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해

(1287ㅡ1340)

 

고려후기의 학자. 자는 언명부이고 호는 졸옹 또는 예산농은이다. 최해는 최치원의 후손이며 민부의랑 최백륜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9살에 벌써 시를 잘 짓는다는 말을 들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유, 예문춘추관 검열, 장사감무, 예문춘추관 주부, 성균관 대사성 등의 벼슬을 지냈다. 1321년 원나라에 가서 과거에 급제하여 료양로의 개주판관으로 있다가 병을 구실로 귀국하여 예문관 응교가 되였다. 그는 재주가 비상하였으나 아첨을 모르고 비위에 거슬리면 정면에서 말하고 정당한 주장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므로 큰 벼슬에 등용되지 못하였다. 최해는 글을 짓는데서 남의것을 모방하는것을 싫어하였으며 일단 옳다고 인정한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스승이거나 유명한 학자라고 하여도 따지고 론쟁하였다. 저서로서는 량반출신 작가들의 시문을 수록한 《동인지문》(25권)과 《졸고천백》(2권)이 있다. 그의 대표적시작품으로는 한자시 《3월 스무사흗날 비가 내린다》, 《우연히 읊노라》 등을 들수 있다.

 

《우연히 읊노라》

 

한자시.

 

나의 옷은 솜누데기

남의 옷은 비단갖옷

 

남의 집은 고대광실

나의 집은 오막살이

 

하늘이 사람 낼 때

고르지 못했는가…

내사 남을 탓하랴만

남들 나를 수모하네

 

시는 빈부귀천의 차이가 혹심한 당대의 부패한 사회현실을 개탄하였다.

시에서 서정적흐름의 밑바탕에는 정직하고 대바른 탓에 가난에 쪼들려야 하고 수모당해야 하는 주인공 나ㅡ시인의 불우한 처지와 이러한 불행을 강요하는 남ㅡ봉건조정의 집권자에 대한 울분이 깔려있다.

예술적측면에서 빈부의 차이를 보여주는 가장 보편적인 표징으로 되고있는 의식주중에서 옷을 입고 집을 쓰고 사는 문제를 놓고 세부를 찾아 대조함으로써 사상적내용을 누구나 명백히 알수 있게 하고 선명하게 부각하여 형상의 박력을 조성하고있다.

량심적이고 빈곤한 선비의 울분을 토로한 이 시는 당대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정신으로 하여 인식적의의가 있다.

 

《3월 스무사흗날 비가 내린다》

 

한자시.

 

작년에 날씨가 괴상하여

농사집이 모내기를 못하였지

만백성이 모두 굶주려

서로 바라보는 낯빛이 처량하였네

 

금년에 또 봄부터 가물어서

해볕 바라보며 마음조였어라

우물은 말라서 푸른 진흙 드러나고

아침마다 피같이 붉은해가 떠왔다네

 

길거리엔 어디나

굶어죽은 시체들

들판에는 농사짓는

모습조차 사라졌네

 

내 늦잠자는 버릇 있건만

새벽에 깨여나 초당에 누웠더니

우수수 비 실은 바람 불어오고

처마에서 동동 비방울 듣는 소리

 

베개를 밀고 놀란듯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어제치니

정말로 비가 내려

좋아서 미칠듯싶네

 

언덕우에 버드나무

우썩 푸르러오고

둔덕에 피던 꽃도

붉은빛이 더 어렸네

 

이 세상 만물들이

싱싱히 살아나니

모든것이 내뿜는구나

맑고도 고운 향기를

 

진정 하늘의 마음도

우리 백성의 편이로다

이랑마다 갈고 심는

농쟁기가 가득 차네

 

이렇게 좋은 비라 집이 새여

방안에서 우산을 받은들 어떠랴

만백성 배불리 먹을것 기뻐서

내 살아갈 걱정은 이미 잊었노라

 

시는 거듭되는 혹심한 가물로 인한 피해를 당대의 농사형편,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처지와 결부하여 노래하였다. 시에서는 먼저 통치배들의 학정의 페해가 심한데다가 한재로 인한 거듭되는 흉년때문에 농촌은 황페화되고 사람들이 굶어서 죽게 된 당대의 참혹한 현실을 가식없이 진실하게 재현하였다. 시의 뒤부분에서는 이 참혹한 현실에서 더없이 괴롭고 아픈 심정을 안고 모대기다가 소생의 단비를 맞이한 서정적주인공의 기쁜 심정을 노래하고있다. 시름에 겨워 어렴풋이 잠들었던 서정적주인공은 《처마에서 동동 비방울 듣는 소리》에 잠을 깨여 창문을 열어제낀다. 생명수인양 소리없이 내리는 새벽비에 애처롭게 타죽던 이 세상의 만물이 푸른색 띠고 소생하여 《맑고도 고운 향기》 내뿜는 신기한 모습을 보게 된 서정적주인공은 기쁨에 넘쳐 《진정 하늘의 마음도 우리 백성의 편이로다》고 소리높이 웨치며 《이렇게 좋은 비라 집이 새여 방안에서 우산을 받은들 어떠랴. 만백성 배불리 먹을것 기뻐서 내 살아갈 걱정은 이미 잊었노라.》고 노래하였다. 시는 당시 농민들이 겪는 불행과 고통을 진실하게 보여주고 헐벗고 굶주리는 백성들을 동정하는 시인의 진보적인 사상경향을 반영한것으로 하여 문학사적의의를 가진다.

 

단점이자 장점

 

최해는 《예산은자전》에서 주인공이 좋은 사람과만 상종하고 욕심많은 사람과는 대상하지 않았으므로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기 어려웠는데 이것이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하였다고 썼다. 이 전기문학의 주인공이자 곧 작가자신이다.

작가 최해에게는 이런 의미에서 단점이자 장점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일화가 있다.

그가 아직 젊었을 때였다.

한번은 그가 경상도 동래현이라는 바다가 고을을 지나다가 명승인 해운대에 올라간 일이 있었다. 경치가 소문난 그대로 아름다웠다. 바다풍경, 소나무의 고상하고 우아한 풍치, 맑은 바람, 그는 몸과 마음이 상쾌하였다. 흥겨운 마음으로 둘러보는데 한그루 소나무에 껍질을 벗기고 무슨 글자를 써놓은것이 눈에 띄였다. 저게 무엇일가 하고 가까이 가보았더니 합포만호 장선이라는 사람이 시를 지어서 거기에 써놓은것이였다. 장선은 합포라는 곳에 있는 수군의 중간급무관이였다.

최해는 그 시를 읽어보고 대번에 눈살을 찌프리면서 참지 못하는 성미그대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슬프다! 이 나무여, 무슨 액운(불길한 운명)을 만나 이런 나쁜 시를 새기게 되였는고.》

최해는 그 자리에서 나무에 써놓은 시 같지 않은 나쁜 시를 말끔히 깎아버렸다. 그렇게 하고도 화를 당한 소나무가 가엾게 생각되여 흙을 개다가 껍질벗겨진 부분을 잘 발라준 다음 안동쪽을 향해 떠나갔다. 이것을 안 장선이 대노하여 날랜 장사 서너명을 내보내서 당장 잡아오라고 호령하였다. 그 장사들이 가보니 최해는 이미 죽령을 넘어 서울로 떠나간 뒤였다. 그들은 최해 대신 그에게 시중든 사람 하나를 잡아다가 목에 칼을 씌워서 문밖에 세워두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장선은 사람들속에서 웃음거리가 되였고 최해의 재주가 사람들의 무지를 조소하는데 넉넉하다는 말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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