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곡

(1298ㅡ1351)

 

고려후기의 학자, 작가. 자는 중부이고 호는 가정이다. 한산군의 아전 리자성의 아들이며 리색의 아버지이다. 처음이름은 리운백이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손에서 고생스럽게 성장하였다.

1320년 과거에 급제하여 경상도 복주의 사록, 예문관 검열, 밀직사 부사, 밀직사 지사, 정당문학, 도첨의찬성사 등의 벼슬을 지냈고 한산군의 봉을 받았다. 원나라의 과거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원나라에서 한림국사원 검열관, 휘정원관구, 봉의대부, 행중서성원외랑 등의 벼슬을 한바 있다. 그는 학문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글도 잘 지었다. 당시 원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들은 적지 않게 그에 의하여 작성되였다. 그는 정론성이 강한 시, 산문작품들도 많이 썼다.

문집으로는 《가정집》 20권이 있는데 여기에 수십편에 달하는 다양한 형식의 산문들과 400여수에 달하는 시들이 들어있다. 작품으로는 려행기 《동유기》(관동기행), 의인전기체소설 《죽부인전》, 시작품들인 《사자의 웨침》, 《거리에서 서산을 바라보며》, 《장안사에서》, 《녀인의 기박한 운명》, 《길 가다 비를 피하며》, 《물이 불어 성안에서 고기를 잡는다》, 《7석날 장생에게》, 《7월 초나흗날 집에서 온 편지를 받고》, 《목동》, 《마을아낙네》 등이 많이 알려져있다. 리곡은 당대의 현실을 보고 체험하면서 인정과 사랑에 넘치는 밝은 정서의 작품들과 함께 저주와 분노로 충만된 현실비판주제의 우수한 작품들을 많이 씀으로써 고려말기 사실주의적시문학발전에 기여하였다. 1346년에 리제현, 안축, 리인복 등과 같이 민지가 쓴 《편년강목》을 수정보충하여 편찬하였고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등 3왕대 실록을 편찬하였다. 리곡은 또한 아들 리색을 훌륭히 키워 뛰여난 시인, 문장가로 이름떨치게 하였다.

 

《7석날 장생에게》

 

한자시.

 

1

일년에 한번씩은

  어김이 없이

때가 닥쳐오면

  서로 만난다네

 

이 세상 인간들을

  별들에 비겨보면

얼마나 마음대로

  언약을 저버리나…

 

2

리별은 왜 그리도

  빨리 닥쳐오고

만날 기약은

  왜 그리도 더딘가

 

다만 가슴속

  붉은 마음만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대로 있다네

 

은하수 넘실넘실

  넓고넓어도

견우와 직녀는

  바라나 보지

 

그리운 님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네

 

시는 야속한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되여있다.

시에서는 7월 7석날 하늘에서 만난다는 견우와 직녀에 비겨 언약과 약속을 쉽사리 저버리는 봉건관료배들의 속물적인 면모를 폭로비판하고있다.

또한 시에서는 가난한 인민들에게 리별과 불행의 슬픔을 강요하는 당대 사회현실을 은근히 비판하고있다.

작품은 사람들속에 널리 알려진 전설과 당대사회현실을 재치있게 결부시켜 현실을 비판하고있으며 특히 마지막구절을 여운있게 장식함으로써 사상적내용을 부각시키고 형상의 감칠맛도 조성하고있다.

당대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이 인민적인 립장에서 주어지지 못한 제한성이 있으나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과 세련된 시형상으로 하여 고려후반기 시문학의 대표작의 하나로 되고있다.

 

《녀인의 기박한 운명》

 

한자시.

 

1

녀인은 본디 가난한 집 딸로

머리단장 안하고 초가에서 살았다네

 

타고난 얼굴이 하도 고와서

두볼이 연분홍 옥같았네

 

천하일색이라 제스스로 단정하고

사람들앞에서 몹시 교만하였지

 

끌끌한 젊은이들 하도 많아

모두 멈춰서서 사랑을 구했건만

 

웃음 한번 가볍게 던졌으랴

천금을 준대도 말을 안들었네

 

이럭저럭 혼기를 놓쳐버리고

세월은 강물처럼 빨리도 흘러

 

녀인의 얼굴에도 가을이 들고

귀뚜라미 풀속에서 슬피 울었네

 

고운 그 모습 시들어버리면

즐거운 때가 다시는 안오리

 

2

한 처녀 사람들과 만나지도 않고

깊은 방안에서 고이 자라났네

 

색을 탐내는 사람에게 시집가

옥이 돌한테 재앙을 입었도다

 

미움과 사랑이란 예로부터 변하는것

아침에는 좋아하다 저녁엔 싫어하네

 

서럽게도 가을날 부채처럼 밀려나

떠나가는 남편을 슬피 바라보았도다

 

잠자리는 누굴 위해 고이 거두랴

비단옷도 장안에 넣어버렸네

 

텅 빈방에 달마저 지고나니

이리저리 반디불만 날아다니누나

 

근심걱정 쌓여서 잠간 이룬 꿈길도

백가지 풀들이 가로막아 나서네

 

이 심정 노래해줄 시인도 없으니

끊어진 사랑 되찾진 못하리

 

시는 녀인의 인생교훈문제를 형상하고있다.

