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8월 29일 《우리 민족끼리》

 

일제의 만고대죄를 반드시 결산할것이다

 

일제에 의해 《한일합병조약》이 날조공포된 때로부터 어언 111년이 되였다.

1905년 11월 《을사5조약》의 날조로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이를 합법화, 영구화하기 위하여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였다.

일제는 《합병을 위해서는 위력이 필요》하며 《미개한 인민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보병보다 오히려 외관상 위엄이 있는 기병이 필요하다.》는 오만무례한 넉두리를 늘어놓으면서 서울에 2 626명의 병력과 309필의 군마를 집중시키고 군함에 의한 《위협시위》도 감행하는 등 계엄상태를 조성하는 한편 조선봉건정부의 대신들을 협박공갈하여 8개조항으로 된 《조약》을 강압적으로 날조하였다.

일제는 이 강도적인 《조약》에서 조선의 통치권을 완전하고도 영구히 일본왕에게 넘기며 조선을 일본에 《병합》한다는것을 규정하였다.

이로써 일제는 형식상으로나마 존재하던 조선봉건국가를 완전히 없애버리였다.

놈들은 조선인민의 거세찬 반일투쟁앞에 겁을 먹고 발표하지 못하고있다가 8월 29일에야 일본왕의 《칙령》으로 공포하였다.

불법적인 《을사5조약》에서 발원하였으며 군사적위협과 공갈밑에 강압적으로 날조된 《한일합병조약》은 철두철미 비법적이며 무효한것이다.

일제의 이러한 특대형죄악에 대해 조선봉건왕조의 마지막황제였던 순종은 림종직전에 한 유조(일종의 유서)에서 《지난날의 <한일합병>인준은 강린(일제를 가리킴)이 역신의 무리와 더불어 제멋대로 선포한것으로서 내가 한바가 아니다.》, 《당시 일제는 나를 유페하고 협박했다.》고 폭로하였다. 더우기 1910년 8월 29일에 공포된 《병합》을 알리는 순종황제의 《칙유문》에는 황제의 서명도 국새날인도 없었으며 이와 반면에 같은 날에 공포된 일본왕의 《조칙문》에는 국새와 함께 서명이 찍혀있었다.

이것은 《한일합병》이 《순종황제의 승인을 거쳐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일본의 주장이 완전한 허위이며 《한일합병조약》이야말로 일제가 조선을 병탄하기 위해 강권을 발동하여 날조한 불법비법의 문서라는것을 여실히 립증하여준다.

일제는 이 《조약》을 날조한후 조선에서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를 더욱 강화하였다.

그러나 조선인민은 강도적인 이 《조약》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반대하여 줄기차게 투쟁하였다.

제반 사실은 일제야말로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를 실현하기 위해 국제법과 해당 나라의 자주권은 안중에도 없이 《조약》을 마구 날조하여 이 땅을 비법적으로 강점한 침략자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이러한 부정할수 없는 력사적사실과 과학적증거앞에서도 일본반동들은 《한일합병조약》이 《조선인의 선택이였다.》, 《완전한 절차를 밟은것이였다.》고 억지주장을 펼치며 조약아닌 《조약》에 《합법성》을 부여해보려고 무진애를 쓰고있다.

더우기 우리 나라를 불법적으로 강점하고 40여년간이나 갖은 고통과 불행을 들씌운 치떨리는 만행에 대해 응당 사죄하고 배상할 대신 오늘까지도 력사외곡과 령토강탈책동에 집요하게 매달리고있다. 최근에는 《방위백서》와 《외교청서》에서 또다시 《독도령유권》을 주장하고 도꾜올림픽경기대회와 관련한 홈페지에 독도를 《일본땅》으로 표기한 지도를 뻐젓이 게재하였는가 하면 올림픽경기마당에 《욱일기》가 펄럭이게 하는 등 뻔뻔스럽고 오만한 추태를 거리낌없이 부리였다.

지금 온 민족은 추호도 묵과할수 없는 일본반동들의 뻔뻔스러운 행태를 보면서 과거 일제가 저지른 만고대죄를 반드시 결산하고야말 의지로 피를 끓이고있다.

오늘의 조선민족은 강도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노예살이를 하던 약소민족이 아니다.

과거 죄악을 부정하며 어리석은 망상을 하는자들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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