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축

(1287ㅡ1348)

 

고려후기의 학자, 시인.

자는 당지, 호는 근재이다. 복주 흥녕현에서 고을 아전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령리하고 슬기로웠으며 부지런히 공부하여 글에 아주 능하였다. 지방의 하급관리인 금주의 사록으로 있었으며 점점 벼슬이 올라 우사의대부에 이르렀다. 강릉도존무사(도장관)로 있을 때 《관동와주》라는 작품집을 엮었고 《관동별곡》을 비롯한 우수한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그후 관료생활에서 곡절을 겪으면서 여러 문관, 법관직을 지냈다. 상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멀리에 있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정사를 처리하는 바쁜속에서도 짬짬이 고향으로 가서 극진히 돌보아드려 사람들이 그의 품성을 칭찬하여마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집필활동도 정력적으로 벌려 《관동별곡》에 이어 《죽계별곡》 등의 경기체가요들을 지어 고려후반기 민족시가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는 또한 《철령에서》를 비롯한 한자시작품들을 남겼으며 력사책인 《편년강목》의 수정사업과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들의 실록수정편찬에도 참가하였다. 이밖에 많은 외교문서들도 작성하였다. 문집으로 《근재집》이 있다.

 

《관동별곡》

 

경기체가. 1331년에 창작되였고 작품집 《관동와주》에 실려있다. 9개 단락에 54개의 시행으로 되여있다. 작품은 안축이 동해안일대를 유람하면서 받은 감흥을 노래한것이다. 시에서는 시인의 유람로정에 따라 안변의 원수대, 통천의 총석정과 금란굴, 고성의 삼일포와 사선정, 간성의 선유담과 영랑호, 강릉의 경포대와 한송정, 평해의 취운정과 월송정 등 금강산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명승들과 아름다운 풍치를 순차적으로 펼쳐보이고있다.

 

총석정, 금란굴 기암괴석

전도암, 사선봉엔 비석이 있고

아야발, 바위돌이, 모양도 이상할사

아 사해천하에 이런 곳 없으리라

화려한 옷차림의 수많은 벗들과

아, 또다시 찾아오려 하노라

 

※ 총석정, 금란굴ㅡ강원도 통천지방에 있는 명승지들

※ 전도암, 사선봉ㅡ통천부근에 있는 명승지들

※ 아야발, 바위돌이ㅡ통천지방에 있던 지명

 

이것은 통천의 총석정과 그 일대의 절경을 보고 노래한 구절이다. 이 분절을 통해 알수 있는바와 같이 노래의 매 분절들에는 황홀경을 이룬 조국산천에 대한 시인의 긍지높은 찬양과 그를 사랑하고 즐기는 애국의 심정이 담겨져있다. 동시에 노래에는 량반관료로서의 한가한 생활정서와 유흥적인 기분도 반영되여있다.

작품은 경기체가의 서사화과정과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작품의 하나로 되고있다.

 

《철령에서》

 

한자시.

 

큰 령이 반공에 높이 솟아

동쪽 서쪽으로 길이 뻗어갔네

령우에 오르니 우습구나 옛장수

이 산에서 적군에게 벌벌 떤 일이…

 

깊은 골안에는 눈과 얼음이오

높은 봉우리엔 돌과 구름인데

옛보루는 다시 쌓지 않고

온 천하가 글만 읽누나

 

작품은 국방에 힘을 넣지 않고 글만 숭상하는 조정의 처사를 근심하는 사상을 노래하였다. 고려의 태조는 자신이 무관출신으로서 무관을 중시하고 국방력강화에 힘썼다. 그후의 왕들도 태조가 세운 이 기풍을 준수하였으나 점차 이 기풍이 문란해지다가 18대 왕 의종대에 와서는 《숭문경무》(문관을 숭상하고 무관을 홀시)에 빠져 1170년에는 무신정변이 일어나 오래동안 무신통치가 실시되였다. 무신통치가 끝난 후에도 집권한 문관들은 오히려 무관에 대한 비뚤어진 반발심까지 겹쳐 국방은 더욱더 홀시되였다.

안축은 이러한 시기의 나라형편을 근심하는 인민들과 뜻있는 인사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이 시를 썼다. 당시 철령은 함경도쪽으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요새지였다. 이 요새지를 강화하는것이 중요하다는것을 통절히 느낀 시인은 요새지로서의 철령의 지형상 특징을 강조하고 력사의 교훈을 상기하면서 자신의 뜻과 주장을 뜨겁게 토로하였다.