첫번째 시에서는 녀인의 교만함과 그것이 가져온 후과를 구체적인 생활과 결부하여 진실하게 노래하고있으며 두번째 시에서는 님을 잘못 만나 설음에 시달리며 빈방만 지키고 앉아있는 녀인의 가슴아픈 정상을 구체적인 생활세부와 결부시켜 생동하게 노래하고있다.

시는 서로 대조되는 두 녀인의 각이한 운명을 비교하여 노래함으로써 사상적내용을 명백하면서도 뜻이 깊게 전달하고있으며 추상적인 교훈적의미를 구체적인 생활화폭을 통하여 보여주고있다.

순수한 인생교훈만을 노래한 제한성이 있으나 당대사회현실에 대한 일정한 비판정신과 세련된 시형상으로 하여 이 시기 시문학에서 의의를 가진다.

 

《죽부인전》

 

의인전기체소설. 깨끗한 절개의 상징인 대를 의인화하여 긍정적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이에 비추어 당대의 부패하고 방탕한 현실을 폭로비판하였다.

작품의 주인공인 죽부인의 원래 이름은 빙이다. 그는 산촌의 이름없는 량반가정에서 태여나 어린 시절부터 단정한 성품을 지니고 성장한다. 어느날 이웃에 사는 의남(여러해살이 식물인 원추리를 의인화한것)이 음탕한 말로 빙을 희롱한다. 그러자 빙은 의남의 단정치 못한 행실에 몹시 성이 나서 《남녀가 비록 같지 않으나 정절을 지켜야 함은 매한가지로다.》고 꾸짖는다. 의남은 부끄러워 말 한마디 못하고 달아나고만다.

빙은 그후 점잖고 지조가 굳은 송대부(소나무를 의인화한것)에게 시집가 그때로부터 죽부인으로 불리우게 된다. 죽부인은 매사를 분별있게 처리하며 모든 일에서 옳고그름을 칼로 대쪽을 가르듯 명확히 판별하면서 생활을 더욱 참되고 굳건히 해나간다. 그는 신의를 자랑하는 매화나 의젓하고 과묵하다는 오얏도 돌아본적이 없으며 귤첨지나 살구따위의 경망한자들에 대해서는 애당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처럼 착실한 성품과 도고한 자세로 하여 죽부인은 만사람의 시선을 끈다.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그려놓고 대바른 그의 성격을 본받으려고 한다. 죽부인은 남편을 잃고 홀로 있을 때에도 치미는 설음과 고독하고 우울한 기분을 노래와 약주로 달래면서 생이 진할 때까지 지조를 굳건히 지킨다.

그가 죽은후 왕은 그에게 절부의 칭호를 내리고 길이 추모하게 한다.

작품은 죽부인에 대한 사가의 평가로 끝나고있다.

《죽씨의 신조가 세상에 큰 공적이 있고 그 자손이 다 높은 절개로 세상의 칭송을 받아왔으니 부인의 현숙함이 지당하다고 할것이다. 슬프다. 이미 착한 사람과 배필이 되여 의지한바 되였으나 끝내 뒤를 이을 자손이 없으니 하늘도 무심하다.》

작품은 인간의 굳센 지조와 절개를 찬양하였다.

작품에서는 작가의 미학적리상을 체현하고있는 긍정적주인공인 죽부인과 그와 성격적대조를 이루고있는 부정인물들인 의남, 귤첨지, 살구 등의 형상을 통하여 굳세고 변함없는 지조와 절개를 찬양하는 한편 당대의 타락한 생활풍조와 외세의 거듭되는 침략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시련을 겪고있을 때 민족적지조를 지키지 못하는 봉건통치배들의 비굴성을 폭로비판하고있다.

