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3월 12일 《로동신문》

 

실화

진주보석

 

우리가 만난 천성청년탄광의 일군은 나이가 지숙하고 푸수했다.

그는 감심한 어조로 수년세월 부모잃은 아이들을 돌봐주고있는 강호영청년돌격대 대장 강금철동무의 사람됨됨에 대해 이야기하고나서 이렇게 덧붙이였다.

《확실히 우리 당에서 키운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품도 다릅니다. 가슴엔 진주보석이 차있지요. …대장동문 보나마나 또 갱에 들어갔을테니 그의 안해를 먼저 만나보는게 어떻습니까?》

그는 우리가 미처 대답할 사이도 없이 앞장에 섰다. 그러면서 내내 《쉽지 않은 부부》, 《진주보석과도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을 곱씹는것이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보석이 땅속에 묻혀있어도 빛을 잃지 않는것처럼 애국의 마음은 그것이 비록 크지 않아도 귀중한것이며 언제나 아름다운것입니다.》

탄광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걷는 우리의 눈앞에서는 일군이 그려준 강금철동무의 안해의 모습이 떠날줄 몰랐다. 어디서나 볼수 있는 30대의 평범한 녀인, 사근사근한 말씨며 거쿨진 손…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불쑥 《바로 이 집입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의 눈가에 탄광마을의 소박한 단층집이 비껴들었다. 추녀는 높지 않고 마당은 넓지 않아도 그곳에 우리 사회의 향기가 가득차있다고 생각하니 선듯 들어설수 없었다.

잠시후 우리는 강금철동무의 안해 김재련동무와 마주앉았다. 우리가 찾아온 사연을 들은 그는 좀전에 뒤전에 밀어놓았던 바느질감들을 끄당겨 매만지며 점도록 말이 없었다. 각이한 크기의 옷가지들이 애꿎게 이리 번져지고 저리 번져졌다. 한참만에야 그는 《극상해서 아이 몇을 데려다키운것뿐인데…》 하며 자리를 고쳐앉는것이였다. 그러는 그를 대하느라니 미덕과 미풍이 너무나 평범한 일로 되고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가슴이 뜨거워났다.

우리는 그에게 데려다키운다는 아이들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방금전까지도 옹색함을 감추지 못하던 그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에게 한장의 가족사진을 내보이며 말하였다.

《올해 뜻깊은 광명성절을 맞으며 남편이 김정일청년영예상을 수여받았을 때 찍은 우리 가족사진입니다. 이애가 맏이 은길이고 이애는 둘째 정혁이 그리고 이애는 대남이, 이애는 미향이랍니다.》

그의 어조에는 자식들을 위해 오만자루의 품도 아낌없이 바치는 어머니의 사랑과 정이 짙게 실려있었다.

그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 이야기는 참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 아름다운 인간들의 고상한 인생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은길이를 집에 데려온것이 4년전이였어요. 지금도 그때의 일이 눈에 선합니다.

비내리는 어느날 깊은 밤이였어요. 늘 돌격대에 나가 살다싶이 하던 남편이 불쑥 집에 들어오지 않겠나요. 젖은 옷을 벗을념도 않고 잠에 든 자식들의 머리를 쓰다듬던 남편이 느닷없이 절보고 당신이 돌격대원들의 생활도 돌볼래, 오누이자식들도 돌볼래 수고가 많다고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순간 코허리가 시큰해지더군요. 선생님도 아시다싶이 우리 녀인들은 수고를 알아주는 남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면 족해한답니다. 사실 수십명의 돌격대원들과 자식들을 돌본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손에 익고 또 어느 정도 단련도 되였다고 할수 있지만 지금도 가끔 주저앉고싶을 때가 있답니다. 그러다가도 남편이 돌격대 대장으로 임명받던 날 저에게 〈내가 돌격대의 아버지라면 당신은 어머니가 되여야 하오.〉라고 하던 말을 떠올리며 일어나군 합니다.

전 남편에게 말했어요.

〈새삼스레 그런 말을 다 하세요. 나야 돌격대의 어머니가 아니나요.〉

그랬더니 글쎄 이렇게 묻는것이였습니다.

〈당신 진짜 어머니가 되여줄수 있겠소?〉

순간에 마음이 토라지더군요.

그럼 이때껏 기울인건 가짜정이란건가.