강원도의 명승고적과 지형지물은 대부분 천하절경 금강산과 련결되여있는것만큼 예로부터 이곳을 찾는 시인들은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극구 찬양하는 시들을 많이 지었으나 안축은 동해관문 철령을 노래하면서 절경만을 칭송한것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천연요새로서의 지형상 특성을 형상하였다. 하늘높이 솟은 봉우리는 봉우리마다 구름을 이고 소소리높이 솟았고 깊은 골은 골마다 얼음과 눈이 뒤덮여있다. 이 요새지를 튼튼히 지키면 그 어떤 적들도 능히 쳐물리칠수 있다는 사상이 시에 맥맥히 굽이치고있다. 나라의 절경을 국방강화의 눈으로 보고 노래한데 이 작품의 소재선택과 시형상의 애국주의적특성이 있다.

 

말은 안해도

 

말은 인간사유의 표현이고 인간교제의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때로는 무언이 수많은 말마디보다 더 위력할 때가 있다. 대체로 무언은 짧은 시간에 표현되지만 아주 강한 의지의 표시로 되는 경우가 있다.

안축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1324년이였다. 이때에 이르러 안축에게는 경험이 쌓아졌고 세상사를 보는 눈과 판단력도 넓고 풍부해졌다. 또한 글에서도 사상이 무르익고 필력이 왕성하며 문장이 비단결같아졌다.

그는 국내에서뿐아니라 국외에 나가서도 다른 나라 선비들과 글을 겨루어 이길 자신심이 하늘을 찌르고 땅을 뒤덮을 지경이였다. 신라때 최치원이 당나라 문인들과 겨루어 명성을 떨친것처럼 안축이 활동할 당시에는 이름높은 문인들이 원나라 재사들과 겨루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글을 겨루는데서는 그 나라의 과거를 보는 방법도 있고 그 나라의 유명한 문인재사들과 작품창작과 비평모임을 가지는 방법도 있었다. 안축도 이런 전례에 따라 원나라의 제과라는 과거시험에 응시하였다. 이 과거에서 안축은 당당히 두각을 나타내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과거시험의 합격자가 발표되자 고려문인 안축의 명성이 자자해지고 동방문명례의의 나라에 대한 사람들의 찬탄이 대단하였다. 안축도 무척 기뻤다. 원나라에서는 과거합격자에게 등용의 길을 열어주는 관례에 따라 안축에게도 료양로 개주의 판관이라는 벼슬을 수여한다는것을 발표하였다. 이왕 과거시험에 응시하였으니 그런 벼슬을 명예로라도 받을수 있겠는데 안축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남의 나라의 벼슬을 받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과거시험합격자 발표장소를 떠나 그 나라 관료임명 취급자들과 상대도 하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안축의 이 말없는 도도한 민족적자존심에 탄복하여 국내외의 뜻있는 인사들은 모두 그를 높이 찬양하여마지 않았다.

 

한생을 고수한 안축의 시조

 

안축은 한생동안 가정을 유지하는데서 부지런하고 진실하고 검소하였으며 자기를 수양하는데서 공정하였다. 그는 사치를 몰랐고 사람들의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 애썼다. 또한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탓으로 두 동생을 자기가 직접 가르쳤는데 사사로운 인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엄하게 교양하였다.

그는 진실한 인간으로서 찬양받아 마땅한 신조를 가지고 한생을 살아온 사람이지만 평시에는 자신의 신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쉽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과 자가 의미하는 그대로 그렇게 하는것을 응당한 도리로 여겼고 호가 말해주듯이 제 자랑을 하는 말은 극력 삼가하였다.

말년이 되였다. 그는 자기의 신조에 대하여 아마 제자랑으로써가 아니라 자식들과 후대들에게 꼭 해주어야 할 교훈의 말로 생각하게 되였던 모양이다.

한번은 곁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자손과 후대들을 위하여 인생교훈이 될 말을 해달라는 청을 한일이 있었다. 이때 안축은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청원에 대해서는 잊은듯이 한동안 앉아있었다. 그 침묵을 지키는 길지 않은 시간에 그는 자기의 60평생을 다시한번 돌이켜보았다. 교훈될 말을 해달라고 청원한 사람들이 이제 무슨 말이 나올가 하고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마침내 안축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나에게는 한평생 이렇다 하고 교훈될 말을 해줄만한것이 별로 없구나. 나는 한생에 네번 법관을 지냈는데 그 사이에 백성으로서 억울한 루명을 쓰고 노비가 된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 사태를 사실대로 밝혀서 본래대로 량민이 되게 해준것이 생각날뿐이다.》

이 말을 하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말은 끝났으나 이 말을 떳떳이 할수 있게 한생을 부끄럼없이 돌이켜본 사람의 량심과 긍지로 하여 그의 얼굴은 행복의 미소로 불그레해졌다.