작품은 주인공의 형상창조에서 초상묘사와 심리묘사를 비교적 생동하게 함으로써 앞선시기에 창작된 예술산문작품들에 비하여 새로운 전진을 보이고있다. 봉건적인 충군사상이 내비쳐진 제한성이 있으나 시세에 따라 변하지 않고 인간의 굳센 지조와 민족적절개를 지킬데 대한 진보적인 내용을 깊이있는 예술적형상으로 보여줌으로써 문학사적의의를 가진다.

 

시재로 이름난 아버지와 아들

 

청년시절에 들어서면서 시재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리곡은 22살때 단연 우수한 성적으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아전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한다는것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일이였다. 지금껏 아들 하나를 하늘처럼 여기며 뒤바라지를 해온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네가 나를 기쁘게 해주는구나. 아무쪼록 더 열심히 공부하여 가문을 빛내이거라.》

《알겠어요. 어머니》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어머니는 살림이 궁색하여 크게 차리지는 못했으나 성의를 다하여 깨끗하게 상을 차리고 아들의 친구들과 동네 어른들을 청하였다.

《가난하던 집안에 드디여 길운이 트이기 시작했소이다.》

《참 장한 아들을 두셨소. 이 일을 안다면 먼저 간 아버지도 몹시 기뻐할거요!》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원래 영민하고 머리가 남달리 총명하였던 리곡은 그후 더욱 이름을 날리여 조정의 여러 벼슬에까지 오르게 되였다.

예문관 검열을 거쳐 인차 밀직사 부사, 밀직사 지사로 그리고 정당문학으로 되였다.

고려조정에서는 그의 재능을 크게 인정하여 원나라와의 대외교섭문제를 맡아보는 한림국사원 검열관으로 추천했다.

원나라에 간 리곡은 그곳에 오래동안 머무르면서 시와 문장으로 민족의 슬기와 기개를 떨쳤고 사람들을 경탄시켰다.

그가 쓴 하나하나의 시문장이 어찌나 훌륭하고 뜻이 깊었던지 당시 외국의 많은 시인들이 먼곳에서 우정 그를 찾아와 이야기하기를 즐겼고 시문을 론하였으며 돌아갈 때에는 그의 시를 보배처럼 몸에 간수하고 떠나갔다.

리곡의 재능을 그대로 닮아서인지 그의 아들 리색 역시 어린 나이에 벌써 시문을 잘 지어 사람들로부터 찬양을 받았다.

리색의 시문을 대할 때마다 그 나라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군! 어쩌면 그렇게 신통할가.》

《부자간이 다 시를 잘 지으니 송나라의 소식부자 못지 않은 문장가 가문이요!》

리곡과 리색이 쓴 시작품들은 그후 원나라에 널리 알려져 시문집들에 수록되여 전해지게 되였다.

리색과 동시대 시인이였던 김자수는 어느날 리곡과 리색의 고향인 한산에 들렸다가 한산려관에서 이런 시를 남기였다.

 

나라의 문장을

  집대성하였도다

가정부자가

  나라의 으뜸일세

 

산과 강은 예대로

  아름답건만

묻노니 그 누가

  이들을 따르랴…

 

김자수자신도 일찍부터 글재주로 이름이 높았으나 리곡부자의 시재능에 탄복하여 이런 시를 남긴것이다.

 

조국을 그리는 마음이 그대로 시가 되여

 

1341년, 리곡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있은지도 어느덧 다섯달이 되였다.

타향에서는 언제나 그리워지는 조국이지만 다섯달째 잡히니 고국의 소식과 고향의 부모처자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못견디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러던 7월 초나흗날 드디여 집에서 편지가 왔다. 항상 그의 속마음을 다심히 헤아려주던 안해가 인편을 통하여 보내준 소식이였다.

편지에는 어머니도 건강히 잘 계시며 아이들도 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어있었다.

편지를 들여다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있는 리곡에게 옆에 있던 한 외국인선비가 청을 드렸다.

《그처럼 고대하던 기쁜 소식이 왔으니 시한수 지어봄이 어떠시오?》

리곡은 마치 기다리고나 있었던듯 즉시 시를 지어냈다.

 

고국을 떠난지 벌써 다섯달

오늘 아침 처음으로 글월 받았네

 

이 안에 무슨 사연 들어있을가

마음 떨려 얼른 뜯지 못하겠구나

 

모두 편안히 잘 있다는 말뿐이라

이제사 나그네의 근심이 풀리는듯

 

어머니 기력이 좋으시다니 기뻐라

공명을 구함이란 진정 헛되도다

 

그 누가 나를 다시 얽매랴

나는 돌아가리라 나의 집으로

 

리곡이 시를 마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탄했다.

