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색

(1328ㅡ1396)

 

고려말~리조초의 학자, 시인. 자는 영숙, 호는 목은이다. 당시의 이름난 시인이였던 리곡의 아들로 태여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문학적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여 시문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유학자로서도 알려졌다.

벼슬길에 올라 리성계와 가깝게 지냈으나 그가 집권한 후 고려왕조에 대한 충정을 계속 주장하다가 두 아들을 살해당하였으며 금천과 려홍에서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그는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후대교육에 정력을 다하여 당시의 학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리색은 성격이 침착하여 그가 큰소리를 치거나 얼굴을 붉히는것을 본 사람이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 한평생 신의를 지키는것을 신조로 삼고 사생활에 구애되지 않았다. 집안에 끼니거리가 떨어지는 일도 있었으나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학문연구와 창작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시와 문장에 매우 능하여 당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며 멀리 다른 나라들에까지 명성을 날렸다. 그의 시작품들은 사상적내용이 뚜렷하고 시상이 크고 심원하며 서정이 풍만한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저서로 《목은집》 55권이 있으며 한자시들로 《부벽루》, 《팥죽》, 《산대놀이》, 《서주루에서》, 《글공부》, 《생각을 펼치노라》, 《구양현에서》, 《소리높이 노래하노라》 등이 유명하다.

 

《 글 공 부 》

 

한자시.

 

글공부란 산에 오르는것 같아

오르면 오른만큼 얻는바가 있다네

 

맑은 바람 고요히 불어오기도 하고

음산하게 우박이 쏟아지기도 하리

 

깊은 못속에 룡이 서려있는듯

하늘로 훨훨 봉새가 나는듯 하리

 

위태로운 욕심 버리고

바른 마음 가슴에 간직하라

 

그 우에 수많은 책을 읽으면

능히 진리를 깨달을수 있으리라

 

옳은 기풍 오래전에 사라지고

큰길은 가시밭이 되였도다

 

창밑에서 책을 어루만지며

탄식하는 이 마음 누가 알아주랴

 

작품은 학문과 진리탐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러한 기풍이 없어진 어지러운 사회현실을 비판하고있다.

시에서는 우선 학문의 고상함과 의미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남들처럼 글공부하기가 산에 올라가는것처럼 힘들지만 노력해야 한다는것과 함께 새로운 진리탐구에로 목적지향성있게 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한편 시에서는 학문과 진리에 대한 옳은 탐구기풍이 사라지고 온통 가시밭으로 되여버린 당대 사회현실을 신랄히 비판하였다.

작품은 학문탐구에 대한 문제를 구체적이고 생동한 생활세부들과 잘 결합하여 흥미있고 생동하게 노래하였으며 비유적표현들을 잘 살려 사상적내용을 웅심깊게 보여주고있다. 량심적인 량반선비의 울분을 노래하는데 머무른 제한성이 있으나 진보적인 사상적지향으로 하여 이 시기 문학에서 의의를 가진다.

 

《소리높이 노래하노라》

 

한자시.

 

혼자 읊고 또 소리높이 노래하노라

가슴속 더운 피는 강물처럼 세차게 흐른다

 

푸른 하늘이여 두터운 땅이여

내 비록 죽을지라도 이 마음 변치 않으리라

 

외적들 눈보라처럼 쳐들어오니

그것을 장차 무엇으로 막아내랴

 

건듯 봄바람은 불어오고

세월은 재빨리도 달아나는데

 

슬프고 슬프다 옳은것을 지키는 마음이여

두줄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린다

 

작품은 고려가 무너질 때 리성계일당과 협력하지 않을 자신의 결심을 다지면서 읊은것이다.

시에서는 정세가 어렵고 긴장한 속에서 나라의 안녕을 근심하고 너무도 빨리 흘러가는 세월을 한탄하는 심정을 격정적이면서도 꾸밈없는 시어로 절절하게 노래하고있다. 서정적주인공의 모습에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짓고 홀로 애타하지만 가슴속에서 피가 대하처럼 굽이치고 하늘땅이 다 듣도록 소리높이 노래부르는 의로운 인간의 기개가 어리여있다.