저의 마음을 엿보았는지 남편이 어줍게 웃더군요. 뒤더수기를 내리쓸면서 말이예요. 사실 성미뚝한 남자들이 그러하듯 저의 남편도 말주변이 없답니다. 얼마후 남편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당신이 은길이의 친어머니가 되여주는게 어떻소? 아예 우리 맏아들로 등록하자는거요.〉

남편의 갑작스러운 말에 전 깜짝 놀랐어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였거던요. 은길이는 10여년전부터 돌격대에서 맡아키우던 애랍니다. 그래서 저도 은근히 관심을 돌리군 했지요. 솔직히 처음엔 남편의 마음을 리해할수 없었답니다. 그 아이를 왜 하필 우리가 맡아안아야 하는가 하고 말이예요. 아래목에서 잠든 7살 난 현경이와 4살 난 건룡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느라니 눈물이 불쑥 솟구쳤습니다. 제 자식들만 키우자고 해도 많은 품이 드는데 남의 자식을 데려오자고 하니 눈앞이 아뜩하더군요.

남편은 말없이 담배만 거퍼 피웠습니다. 담배갑이 바닥이 나서야 긴숨을 내쉬며 말하더군요.

〈나는 지금도 부모잃은 아이들을 데려다키우는 이천땅의 한 녀성에 대한 기사를 보며 눈물을 흘리던 당신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소. 그리고 그처럼 우리 원수님 어깨우에 실린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자고 하던 그 목소리도 귀에 쟁쟁하오. 그래 그게 진심이 아니였소?〉

나는 와뜰 놀랐습니다. 쉬임없이 흐르던 눈물이 순간에 가셔지더군요. 나는 남편에게 막 물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말을 다 하는가고, 그래 지금껏 돌격대를 위해 아득바득해왔는데 당신의 눈에는 그게 하나도 보이지 않는가고.

그때 뚝바우같은 제 남편이 뭐랬는지 압니까. 〈나는 당신이 국사보다 가사를 더 생각하는것 같소. 이 강금철이나 아이들보다 먼저 나라를 생각해야지.〉 나는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거나말거나 남편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당에서 우리를 어떻게 키워 내세워주었소. 나만 놓고보더라도 평범한 탄부의 아들을 당원으로, 돌격대 대장으로 내세워주었소. 당신도 그렇지 않소. 그래 우리는 그 사랑에 얼마나 보답했소. 어디 심장에 손을 얹고 말 좀 해보오.〉

나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글쎄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한마디한마디가 착암기로 발파구멍을 뚫듯이 가슴을 파고들더군요. 남편이 아득한 높이에서 나를 내려다보는것만 같았습니다.

남편은 내 행동이 답답한지 돌격대에서 자겠다며 씽 하고 집을 나섰답니다. 나는 그냥 앉아있었습니다. 왜서인지 남편을 마주보지 못하겠더군요.》

그때 마당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길 엄마, 집에 있나?》

그러자 김재련동무는 《예.》 하며 급히 뛰여나갔다. 잠시후에 그는 두부가 가득 담긴 바가지를 들고 들어섰다.

《애들을 데려다키운다고 다들 이렇게…》

소박한 성의에도 그는 진정으로 고마와하였다. 그러는 그의 모습을 보느라니 《은길 엄마》 하던 목소리가 다시금 귀전을 쳤다. 은길이, 그애는 그들부부가 데려다키우는 아이이다. 남의 자식을 기꺼이 품어안아 살붙이처럼 키워가는 그 마음이 갸륵하여 누구나 떠받들고 진심으로 위해주는것 아니겠는가.

집단과 사회를 위해 자기를 바치는 사람은 집단과 사회로부터 그런 사랑과 믿음을 받게 되는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였다.

《어디까지 말했던가요. 그렇지, 세대주가 씽 하고 집을 나간 이야기까지였지요. 한참만에야 나는 벽에 그대로 걸려있는 비옷을 벗겨들고 남편을 쫓아갔습니다. 어둑컴컴한 밤길을 비를 맞으며 달리느라니 그 길을 무거운 마음을 안고 걸었을 남편의 모습이 떠오르며 막 죄스럽더군요. 그렇게 내처 돌격대에까지 가게 되였답니다.

밤이 깊었던지라 불빛 한점 없었습니다. 어디 있을가. 나는 취사장이며 침실들을 차례로 돌아보았습니다. 그때 한 침실에서 인기척이 들리더군요. 나는 발돋움을 하여 안을 살피였습니다. 거기에 남편이 쭈그리고앉아있었습니다. 밤도 깊었는데 쉬지 않고 뭘 할가. 창문가에 바투 다가서서 유심히 들여다보던 나는 그만 눈물이 왈칵 솟구쳤습니다. 글쎄 남편이 은길이의 손이며 발을 씻어주는것이 아닙니까. 비에 흠뻑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목에는 전지를 매달고 말입니다.

저는 침실로 달려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엉거주춤 일어서는 남편의 가슴을 쾅쾅 두드렸습니다. 이튿날 우리는 은길이를 자식으로 등록하였습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두 아이가 방으로 들어섰다.

좀전에 사진에서 보았던 총각애와 처녀애였는데 생기가 발랄하였다.

애들을 바라보는 김재련동무의 얼굴에서는 함박꽃같은 웃음이 질줄 몰랐다. 그는 대남이와 미향이를 량무릎에 나란히 앉히고 추억을 이어나갔다.

