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민속무용 칼춤

 

칼춤은 우리 인민들이 창조하고 향유하여온 많은 민속무용들가운데서도 그 력사가 매우 오랜 춤이다.

우리 나라에서 칼춤은 고대시기부터 시작되였다고 볼수 있다. 당시 전쟁마당에서 중요한 무기의 하나였던 칼은 사람들속에서 승전의 기쁨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되였고 전승을 경축하는 마당에서는 씩씩하고 활달한 검술동작을 활용한 칼춤이 널리 추어졌다.

삼국시기에는 칼춤이 보다 발전하였다. 4세기 고구려무덤벽화들인 고국원왕릉과 팔청리무덤의 벽화에는 칼춤이 형상되여있으며 옛 문헌들에도 칼춤을 추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여있다.

이 시기에 칼춤은 칼 하나만 들고 추는 칼춤, 두손에 칼을 쥐고 추는 쌍칼춤, 가면을 쓰고 추는 가면검무 등 그 형식도 매우 다양하였다.

칼춤은 고려시기에도 민속무용으로 널리 추어졌다. 고려시기 칼춤에 대한 구체적인 문헌기록은 없으나 고려시기부터 전해진 민속무용들인 《통덕진출전무》, 《조천무》에 칼춤의 요소들이 있는것을 통하여 민간에서 계속 추어졌다는것을 알수 있다.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는 국토통일과 령토완정을 위한 여러차례의 전쟁을 겪었던것만큼 칼춤과 같은 민속무용들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널리 추어진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보아진다.

칼춤은 리조시기에 와서는 예술적기교가 보다 세련된 춤으로 발전하였다. 본래 칼춤은 무술련마과정에 추어졌지만 리조시기에 이르러서는 무용가들의 기교높은 예술형식으로 발전하였다.

리조시기 민간에서 추어진 칼춤은 많은 경우 사당패에 의하여 추어졌다.

18~19세기 실학자 정다산의 시 《칼춤》이나 김홍도의 그림 《칼춤》을 보면 당시 칼춤이 관청이나 장거리 등에서 널리 추어졌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뿐아니라 판소리 《변강쇠타령》의 가사를 보아도 민간에서 칼춤을 추는것이 아주 보편적인것이였음을 알수 있다.

칼춤은 궁중에서도 추어졌다. 리조시기 궁중에는 첨수무, 검기무, 공막무 등의 칼춤이 있었다.

리조시기 민간이나 궁중에서 춘 칼춤은 매우 기교가 높고 예술화된 민속무용이였다.

리조시기 전문예술무용으로 기교가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른 칼춤은 근대시기에 보다 새롭게 변화되였다.

이처럼 칼춤은 오랜 세월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지켜싸운 우리 인민의 애국적인 투쟁속에서 발생발전하여온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말할수 있다.

오늘날 사회주의선군문화가 날로 활짝 꽃펴나고있는 우리 조국에서는 주체문학예술의 거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크나큰 은정속에 창작완성된 민속무용조곡 《평양성사람들》을 비롯한 민속무용작품들과 예술공연무대들에서 우리 민족의 씩씩한 기상과 강의한 의지를 보여주는 칼춤들이 특색있게 펼쳐져 우리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에 참답게 이바지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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