 

구양현의 감탄

 

리색이 원나라에 체류할 때인 1353~1354년에 있은 일이다.

어느날 원나라의 이름난 시인 구양현이 리색이 쓴 글을 보고 대단히 감동되여 그를 찾아왔다. 두 사람이 격식대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구양현이 대뜸 글이야기를 꺼냈다.

《그대의 시가 우리 원나라에도 널리 퍼져 웬만한 선비들은 모두 그대의 명성을 익히 알고있소. 지금 그대가 우리 나라 땅에 왔기에 이렇게 찾아왔소. 나도 이미 그대의 명성을 글을 통해 알고있으니 초면이지만 초면이라 할수 없구려.》

구양현의 서글서글한 인사말에 리색은 구면친구라도 만난것처럼 기뻐 허물없이 응대했다.

《고맙소. 무슨 큰 재주가 있겠소만 변변치 않은 글을 그토록 과하게 평가해주니 몸둘바를 모르겠구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마주잡고 즐겁게 웃었다.

이날 리색과 구양현은 시와 문장에 대하여 그리고 각자의 생활에 대하여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여 그후 리색은 자기가 창작한 시편들을 구양현에게 보내주었고 구양현 역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의 시편들을 보내주면서 우정을 더욱 두터이하였다.

어느날 구양현이 리색에게 시 한수와 편지를 보내왔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지금 그대의 시가 우리 나라에도 널리 소개되고있소. 목은의 시야말로 시문중의 으뜸이니 과연 천하의 기이한 사람이라 하겠소. 그전에도 말한바 있지만 노래의 근본 전통은 그대의 땅에 있소. 그대와 같이 이름있는 선비들이 그 전통을 계속 빛내고있으니 장차 고려국은 세상에 둘도없는 시의 나라로 될거요.》

그에 대한 리색의 회답편지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나를 보고 시문장의 으뜸이라함은 과한 평가인줄로 아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시문으로 명성을 떨치고있는 재능있는 선비들이 많이 있어 나의 시로 말하면 그것을 흉내내는 앵무새에 지나지 않으며 나의 재능이란 한낱 시골선비의 재능에 지나지 않소. 다만 앞으로 시문을 계속 교류하여 좋은점은 경험으로 삼고 그릇된 점은 교훈으로 삼기를 바라오.》

서로 주고받은 두 시인의 편지는 대개 이러한것이였다.

어느해 리색은 구양현을 생각하며 그에게 이런 시를 써보냈다.

 

노래의 오랜 전통

고려땅에 있다는

그대의 말 한마디

귀에 쟁쟁하건만

 

요즈음 모든 물가

다 올라가는데

내가 지은 글만은

값이 나가지 않소

 

구양현은 그후 이 시를 깊이 보관하였다가 세상을 떠날 때 리색의 자손들에게 돌려주어 가보로 전하게 하였다.

 

※ 구양현ㅡ당시 중국의 유명한 시인

 

시문의 능수

 

리색은 남다른 시적재능과 높은 기교로 하여 국내에서는 물론 이웃나라에까지 이름을 날렸다. 그는 젊었을 때 원나라에 가서 뛰여난 문장과 창작적재능으로 하여 그 나라의 벼슬까지 받은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리색은 자주 원나라사람들과 시짓기내기를 하였는데 그때마다 그의 시를 두고 《목은의 시는 시상이 웅대하고 호방하며 격조가 우아하고 뜻이 세련되고 웅심깊고 평온하며 세상에 으뜸이로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리색의 명성이 높아지자 원나라의 일부 사람들이 그를 시비하려들었다.

어느날이였다.

