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11월 28일 《로동신문》

 

그는 오늘도 전화의 당원으로 살고있다

지난 70년간 입당할 때 다진 맹세를 변함없이 지켜오고있는 주재현전쟁로병의 생활을 더듬어보며

 

한 로당원이 지금 우리앞에 있다.

만경대구역 만경대동 73인민반에서 살고있는 전쟁로병 주재현동지.

가렬처절했던 전화의 나날 불타는 고지에서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닌 때로부터 지난 70년간 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켜 한생을 불같이 살아온 참된 로당원,

세월은 흘러 육체적로쇠는 피할수 없어도 로병의 심장속에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간직되여있는것은 전화의 언덕에서 지니였던 당원의 값높은 영예였고 그것을 빛내이려는 순결한 당적량심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당원이 되는것도 영예이지만 그보다 더 값높은 영예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원의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계속 빛내여나가는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9년전 주재현전쟁로병은 년로보장을 받았다. 한생을 총대와 함께 살것을 결심하고 나라의 군사인재들을 키워내는 교육기관에서 70살이 넘을 때까지 교원, 연구사로 복무한 그였지만 세월의 흐름이란 어쩔수 없는것이였다.

수속을 끝내고 집에 들어온 첫날부터 그는 허전한 마음을 달랠길 없어 안절부절 못했다.

(아직은 오륙이 성한 내가 이렇게 그냥 앉아있을수야 없지 않은가. 더우기 나야 전쟁때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당앞에 충성다할것을 맹약한 당원이 아닌가.)

바로 그랬다. 고향이 공화국남반부인 그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군대에 의해 마을이 해방되자 미제와 그 앞잡이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선참으로 의용군에 탄원한 조선인민군 전사였고 포연서린 전화의 나날에 입당을 한 당원이였다.

총포탄이 작렬하던 결전장에서 그는 당이란 무엇이며 당원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알게 되였다.

어느날 그는 같은 소대에서 복무하던 자기보다 나이가 12살이나 우인 한 당원과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조선로동당은 어떤 조직인가고 묻는 그에게 그 당원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조선로동당은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의 선진분자들로 무어진 김일성장군님께서 창건하시고 령도하시는 당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은 불시에 숭엄해졌다. 아직은 당에 대한 인식이 완벽하지는 못했어도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조선로동당에 대한 흠모의 열기는 그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주었다.

불쑥 그 당원이 부러워났다. 언제나 당결정을 집행하기 위해 전투의 맨 앞장에서 달려나가군 하는 그와 같은 당원이 하루빨리 되고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것이 먼 앞날의 일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오게 될줄 어찌 알았으랴.

하루는 정치부대대장이 민청초급일군인 그를 찾아와 민청사업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하여 알아보고나서 당원이 되고싶은가고 묻는것이 아닌가.

갑작스러운 물음에 어리둥절했던 그는 그만 《저같은게 어떻게 당원이 될 생각을 다 하겠습니까.》 하고 기여드는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정치부대대장은 지금과 같은 전쟁시기에는 싸움 잘하는 군인이 기본이다, 동문 전투마다에서 언제나 용감했고 민청사업도 잘하니 능히 당원이 될수 있다고 하면서 오늘부터 당규약학습을 하라고 하는것이였다.

아, 조선로동당원!

그때처럼 가슴이 세차게 높뛴적은 없었다.

(당과 수령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어떻게 바쳐야 하는가?)

그후 그의 모든 사고와 실천은 이 한곬으로만 흘렀다.

일생에서 가장 잊을수 없었던 날인 주체41(1952)년 2월 20일 그는 자기의 입당을 심의하는 당세포총회에서 이렇게 맹약했다.

당과 수령을 위해, 조국과 인민을 위해 미제침략자들을 쳐물리치기 위한 결전에서 마지막피 한방울이 남을 때까지 용감히 싸울것이며 한생을 영원히 당에 충성다하겠다는것을.

이것은 그 어떤 말이 아니였다. 그것은 당기앞에서 다진 한 인민군전사의 깨끗한 량심이였고 억척의 신념이였다.

그가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여 위훈을 세울수 있은것도 특히 기적의 15분이라는 전투신화로 력사에 기록된 351고지공격전투의 돌격서렬에서 고지를 점령하고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고지를 마지막까지 사수할수 있은것도 그의 심장속에 이런 순결한 당적량심, 불변의 신념이 간직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이렇게 당원이 되기보다 당원구실을 하기가 더 힘들다는것을 1950년대 전화의 나날에 피로써 체험한 그였기에 수십년세월을 하루와 같이 포연탄우를 헤치던 전화의 그때처럼 살고있는가를 항상 자각하며 변함없는 복무의 길을 걸어왔던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그 길에서 물러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 무너져내리는듯싶었다.

그는 집안을 빙 둘러보았다. 집벽면을 가득 채운 영광의 기념사진들과 수많은 선물증서들, 군복에 달려있는 훈장과 메달들이 새삼스럽게 안겨왔다. 자기에게 베풀어준 당의 사랑과 믿음을 되새겨볼수록 보답의 길에서 한치도 물러설수 없다는 결심이 백배해졌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일어섰다.

(나의 복무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 숨이 지는 순간까지 전화의 당원으로 살자!)

다음날 그는 만경대동에서 살고있는 전쟁로병들과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조국의 부강번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일을 찾아할것을 이야기하는 그의 제의에 로병들모두가 한결같이 응해나섰다. 그리하여 로병들은 만경대혁명사적지관리사업에 떨쳐나서게 되였다.

그들은 매일 사적지주변의 산발들을 오르내리며 산불위험이 없는가를 살펴보았고 장마철피해막이사업과 주변에 나있는 도로관리도 진행하였다. 한편 모내기철이면 배낭을 지고 구역안의 농장들을 찾아가 농장원들의 일손도 도와주는 등 스스로 많은 일들을 찾아했다.

로병들의 적극적인 지지에 의해 책임자가 된 주재현전쟁로병은 모든 일에서 모범이 되여 그들을 이끌었다. 눈오는 겨울에도,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장마철에도 그의 일과는 변함이 없었다. 이렇게 또다시 10여년세월이 흘렀다.

사실 고령의 나이인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이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 한번 힘들다고 주저앉거나 물러선적이 없었다.

그러던 그의 인생길에 또 하나의 차단봉이 내려지게 되였다. 몇해전부터 로환으로 더는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였던것이다. 그는 몸부림쳤다.

(이제는 이것으로 모든것이 끝나는것인가. 아니다. 절대로 그럴수 없다. 나에게는 두손이 있지 않는가. 심장이 고동치는한 복무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여 그가 스스로 당적분공으로 맡아안은것이 후대들에게 위대한 조국수호정신을 심어주는것이였다.

지팽이를 짚고 일어선 그는 많은 단위들을 찾아가 상봉모임에 직접 출연하여 전쟁의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새세대들의 가슴마다에 1950년대 조국수호자들의 수령보위, 조국수호, 명령관철의 정신을 심어주었고 손에 필봉을 억세게 틀어쥐고 전투수기를 비롯한 도서집필사업에 온갖 정력을 쏟아부었다.

그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였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탓할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로동생활은 나이와 함께 끝날수 있어도 당원의 당생활에서는 년로보장이란 있을수 없다는 삶의 지론을 심장에 장약했기에 그는 여생을 당적분공수행과정으로 일관시켰던것이다.

당원은 한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물음에 훌륭한 대답을 준 주재현전쟁로병,

그는 오늘도 전화의 당원으로 참된 복무의 길을 변함없이 걷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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