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8월 9일 《우리 민족끼리》

 

어머니의 모습

 

며칠전이였다.

내가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는데 발자국소리만 듣고도 늘 밝고 생기에 넘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던 동생이 그날은 웬일인지 조용했다.

나를 깜짝 놀래우려고 어디 숨은건 아닐가?

그러나 예측과는 달리 조금 열려진 방문사이로는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며 연필방아만 찧고있는 동생의 모습이 안겨들었다.

나는 금시라도 《누나-》하고 달려나오기를 기대하며 《우리 청남이 어디 갔나?》하고 능청을 부리였지만 그래도 동생은 요지부동이였다.

이상한 생각속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책상우에는 사진첩이 펼쳐진 가운데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이 정히 놓여있었다.

《청남아, 무슨 일이 있었니?》

내가 거듭 물어서야 동생은 그날 문학시간에 선생님이 숙제로 《어머니》라는 제목의 글을 지어오라고 하였다는것이였다.

아직은 동심이 더 많은 14살, 누구보다도 숙제장에 자식을 위해 온갖 사랑과 정을 다 쏟아부었을 어머니에 대한 자랑을 한가득 쓰고싶었으리라. 또 그것을 선생님과 동무들앞에서 어깨가 으쓱하게 읽고싶었으리라. 어머니는 나를 제일로 사랑하신다고, 내가 바라는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해주신다고

그러나 어이하랴.

어머니는 청남이가 2살 잡히던 해에 불치의 병으로 돌아가시여 동생에게 있어서 어머니에 대한 표상은 몇장의 사진으로밖에 가질수 없었던것이다.

상념에 잠겨 덤덤히 창가를 바라보는 나에게 동생이 다우쳐 물었다.

《누나, 누나는 기억하겠지?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나의 가슴속에서는 10여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이 다시금 회오리치기 시작하였다.

어머니, 꿈결에도 그리워 찾으면 금시라도 달려올것만 같은 나의 어머니, 하지만 나는 너무도 이르게 떠나가신 어머니를 두고 우리 어머니는 이런 모습이였어 하고 확신에 넘쳐 말해줄수 없었다.

대답만 애타게 기다리는 동생에게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던 나의 눈에 문득 펼쳐진 사진첩속의 한장의 사진이 비껴들었다. 청남이가 소학교에 입학하던 날 나라에서 공급해준 새 교복을 입고 동안의 초급녀맹위원회 어머니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였다.

녀맹위원장어머니의 품에 안겨 밝게 웃고있는 동생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수년세월 우리들에게 혈육의 사랑과 정을 다 기울여준 고마운 어머니들의 모습을 눈앞에 하나둘 떠올리게 하였다.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의 어머니라며 명절날과 생일날은 물론 수시로 찾아와 방안도 함께 거두어주고 구미에 맞는 음식도 만들어주군 하던 녀맹위원장어머니, 집에 자주 찾아와 숙제검열도 해주고 학습장에 《어머니 보았습니다.》라고 수표까지 곱게 해주군 하던 한 초급단체위원장어머니

언제인가 내가 학교운동회에서 사람찾기경기에 나갔을 때에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나의 손목을 꼭 잡고 달리시였고 우리 오누이가 학기말시험에서 모두 최우등을 하였을 때에는 정말 용타시며 별식까지 차려놓고 축하해주시던 인민반장어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나의 가슴을 뜨겁게 적시여준다. 

그런가운데 옆집에서 살고있는 할머니가 하시던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몇해전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부터 우리 오누이걱정으로 이틀이 멀다하게 집을 찾아오시는 할머니는 숱한 어머니들의 진정어린 모습을 보시고는 《에그, 이 할미는 그저 마음뿐인데 다들 곁에서 어찌나 극성인지 꼭 네 어머니를 보는것만 같구나.》라고 뇌이시였다.

그리고 우리 오누이가 구역안의 당, 정권기관 일군들, 학교의 선생님들과 동, 인민반의 아버지, 어머니들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있는속에 당의 은정이 깃든 소나무책가방과 학용품을 받아안고 좋아라 웃고 떠들며 찾아오는 사람들앞에서 자랑까지 해가는 모습을 보시였을 때에는 소리없이 고마움의 눈물만 흘리시였다.