그날도 그는 여러 문인들과 시짓기겨루기를 하고있었다. 그런데 문득 한 문인이 리색에게 시짓기는 그만하고 바둑겨루기를 하자는것이였다. 조건은 바둑겨루기에서 진 사람이 먼저 시를 쓰는것이엿다. 이미 일부 사람들속에서 자기를 낮추 보고 약점을 잡아보려고 한다는것을 알고있던 리색은 마침 잘되였다고 생각하고 흔연히 응했다.

이기고 지고, 지고 이기고…

긴장한 속에서 바둑겨루기는 1시간이 지나서야 리색이 이기는것으로 끝났다. 리색으로서는 전혀 뜻밖이였다. 사실 그와 바둑겨루기를 한 원나라 사람으로 말하면 리색의 수보다 더 높은 사람이였다. 리색은 의혹을 품은채 다음 단계로 넘어가 그 사람에게 시를 먼저 지을것을 요구하였다. 그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듯 하더니 다음과 같은 시를 써냈다.

 

잔을 가지고 바다에 들어가면

바다가 큰줄을 알렸다

 

시문을 보는 첫순간 리색은 그 사람이 바둑겨루기에서 진 의도를 깨달았다. 항상 시겨루기에서 지다보니 이번에는 제먼저 시구를 떼여 리색을 놀려보자는 의도였다. 아무리 재주있고 문장가라 하여도 자기나라가 더 크다는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야유이고 조롱이였다.

리색은 아무런 래색도 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허, 명시중의 명시외다. 그럼 이번엔 내차례이니 나도 한수 지어볼가요?》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리색은 일필휘지로 시 한수를 단숨에 써놓았다.

 

우물속에 앉아서 하늘을 보고는

하늘이 작다고 한다네

 

무턱대고 남을 깔보는 그들을 우물안의 개구리에 비유하여 표현한 야유였다. 자자구구 정통을 찌르는 비수같은 예리한 문장을 보고 그들은 한마디도 못하고 눈치만 보면서 안절부절 못하였다. 리색을 망신시키려던 사람은 얼굴이 수수떡같이 되여가지고 황황히 자리를 피하고말았다.

이때부터 리색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그의 뛰여난 문장과 기교에 감복한 원나라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그를 스승으로 존대하면서 제자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리성계와의 절교

 

리색은 리성계가 정권을 잡기 전에 그와 매우 친한 사이였다. 우정도 두터워 조정의 벼슬자리를 리용하여 리성계를 추천해주기도 하고 그가 정계에 나서도록 적극적인 방조도 주었다. 그러나 리성계가 《위화도회군》(1388년에 리성계가 료동원정을 위해 떠난 고려군대를 위화도에서 배신적으로 돌려세운 사건)후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고려왕권을 빼앗을 기도를 보이자 리색은 단연코 리성계를 역적으로 치부하면서 단죄해나섰다.

리색은 그후 리성계의 음으로양으로 되는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음흉하고 비렬한 리성계는 리색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박해하던 중 어느날에는 그의 두 아들들까지 무참히 살해하였다. 경기도 려주에 숨어살지 않으면 안되게 된 리색은 리성계를 끝없이 저주하며 고려충신으로서의 지조를 변함없이 지켜나갔다.

(충신은 결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내 어찌 나라를 도적질하고 아들까지 죽인 매국역신 리성계를 왕으로 받든단말인가.)

마음을 다져먹은 리색은 산속에 파묻혀 바깥세상과 담을 쌓았다. 더는 그 어떤 미련도 기대도 가져보고싶지 않았다.

어느날 평양의 부벽루를 찾은 리색은 자기의 변함없는 뜻을 담아 이런 시를 지었다.