《지내보니 정이란 물과 같이 곬을 따라 흐르지 않는가 봐요. 이애들도 처음에는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을 하기 힘들어했고 서먹서먹해하면서 속마음을 잘 터놓지도 않았답니다. 또 자주 집을 뛰쳐나가기도 했는데 언제인가는 남의 집 처마밑에서 비를 긋는 애들을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날 밤 남편이 애들을 어찌나 되게 꾸짖던지. …막장에서 붕락구간을 헤쳐갈 때처럼 기상이 보통이 아니였어요. 전 이웃들이 남의 자식이니 막 다룬다고 할것 같아 남편을 말렸답니다. 그랬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아버지가 제 자식을 욕하는것도 누구 눈치를 봐야 하는가고 하지 않겠어요.

가슴이 찡하더군요.

남편은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학부형회의에도 자주 참가하였답니다. 아이들의 생일때에는 식성을 헤아려 생일상을 성의껏 차려주었고 미향이가 감기를 앓고났을 때에는 입맛을 돋구어주겠다며 밤길을 걸어 물고기까지 구해왔답니다.

어느해 학교운동회때였어요. 오후에 현경이가 뾰로통해서 집으로 들어서지 않겠나요. 얼마나 울었는지 두눈이 퉁퉁 부었더군요. 무슨 일인가고 묻자 애가 울면서 하는 말이 글쎄 세대주가 대남이와 미향이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운동회에 참가했다질 않습니까.

아침에 현경이가 운동회를 보러 오겠는가고 물을 때 분명 애아버진 시간이 없어서 못 간다고 했었습니다. 그래 전 아마 잘못 본게라고 했더니 딸이 울먹이며 하는 말이 대남이의 손목잡고 운동장이 좁다 하게 뛰여다니는걸 제눈으로 똑바로 봤다는게 아니겠어요.

남편이 막 야속했습니다. 어쨌든 친딸이 아닌가요. 그길로 돌격대에 뛰여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싱글벙글 웃질 않겠어요. 알고보니 사람찾기경기에 나갔던 대남이가 관람석을 향해 〈아버지!〉 하고 소리높이 불렀답니다. 그래 너무 좋아 벌떡 일어나 〈대남아! 아버지가 여기 있다.〉라고 하면서 뛰여나갔구요. 기뻐하는 남편의 심정이 리해는 되면서도 울고있을 현경이 생각에 속이 알알했어요. 현경인 당신 딸이 아닌가고 내쏘는 저에게 남편은 많은 이야길 들려주었습니다.

탄부였던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자식들의 가슴에 구김살이 질세라 보살펴준 은혜로운 품에 대해서, 남편을 잃고 세 자식을 키우는 시어머니를 친혈육의 정을 다해 도와주던 이웃들에 대해서…

남편과 함께 살면서 자주 들은 이야기지만 그날따라 가슴을 울려주더군요. 남편의 가슴속에는 오로지 고마운 어머니당과 조국의 사랑에 보답하려는 생각뿐이였습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현경이도 크면 아버지를 리해할거라고요. 그리고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다고 자랑할거라고요. 그러자 남편이 뭐랬는지 압니까. 〈나야 애들을 데려온것밖에 있소. 그애들을 키우느라 당신이 수고가 많지. 우리 애들이 자랑할 훌륭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요.〉

그이후의 일이야 더 말해 뭘 하겠나요.

가는 정, 오는 정이라고 우리가 기울이는 정성에 애들은 친자식처럼 따르고있답니다.》

이때 문가에서 또다시 인기척이 들려왔다. 잠자코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대남이와 미향이가 《아버지 오신다.》 하며 문을 차고 달려나갔다. 이어 아이들에게 이끌려 한사람이 웃음을 넘실거리며 방안에 들어섰다.

강금철동무였다. 탄광일군들을 통해 우리가 찾아온 사연을 미리 알았는지 그는 대뜸 《먼길을 수고롭게 오셨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였다.

이어 우리와 마주앉은 강금철동무는 이렇게 말했다.

《기자선생님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 나라에 훌륭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도 그들처럼 살고싶었을뿐입니다.》

강금철동무가 자기의 소행을 평범한것으로 여길수록 우리의 귀전에는 그들부부를 소리높이 자랑해달라고 하던 많은 사람들의 절절한 부탁이 메아리가 되여 울려왔다.

그렇다! 온 나라에 자랑해야 한다. 그들부부에 대한 자랑은 이 땅의 청년들을 참다운 정신과 도덕의 소유자들로 억세게 키워가는 위대한 우리 당, 사회주의 우리 제도에 대한 자랑으로 되기때문이기에.

 

본사기자 리경일
본사기자 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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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송 - 베이징 - 학생 - 2020-03-12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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