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1월 28일 《로동신문》

 

평범한 당원이 남긴 마지막당부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 상원건설사업소 작업반장이였던 한철호동무

 

그는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였다. 다른것이 있다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작업반장이라는것이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동지들은 그의 수첩에서 이런 글을 발견하였다.

《나의 생명 2198554 당을 따라 끝까지

정다운 작업반동지들, 세포당원동지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끝까지 모셔주십시오.

나는 영원히 죽지 않을것입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이 구호를 끝까지…

당의 아들 한철호 9월 27일

9월중 당적분공으로 받은 월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기쁨을…》

살아있을 때에는 자기의 실천적모범으로 동지들을 위훈과 혁신에로 이끌어주고 심장의 고동을 멈춘 후에는 참된 삶의 메아리가 되여 작업반에 당결정관철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주고있는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 상원건설사업소 부재직장 부재작업반 반장이였던 한철호동무,

그는 평범한 사람이였지만 결코 평범치 않은 인생의 자욱을 새겨온 훌륭한 당원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당원이 되는것도 영예이지만 그보다 더 값높은 영예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원의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계속 빛내여나가는것입니다.》

한철호동무가 부재작업반에서 일한것은 3년, 작업반장년한은 2년이 채 못된다. 그러나 한생을 함께 살아온듯한 잊지 못할 추억들이 작업반원들의 가슴에 깊이 간직되여있다.

그들의 추억은 한철호동무가 작업반장사업을 하던 때로부터 시작되였다. 평시 무슨 일에서나 꼼꼼한 성미그대로 그는 작업조직을 깐깐히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늘 육체적부담이 제일 많은 일을 맡았다.

그는 늘 그랬다. 일반종업원으로 일할 때에도, 당세포비서로 몇달간 사업할 때에도 힘든 일이 제기되면 《그야 물론 내가 해야지.》 하며 나섰다. 사람들이 반장은 그저 작업조직이나 빈틈없이 하면 되지 않겠는가고 할 때에도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일을 더 많이 해야 작업반장이고 항상 앞장에 서야 작업반장이지요.》

한철호동무의 뒤를 이어 현재 작업반장으로 일하고있는 전명일동무는 하나의 공구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공구들이 가득차있는 그 공구함은 한철호동무의것이였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안해가 작업반에 다시 가져왔다고 한다. 크지 않은 그 함에도 사연이 있었다.

부재작업반에는 많은 설비들이 있다. 그 설비들을 만가동시키기 위해 한철호동무는 필요한 공구들을 일식으로 갖추어놓았다. 그런데 그의 공구함은 며칠이면 텅 비군 했다. 작업반원들이 공구때문에 애로를 느낄 때면 선뜻 꺼내주군 하였던것이다. 그래도 그는 공구함을 계속 채웠다. 그를 따라배워 작업반원들 누구나 일식으로 자기의 공구들을 마련하여 사업소적으로 공구전시회가 진행될 때면 작업반은 늘 앞자리를 차지했다.

한철호동무가 작업반원들에게 안겨준것은 비단 공구뿐이 아니였다. 안해가 마련해준 새 작업복과 장화도 며칠만에는 작업반원들의 낡은것과 바뀌우고 작업철수과정에 새로운 일거리가 제기되면 혼자 떨어져 도맡아하군 했으며 이동작업을 나갈 때면 작업반원들의 점심밥을 준비해주고 식사할 때에는 자기의 몫마저 흔연히 덜어주군 하였다.

하다면 그의 이런 헌신은 과연 어디서 출발한것이였는가.

《사실 한철호동지가 작업반장으로 일하기 전까지 우리 작업반은 몇해째 인민경제계획을 제대로 수행해본적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찾아와 말하더군요. 자기에게 작업반 월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는것을 당적분공으로 달라고.》

추연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당세포비서의 말이였다.

지난해 여름 사업소에서는 어느한 건물의 골조공사를 다그쳐 끝내기로 하였다. 부재작업반원들에게는 많은 생산과제가 덧쌓이게 되였다. 한철호동무와 작업반원들이 낮과 밤이 따로없이 긴장하게 일하고있던 어느날이였다.

문득 현장에 《반장동무, 당장 나오오!》 하는 격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업소초급당일군이였다.

한철호동무가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는것을 뒤늦게 안 초급당일군이 당장 그를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달려온것이였다. 하지만 한철호동무는 막무가내였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초급당일군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그러더군요. 자기 생이 몇달 남지 않았다는걸 자기도 안다구요. 그 생을 보람있게 보낼수 있게 자기의 마지막소원을 들어달라고 부탁하는데 저도 어쩔수 없었습니다.》

자기 생을 깡그리 바쳐 당결정관철에 이바지할수 있다면 당원으로서 그보다 더 긍지높은 삶은 없다는 자각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그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불같이 살았다. 늘 이른아침이면 제일먼저 출근하고 힘든 일에 선참 몸을 내댔다.

그러나 그의 몸상태는 마지막한계점으로 급속히 치닫고있었다. 그는 남들이 못보게 진통제를 복용하며 번열이 나 참기 어려울 때면 남몰래 휴계실의 찬바닥에 누워 모대기군 했다. 억대우같은 사람이 높이가 겨우 한뽐정도인 계단도 오르기 힘들어 할 때에야 그가 무서운 병에 걸렸다는것을 알게 된 작업반원들은 오열을 터치였다. 그때에도 한철호동무는 이런 말로 그들을 위로하였다.

《이제 며칠후 9월계획을 넘쳐 수행하면 내 병도 차도가 있을거요.》

지난해 9월 28일 4시, 예전같지 않게 기운을 차린 한철호동무는 안해에게 일렀다.

《사업소에서 오늘 아침에 차를 보내주겠다고 했소. …생각해보니 그제가 영미동무 생일이였더구만. …늦게라도 당신이 뭘 좀 준비해주오.》

그로부터 세시간후 사업소에서 보낸 차가 한철호동무의 집앞에 도착하였다. 한철호동무는 끝내 그 차에 오르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는 결코 일터를 영영 떠난것이 아니였다.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사업소적으로 제일 앞서나가고있는 부재작업반원들의 하루하루는 그가 림종을 앞두고 남긴 마지막당생활총화와도 같은 글을 다시금 마음속에 새기는것으로부터 시작되고있다.

작업반원 김윤봉동무는 말하였다.

《올해 양력설을 맞으며 저는 당의 은정어린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때 제일먼저 반장동지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작업반일을 제 집일처럼 하지 못하던 나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한 반장동지가 남긴 그 마지막당부를 영원히 잊을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한철호동무가 남긴 글발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의 생명 2198554》, 생의 마지막기력을 깡그리 모아 쓴 그 수자는 그의 당원증번호였다. 의식마저 가물거리는 혼미한 상태에서 온몸의 힘을 짜내여 썼을 그 하나하나의 수자들을 외워볼수록 자신은 과연 그렇게 최후의 순간 당원증번호부터 쓸수 있을가, 그처럼 자신의 생명으로 간주할수 있을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럴수록 그의 높은 당성에 머리가 숙어졌다.

생의 흔적, 그것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가슴에 번쩍이는 영웅메달일수도 있고 피와 땀이 슴배인 창조물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귀중한것이 있다. 당결정관철을 위해 어떻게 투신해야 하는가를 말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희생적인 헌신으로 가르쳐준 고귀한 삶, 그 삶을 거울로 삼아 수백, 수천이 위훈자, 혁신자로 자라난다면 그보다 더 긍지높은 생의 흔적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 땅의 한 평범한 당원이였던 한철호동무의 생은 그것을 말해주고있다.

 

본사기자 김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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