 

어제는 영명사를 지나

잠간 부벽루에 올랐네

 

빈 성터엔 한쪼각 달

높은 바위엔 자욱한 구름

 

기린마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옛임금 어데서 노니는고

 

대돌에 기대여 휘파람 부노니

산은 푸르고 강은 흘러라

 

초목을 마주하고 흘리는 눈물

 

리성계가 집권한 후 경기도 려주땅에 숨어살던 리색에게 어느날 한 제자가 찾아왔다. 리색은 아무말없이 그를 깊은 산속으로 이끌었다. 영문을 알수 없어 제자는 그가 가는대로 따라갈수밖에 없었다. 한참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다 마침내 인적이 끊어진 곳에 이른 리색은 그제야 그 리유를 밝혔다.

《리성계에게 죽은 두 아들 생각에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네. 차라리 내가 저승에 가느니만 못하네. 그렇다고 하여 아들들을 죽인자들에게 나약하게 눈물을 보이고싶지는 않고. 어찌겠나, 그러니 이 산속에 들어와 초목을 마주하고 분을 터뜨릴수밖에…》

이렇게 말을 하고난 리색은 그날 진종일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저녁무렵이 되여서야 눈물을 거둔 리색은 주섬주섬 옷매무시를 바로잡더니 말했다.

《오늘에야 내 가슴이 좀 시원해졌네. 가슴속에 맺힌 상처가 깨끗이 나을리는 만무하네만 그래도 한바탕 울분을 터뜨리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네. 고맙네.》

스승과 제자는 밤늦게야 산을 내렸다.

 

성균관과 리색

 

리색은 39살때 성균관의 대사성이 되였다. 성균관은 최고교육기관이고 그 기관의 우두머리벼슬을 대사성이라고 하였다. 일찌기 벼슬길에 나섰던 초시기에 아버지의 상사를 당한 슬픔속에서도 왕에게 인재육성과 성균관사업을 개선할데 대한 의견을 제기하였다.

리색은 언제나 인재들을 잘 키우는것을 나라의 앞날을 위한 중요한 사업으로 여기고 자신의 힘과 정성을 다 기울여왔다. 이러한 리색이 대사성이 되였으니 그 열의가 여간 아니였다.

방금 보수한 성균관건물내부를 꾸리고 학생들을 많이 모집하는 한편 실력있는 문인들을 교육에 적극 인입하였다. 그리하여 쟁쟁한 학자들인 김구용, 정몽주, 박상충, 박의중, 리숭인 등이 선발되여 다른 관직을 가진채 겸임교원격으로 되였다. 여느 사람같으면 이쯤하고 만족하련만 리색은 그렇지 않았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그전에 없던 새로운 질서를 세웠다. 그는 교육을 담당한 문인들을 매일 명륜당(강당)에 모여놓고 학생들에게 배워줄 내용의 과목준비를 잘하도록 하였으며 수업을 마친 후에는 다시 모여 제기된 내용들을 집체적으로 토론하게 하였다. 리색자신이 여기에 적극 참가하여 자기 의견도 말하고 다른 사람의 견해도 허심하게 들었다. 이렇게 한다는것은 말하기는 쉬우나 실천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한다하는 학자들이 자기의 본직들을 가지고있으면서 겸직으로 나오는 형편에서 이런 교수질서에 복종하는 일이 헐할수 없었다.

리색은 각자가 자기주장을 허심하고 진지하게 토의하도록 하는 한편 자기가 직접 앞장서서 적극성을 보이였다. 힘들었지만 앞날의 인재들을 키우기 위해 피곤도 다 무릅쓰고 애써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점차 쇠진해가던 나라의 문풍이 이때부터 다시 활기를 띠고 학문이 장려되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리색의 공적을 찬양해마지 않았다.

 

자진해나선 사신의 길

 

공민왕이 살해당하고 그해 11월에 명나라사신이 돌아가는 도중에 호송관 김의가 사신들인 채빈을 죽이고 림밀을 붙잡아 북원으로 도망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명나라가 새로 일어나서 원나라를 내쫓은 후 고려와 명, 원 두나라사이가 미묘하고 복잡한 속에 벌어진 이 사건은 그 관계를 더욱 첨예하게 만들었다. 누구든지 명나라에 들어가서 복잡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풀어야 하였으나 생명의 안전조차 담보되지 못한 이 길에 선뜻 나서려는 고관들이 없었다.