그때 할머니는 눈물을 닦아드리며 왜 다들 친자식도 아닌 우리들을 위해 이렇게 마음을 쓰는가고 묻는 나에게 이렇게 조용히 이르시였지.

《그거야 당의 사랑을 안겨주려는 마음때문이지. 너희들이 부모가 없다고 불쌍해서 그러겠니. 우리 당의 품에서는 얼굴에 그늘이 지는 자식이 단 한사람도 있어서는 안되기에 모두가 너희들을 위해 그토록 마음쓰는것이란다. 너희들은 이 고마운 제도, 당의 은덕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다 몰랐던, 말을 하고해도 끝이 없는 얼마나 위대한 사랑이 우리 집 창가로 따스히 스며들었던가.

태여날 때에는 누구나 애기궁전이라 정담아 부르는 사랑의 요람이 우리를 따뜻이 품어주었고 자라면서는 배움의 종소리가 정다운 교정으로 우리를 불러 끝없는 희망과 포부를 안겨주었다. 그 나날 바로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사랑의 왕차가 하루와 같이 학교로, 병원으로 거리를 누비며 달리였고 잠시라도 아플세라 의사선생님들이 깊은밤에도 우리 오누이를 찾아와 건강을 돌봐주었다.

이뿐이랴. 언제나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는 그 품속에서 나는 노을빛으로 붉게 타는 넥타이도 소중히 받아안았고 혁명의 계승자, 교대자라는 크나큰 믿음과 함께 청년동맹원의 영예도 지니였다.

정녕 이렇듯 다 헤아릴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이 있어 우리 오누이가 지금과 같이 자그마한 구김살도 없이 행복하게 자라고있는것 아니던가.

나는 생각했다. 부모없는 우리 오누이가 개인의 안락을 위해서라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지어 목숨을 앗아가는것도 서슴지 않는 자본주의사회에서 태여났더라면 어떻게 되였을가 하고.

아마 절망과 불행속에서 부러움없는 이 복된 생활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것이다.

나는 비로소 동생에게 어머니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하겠는가를 깨달았다. 나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된 추억들을 그대로 말해주리라. 그러면 그것이 그대로 우리 오누이에게 친혈육보다 더한 사랑을 안겨준 진정한 어머니품에 대한 이야기로 된다고.

사진첩의 사진들을 가리키며 나는 다정히 속삭이듯 말하였다.

《자, 봐라. 언제나 우리를 따뜻이 품어안아 보살펴주고있는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야.》

당의 따뜻한 보살핌속에, 혜택속에 언제나 씩씩하고 명랑하게 자라온 우리 오누이의 밝은 모습들이 담긴 사진첩을 한장한장 번져가며 다시금 유심히 들여다보는 동생의 얼굴에는 희열이 어리기 시작하였다. 지나간 추억들을 되새겨보는듯 도간도간 생긋이 웃기도 하였다.

《청남아, 우리 함께 글짓기를 하자. 우리에게도 어머니가 있어. 사회주의 조국, 당의 품이 바로 우리의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안아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이 아니겠니.》

동생은 힘차게 머리를 끄덕이며 학습장을 다시 펼치고 한자한자 글을 써나갔다.

어머니! 그날 밤 나는 더욱더 깊어만지는 생각으로 자못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조용히 불러만보아도 따스한 손길과 정겨운 시선이 온 몸에 와닿는것만 같아 마음은 더없이 안온해지고 행복의 무아경속에 잠기게 하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우리곁에 있어 우리는 고아라는 말을 모른다. 부모없는 설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어머니의 따스한 품이 다름아닌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신 우리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어버이로 높이 모신 사회주의 내 조국, 당의 품이여서 더욱 긍지스럽고 가슴은 터질듯 부풀어오른다.

나는 소리높이 웨치고싶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나의 이 절절하고도 격조높은 마음속 고백을 그대로 담았는가 어디에선가 노래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어머니께 삼가 드릴 꽃송이 엮으려니

손닳도록 쓰다듬어주며 키운 정 사무칩니다

비바람 불수록 날이 찰수록 껴안아주실 때

눈비에 얼어든 어머니옷자락 왜 그리 따스했던지

심장을 불태워 날 안아 키워준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평양가방공장 로동자 리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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