《시가 실토리 풀리듯 줄줄 나오는군!》

《참 보기 드문 재간일세. 옛날에 조식이 일곱발자국만에 시를 지어 칠보지재로 이름이 났는데 그에 못지 않는 재간을 가지고있으니 그대야말로 분명 고려가 낳은 칠보지재요!》

그들을 바라보던 리곡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찌 칠보지재에 비기겠소만 고국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이 그대로 시로 되였는가 보오. 내 조국 고려는 정말 산수가 수려하고 아름다운 곳이요. 그곳을 떠난 후 어쩐지 마음이 산란하여 자나깨나 잊을수 없더니 오늘 정말 기쁜 소식이 날아왔소. 어서 한시바삐 고국으로 돌아가고싶소.》

그의 말을 듣던 그 나라 사람들은 다시 한번 그의 고결한 애국심에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리곡이 써보낸 풍자시구

 

리곡은 외국 체류중에 국내에서 관리등용이 극히 문란해져서 배우지 못한자도 대번에 고관으로 올라앉는 페단이 심해지고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잠이 오지 않았다. 당장 달려가 의견을 제기하고싶었으나 맡은 일이 있어서 그러지 못하고 꾹 참고있었다. 그런데 너무도 터무니없는 소문이 또 들려왔다. 전중 최강구라는자가 아무 자질도 실적도 없이 순전한 뢰물과 아첨으로 정윤이라는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했다는것이였다. 더는 참을수 없었다. 그는 혼자 씩씩거리면서 분을 삭이지 못해서 종이와 붓을 꺼내놓았다. 재상들앞으로 편지라도 써서 보낼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편지를 쓰자니 글이 길어지고 뜻이 정돈되지 않아 붓이 잘 나가지 않았다. 써나가던 초고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냥 구겨내버리고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편지는 후에 보내고 당장은 신랄히 비판하는 시를 써보내는것이 나을것 같았다.

그는 붓을 달렸다.

 

생전에 정윤쯤은 그래도 무방해

죽은 후에 더 받은 중서보다 나으니

 

이 시구는 단 두줄이지만 내용에는 깊은 뜻이 들어있었다.

첫째로 최강구가 어떻게 정윤관직을 차지할수 있단말인가 하는 강한 추궁이 담겨있다.

둘째로 이런짓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신랄한 폭로와 비난이 깃들어있다.

그전에 안취, 조명이라는 변변치 못한자들이 있었는데 아첨을 어찌 잘했던지 죽은 후에도 중서라는 높은 벼슬을 받았던것이다. 시구의 두번째 행은 바로 이 사실을 까밝힌것이였다. 그런 까닭에 두 시구를 합치면 자격이 전혀 없는자들을 이렇게 등용한것이 처음이 아니고 한사람도 아니며 산 사람만도 아니고 죽은자들까지 그렇게 한다는 날카로운 단죄규탄의 사상을 표현하게 된다.

리곡은 이와 같은 폭로와 규탄의 사상감정을 풍자의 수법으로 표현하였다.

리곡의 이런 풍자의 밑바닥에는 나라를 위하여 나라일을 근심하는 뜨거운 마음이 놓여있다. 그러기에 리곡은 다만 이 한편의 풍자시를 써보내는것으로 그치지 않고 얼마후 충목왕이 원나라에 왔다가 본국으로 돌아갈 때 수행인원을 통하여 그동안 사색을 정돈하여 전개한 의견을 적은 편지를 재상에게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사람을 쓰는 문제는 정치의 근본으로 된다고 하면서 간사하고 정직한것을 묻지 않고 인격이 있고 없는것을 론함이 없이 오직 재산과 세력에만 의존하며 자기에게 아부하는자는 간사한자와 아첨쟁이라도 등용하고 자기를 멀리하는자는 청렴하고 솔직한 사람이라도 물리친다면 사람쓰기가 쉬운 일이 아닌가. 이러한 경우에 사람쓰기가 쉬웠으므로 정치는 날로 문란하고 정치가 문란하면 따라서 국가는 멸망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것은 먼 옛날의 력사를 돌아보지 않아도 눈앞에서 명백히 볼수 있다고 절규하였다.

바로 이처럼 리곡은 애국적인 시인이였던 까닭에 나라에 해를 끼치는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풍자도 신랄하게 할수 있었다.

 

 

《대개 사람을 쓰기는 쉽고 사람을 알기는 어렵다.》

《신의롭지 못한것중에 약속을 배반하는것보다 더한것이 없다.》

《어질지 못한것중에 죄없는 사람을 죽이는것보다 더한것이 없다.》

《렴치를 모르면 마음을 바로잡기 어렵다.》

《잘된 시는 오래 짓씹지 않아도 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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