이런 때 리색이 자기가 가겠다고 나섰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굳이 말렸다.

《공의 그 충의심은 감동되오만 이젠 쉰고개를 바라보는 몸이고 또 지금 앓고계시는데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이때 그 먼길을 어떻게 다녀오신단 말씀이십니까. 안될 일이올시다.》

리색은 자기를 위해주는 여러 사람의 이 진정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권고는 고마웠지만 나라의 형편으로 볼 때 이들의 고마운 권고를 받아들일수 없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슴을 식히려는듯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창밖으로 먼산을 바라보고있다가 리색은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평민출신으로 벼슬이 재상에 다달은 사람이요. 항상 결사의 각오로 이에 보답하려 하였더니 이제 그 죽을 곳(결사적으로 투쟁할 곳)을 얻게 되였소. 설사 가는 도중에 죽을지라도 내 시체를 가지고 두 나라 사이에 중간역할을 놀아서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그 나라와의 외교적긴장을 해소하는데 바로 전달될수만 있다면 이 몸이 비록 죽어도 오히려 산 셈이 될것이요.》

그의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장한 각오를 하고 나선 리색의 애국충정과 정열을 다시금 느끼게 하였다.

이런 각오를 하고 떠난 리색은 강의한 의지와 애국열정으로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마침내 맡겨진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 귀국하였다.

 

민족적자존심을 지킨 리색

 

리색은 소박하고 퍽 겸허한 성품을 가지고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누구앞에서도 허리를 굽힐줄 몰랐다.

고려가 아직 무너지기 직전시기에 있은 일이다. 당시 고려의 북방 대외환경은 매우 복잡하였다. 이런 때 리색은 조정의 임무를 받고 명나라 주원장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방금 나라를 세운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리색을 만나보고 처음부터 그의 인품과 뛰여난 학식, 비범한 언행에 놀랐다. 남의 나라 사람이 아니면 꽉 붙들어두고 같이 지내자고 하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리색이 주원장을 대해보니 혈기왕성하고 패기충천한 인물이였다.

(흠, 곽자흥이라는 호걸이 마음에 들어서 양딸을 주었다더니 그럴만하게 생긴 결패있는 사나이인데…)

리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앉아있는데 명나라 태조는 그대로 리색에게 감탄을 하면서도 자기의 생각을 좇았다. 이런 인물을 허리굽히게 한다면 자기가 늘 대해오는 범상한 벼슬아치들로부터 공경을 받는것보다 얼마나 긍지로우랴 하는 이름할수 없는 충동이였다.

그런데 리색은 외국사절로서 취해야 할 의례적인 례절을 정중히 지킬뿐 그 이상은 아무런 태도도 나타내지 않았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경험많은 리색인지라 상대의 이런 눈치를 감촉하는 순간 《왜 그럴가?》하는 의문과 함께 그 어떤 묘한 기색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딱히 알지 못하였다. 이런 속에서 명나라 태조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대는 우리 말을 아시오?》

《이 사람이 원나라에 가있은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럼 서로 우리 말로 한담이나 좀 합시다.》

명나라 태조가 말을 붙여보니 여간 류창하지 않았다. 리색은 중국의 북방사람들이 쓰는 말로 능숙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호주출신인 명태조는 그 말에 익숙치 못한지라 자주 그가 하는 말들을 한참씩 새겨보아서야 그 뜻을 알수 있었다. 명태조는 이것을 리색의 약한 고리로 생각하고 물었다.

《그대가 하는 한어(중국말)는 납합출이 하는 말과 비슷하오.》

참으로 아리숭한 소리였다.

