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조  년

(1268ㅡ1342)

 

고려후기의 관료, 시인. 자는 원로이고 호는 백화헌, 매운당이다. 129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정당문학의 벼슬을 지냈다. 1306년에 비서랑으로서 국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을 때 왕의 부자를 리간시킨 왕유소, 송방영 등에게서 화를 입어 귀양살이를 한 후 벼슬길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가서 13년동안 학문탐구와 창작에 전심하였다. 성격이 대바르고 옳지 않은것에 대해서는 참지 못하는 성미인 리조년은 원나라에 가있던 왕고가 음모적인 방법으로 왕위를 빼앗으려 한다는것을 알고 분연히 떨쳐나 그 부당성을 까밝힘으로써 음모가 파탄되도록 하는데 기여하였다. 1330년부터 다시 벼슬길에 들어선 그는 충혜왕때에는 예문관 대제학의 높은 벼슬을 받았다. 그는 놀음에 빠진 왕이 정사를 바로 하도록 여러차례 지극히 권고하였으며 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게 되자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생을 마치였다. 자료에 의하면 그는 시도 잘 지었다고 하는데 대표작으로는 자신의 성격을 형상적으로 보여준 한자시 《백화헌에서》가 널리 알려져있고 이밖에 시조 《리화에 월백하고…》가 《청구영언》에 실려 전해지고있다.

 

《백화헌에서》

 

한자시.

 

되는대로 이꽃저꽃 심지 말아라

백화헌에 백가지꽃 차야 맛인가

 

매화꽃 국화꽃이 정을 이끄니

울긋불긋 다른 꽃 부질없어라

 

시는 눈속에 핀 매화, 서리철에 피는 국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하였다.

시는 추위를 이기며 피는 매화나 국화처럼 사람도 마땅히 의지가 강하여 곤난을 이겨내야 한다는것을 암시하고있다.

제목에 있는 백화헌이란 백가지 꽃이 다 피는 집이라는 뜻이다. 시인은 시의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이 백가지 꽃이 피는 집을 선택하고 형상의 초점을 매화나 국화에 맞추었다. 그리하여 시는 아무리 이꽃, 저꽃을 많이 심어 가지수를 늘여서 뭘하겠는가, 삶의 참된 뜻을 발견할수 있는 고결한 꽃을 심고 사랑하는것이 더 중요하다는것을 강조하였다.

인간은 마땅히 매화가 국화처럼 정결하고 곧은 성품을 가져야 한다는 사상적내용을 론리성과 서정성이 잘 배합된 예술적필치로 간결하면서도 감칠맛이 있게 형상한데 이 시의 특징이 있다.

그러나 시는 봉건관료의 립장에서 곧은 절개를 노래한데 머무른 제한성을 가지고있다.

 

《리화에 월백하고…》

 

시조.

 

리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 리화에 월백하고ㅡ배꽃에 달이 환히 비치고

※ 은한ㅡ은하수

※ 삼경ㅡ자정, 한밤중

※ 일지춘심ㅡ한가지 배꽃에 어린 봄의 정취

※ 자규ㅡ소쩍새

 

해석:

배꽃에 달이 밝고 은하수 기울어 한밤중인데

한가닥 봄마음을 소쩍새가 알겠는가마는

다정도 병인것같아 잠들지 못하겠노라

 

시의 밑바탕에는 나라일을 근심하는 뜨거운 마음이 놓여있다. 시인은 그 우국의 마음을 배꽃피는 봄날의 깊은 밤 슬피 우는 소쩍새소리에 잠못드는 서정적주인공의 형상을 통하여 표현하였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에 이웃나라의 어느 한 왕이 왕자리를 빼앗기고 산속에 들어가서 지내다가 죽은 다음 그 혼이 소쩍새가 되여 피를 토하면서 슬피 울었다고 한다. 시인은 소쩍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교훈적인 옛이야기를 생각하였고 그에 의탁하여 지배층내부의 권력싸움과 사회적모순의 격화로 나날이 기울어지는 고려봉건국가의 앞날을 우려하는 심정을 함축적인 시구에 담아 재치있게 노래하였다고 할수 있다.

시조는 시상이 소박하면서도 정서가 있고 은유의 수법을 적용해서 그 정서를 진실하게 돋군 점이 우수하다. 이 시조는 봉건관료의 우국심정을 노래한 제한성이 있으나 고려시기에 발생한 초기 시조의 발전에 기여한것으로 하여 문학사적의의가 있다.

 

발자국소리만 듣고도

 

리조년은 왕이 정사를 바로 하지 못하거나 부화방탕한 생활에 빠져들 때면 매번 맞대놓고 바른 소리를 하군 하였다. 몸은 작달만하였으나 뜻이 높고 판단이 정확한데다가 누구앞에서도 바른 말을 꺼리낌없이 하는 성미였으므로 충렬, 충선, 충숙, 충혜의 네 왕대에 벼슬살이를 하면서 언제나 봉건관료의 충의사상에서 출발하여 왕이 잘못하는 일에 대하여 충고하였다. 특히 말년에 충혜왕에게 더 자주, 더욱 애타게 충고의 말을 하였다. 그만큼 충혜왕은 정사를 돌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고있었던것이다. 설익은 충혜왕은 그가 안타까이 충고하는것이 짜증났고 또 간신들이 발라맞추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중에는 그를 멀리하기도 하였다. 그러다나니 때로는 무슨 일이 생기면 리조년에게서 의견을 들어보기도 전에 또 무슨 꾸지람을 듣지 않을가 근심하였고 그가 찾아온다는 말을 들을 때면 엄한 스승을 두려워하는 말썽군학생처럼 긴장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충혜왕은 어느덧 리조년의 발자국소리까지 가려듣게 되였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각이한 발자국소리를 듣지만 충혜왕은 그가운데서도 특히 리조년의 발자국소리를 정확히 가려듣군 하였다. 매번 리조년이 찾아올 때면 충혜왕은 멀리서 들리는 그의 발자국소리를 듣고서 《리조년이 오는군》하고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급히 물러가게 한 후 자세를 바로 하고 기다렸다. 이처럼 충혜왕은 리조년이 무슨 일로 찾아오는지도 모르면서 그가 하는 충고를 들을 마음의 잡도리부터 하였다고 한다.

그때 충혜왕이 리조년의 발자국소리를 가려듣는다는 소문이 사람들속에 퍼져서 리조년의 충신다운 강직성이 더욱 높은 찬양을 받았다고 한다.

충혜왕이 리조년과 같은 곧은 신하들의 충고를 귀담아듣고 실천했더라면 나라정사도 보다 안정되고 그자신도 풍파를 겪지 않았을것이나 끝내 그렇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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