 

아버지의 기쁨

 

안축은 부모에게 극진한 효자이고 아들과 동생을 훌륭한 인물로 키우는데서 너그러우면서도 엄정한 웃어른이였다. 그는 집안일처리에서 공정하고 검박하였으며 자식들에게도 량심과 도덕교양을 하기에 무척 힘을 넣었다. 그에게는 종기와 종원 두아들이 있었다. 이 아들들이 다 아버지의 교양을 받아 사람됨이 량심적이고 진실하였으며 도덕품성이 밝았다. 안축은 아들들이 부귀공명을 누리는데서가 아니라 바로 이런 훌륭한 도덕품성을 보여주는 때가 제일 기뻤다.

둘째아들 종원이가 17살에 과거에 급제하고 충목왕때에 사한으로 임명되였는데 그도 아버지의 품성을 닮아 자기 직무수행에서는 빈틈이 없었고 일을 성실하게 잘 처리한다는 평을 들었다. 어느덧 만기가 되였다. 그러니 인사담당 관원들이 실적을 조사해보고 평정을 하여 승급을 시키든지 강직을 시키든지 할 판이였다. 자기 직무에 능력있고 성실하다는 신망이 자자했으니 종원이가 승급할 차례라는것을 입가진 사람은 다 말했다.

안축은 엄격한 사람이여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들이 좋은 사업평가를 받고 승급되기를 은근히 기다리게 되였다.

드디여 인사조동의 명령이 준비되는 날이 왔다. 관청에 나갔다가 돌아온 종원이 환한 낯빛으로 들어서는것을 보고 안축도 은근히 기뻤다. (일이 잘된 모양이구나.)

아버지앞에 무릎을 꿇고 저녁인사를 한 아들은 그것으로 입을 다무는것이였다.

진중한 안축이였지만 이때만은 먼저 입을 떼지 않을수 없었다.

《너의 직무수행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받았느냐?》

《일을 잘못했다는 말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것 같더냐?》

그제야 아들은 사실을 그대로 말하였다.

종원이와 같이 일보는 동료들속에 심동로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종원이보다 나이는 많았으나 벼슬은 낮았다. 종원은 이번 기회에 자신보다 이 사람의 승진문제에 더 마음을 썼다. 그래서 직무수행실적을 알아보려 내려온 웃관원에게 심동로에 대해서 애써 좋게 말했다. 웃관원도 자기가 아니라 남의 관직을 올려주기 위해 애쓰는 안종원의 태도에 공감이 되여 그의 말을 심중히 들었다. 이리하여 종원은 자기에게 차례지게 될 관직을 결국 심동로에게 양보했다는것이였다.

종원은 이 말을 하면서 은근히 아버지의 얼굴빛을 살피였다. 아버지의 의사는 어떠한지, 아들이 한 행동에 대해 나쁘다고는 하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나 않겠는지 송구한 생각이 없지 않아서였다.

아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안축의 가슴에 기쁨이 서서히 끓어올랐다. 그는 자애에 넘치는 시선으로 20대의 젊은 아들의 얼굴에서 젊은 시절의 자기를 찾아보았다. (장하다, 내 아들아!)

안축은 근래에 처음겪는 격동된 심정으로 환희에 겨워 아들을 찬양하였다.

《사양하는것은 사람의 좋은 행실중에서도 으뜸가는것이다. 내가 다른사람에게 사양하면 누가 나를 버리겠는가…》

안축은 여기서 말을 잠시 끊었다. 기쁨이 커서 숨을 잦히기 위해서인지, 이 짧은 순간에 아들 종원의 손목에 이끌려 자신의 한생을 더듬어보게 되여서인지 그는 이 침묵속에서 인생의 행복감에 심취되였다. 이윽고 그는 말을 이었다.

《우리 가문에 인물이 있으니 아마 더욱 번창할가보다.》

아버지가 생각밖으로 이렇게 기뻐하자 종원의 가슴도 따라서 높뛰였다. 그는 마음속깊이 다짐하였다.

《아버님, 아버님이 오늘 하신 말씀을 뼈에 새기고 나라의 진실한 신하가 되기 위해 한생을 참되게 살아가겠습니다.》

 

《사양하는것은 사람의 좋은 행실중에서도 으뜸가는것이다. 내가 다른사람에게 사양하면 누가 나를 버리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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