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식 

 

광 개 토 왕 릉 비

 

광개토왕릉비는 고구려봉건국가 광개토왕의 업적을 찬양하여 그 무덤에 세운 비이다. 광개토왕릉비는 압록강중상류의 당시 고구려수도였던 국내성 동북쪽 6km지점인 대왕촌에 있다.

비는 414년 9월 광개토왕이 죽은지 21달만에 세워졌다.

비돌은 높이 6.34m, 너비 1.9m, 두께 1.53m의 네모난 재바위이며 큰 기초공사없이 돌의 자체무게를 잘 리용하여 세웠다.

비문은 다듬은후 줄간을 치고 4면에 글자를 빼곡이 새겼다.

비문은 모두 44줄인데 제1면에 11줄, 제2면에 10줄, 제3면에 14줄, 제4면에 9줄이며 줄마다 41자씩 모두 1,800여자로 되여있다. 세월이 흐르는 기간 비돌에 금이 가고 풍화작용으로 돌의 표면이 닳고 떨어져나가서 알아볼수 있는 글자는 1,534자이다.

비문의 내용은 대체로 3개 부분으로 되여있다.

첫부분은 고구려시조전설로 시작하여 광개토왕이 왕자리에 올라앉은 때로부터 죽은때까지의 제반사실과 비를 세우는 리유를 밝혔다.

둘째부분은 광개토왕이 령토를 넓힌 무공을 자세히 서술하였고 셋째부분에는 왕의 무덤을 지키는 묘지기의 정원 및 그들이 준수해야 할 규정 등이 기록되여 있다. 비문을 통하여 고구려국가의 강대성과 고구려인민들의 용감성을 잘 알수 있다. 비문에는 이 시기 고구려가 가장 강한 나라로서 많은 전쟁을 진행하였으며 령토를 확장한 사실이 기록되여있다.

비문은 다른 옛 기록에는 없는 당시의 정치사회경제형편과 계급관계에 관한 자료들을 많이 전해주고있다.

광개토왕릉비는 우리 선조들이 남긴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랜 비이며 고구려력사연구에서 귀중하고 풍부한 사료를 제공하고있다. 비문의 글씨는 독특한 서예체(한자의 옛 글씨체)로서 당시 고구려인민들의 기상을 반영한 우리 나라 력사의 귀중한 유산으로 된다.

또한 비는 비돌의 크기에서 가장 웅대한것의 하나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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