인가 하나라도 더 해야겠구나 하는 자각을 더욱 가다듬게 됩니다.

앞으로 남은 여생을 자식들모두가 고마운 우리 당의 혜택을 잊지 않고 나라일에 전념하게 하며 손자, 손녀들도 대를 이어 우리 원수님을 받드는데서 충신, 효자가 되도록 교양하고 이끌어주는데 바치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매련없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사위자랑을 통해 누구에게라 없이 하고싶었던 말입니다.

훌륭한 사위들을 두고있는 온 나라 가정의 로인들의 심정을 담아 미숙하기 그지없는 소박한 자작시로 글을 끝맺으려고 합니다.

 

자랑많은 우리 사위

 

힘들고 외로울 때 먼저 찾는 사람

기쁘고 즐거울 때 기다리는 사람

사랑과 정으로 가정을 이끄니

언제나 마음 든든 내 사위일세

 

풍채좋고 재산많아 자랑이던가

말잘하고 인물잘나 자랑이던가

부모에겐 효도하고 나라엔 충성하니

이런 사람 제일가는 내 사위일세

 

가시부모 대할 때는 내가 낳은 아들이요

처제들을 대할 때는 믿음직한 오라버니

가정이 화목하니 만사가 다 잘되고

온 나라엔 덕과 정 그득그득 차넘치네

 

우리 당의 손길아래 꽃펴난 대화원

세상 제일 우리 제도 지키고 빛내이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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