(납합출은 녀진족의 추장이다. 그도 북방사람들이 쓰는 말을 썼다. 그런 점에서는 자기와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할수 있다. 그러니 나더러 납합출처럼 자기를 왕으로 모시는 자세를 취하라는 뜻인가? 그건 안될 소리지. 이 리색은 고려의 신하이지 명나라의 신하는 아니야.)

리색은 순간적인 사색을 굴렸다. 명태조에게서 받은 인상에서 무엇인가 석연치 못한 점을 감촉하면서도 그것이 딱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것을 이제는 알것 같았다. 그것은 명태조의 조급성이고 거만성이였다. 자기가 당당한 이웃나라의 외교사절임에도 불구하고 무례하게도 누구와 비슷하다느니 하고 아무말이나 탕탕 하는것을 보면 그의 조급성과 거만성을 알만하였다.

당장 해당한 응대를 하고싶었으나 역시 정치외교무대에서 세련된 리색인지라 말보다 점잖은 거동으로 처리하였다.

그는 입가에 알릴듯말듯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명태조가 그것을 어찌 놓치겠는가. 그는 리색이 자기앞에 허리를 굽힐 인물이 아니라 민족적자존심을 지닌 도고한 사람임을 다시한번 느꼈다. 그럴수록 리색이 탐났고 그런 인재를 가진 고려가 부러웠다. 그리하여 명태조는 진심으로 감탄해서 좌우의 신하들이 들으라고 한마디 하였다.

《이 로인은 감화로다.》

《감화》라는 말은 라마교(불교의 한 파)를 장악지도하는 사람들의 관직명을 가리킨다. 그러니 명태조가 한 《감화》라는 말은 쉽게 표현하면 《생불(살아있는 부처)》과 비슷한 뜻으로 된다.

그렇지만 리색은 온당치 못한 말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존중해서 하는 말을 들은 이때도 여전히 세련된 침착성을 유지하면서 그 말에는 무언으로 응대하고 말마디를 다른데로 돌려버렸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리색

 

리색이 대외관계에서 굽힐줄 모르는 태도를 취하는데는 민족적자존심이 안받침되여있었다면 대내에서 취한 굽힘없는 태도에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신이 깔려있었다.

그가 리성계와 끝까지 타협하지 않은데서 그런 립장과 성품을 찾아볼수 있다.

아직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왕자리에 앉아있을 때였다. 왕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갔던 리색이 귀양살이를 끝마치고 수도인 개경(개성)으로 돌아와보니 공양왕은 말이 왕이지 실지로는 리성계가 《왕노릇》을 하고있었다. 리색은 속으로 괘씸하였으나 아무 내색도 내지 않고 왕을 만난 다음 리성계가 있는 곳에도 인사삼아 들리였다.

리성계는 왕권탈취의 마지막준비로 신망있는 대신들을 끌어당기는 놀음을 밉살스러울 정도로 벌리고있었다. 그중에서도 고려말기의 인망높은 문인들인 《3은》을 끌어당기려고 무진 애를 쓰고있었다. 《3은》이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목은 리색이였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다. 리성계는 무관이였다. 그리고 무관지지자들은 있었다. 그런데 리성계를 반대하는 큰 세력이 문인들이였다. 문인들이야 정 말을 듣지 않는 경우 죽여버리면 그만인데 그것도 최후수단이고 될수록 얼려서 돌려세워야 하였다. 그러자면 문인들의 중심인물들인 이 《3은》을 틀어쥐여야 하였다. 아무리 애써도 《3은》에게는 처음부터 이발이 들지 않았다. 그러한 때인지라 리성계는 찾아온 리색을 최대귀빈으로 대하였다.

그는 버선발로 마루아래에 내려서서 큰절로 리색을 맞아 방안에 들어와서는 상좌에 안내하였다. 좌우에는 리성계지지자들이 늘어서있었다.

리색은 리성계가 큰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곰살궂게 노는 꼴이 역겨웠으나 안내하는대로 상좌에 가 막 앉으려고 하였다. 바로 그 순간 리성계가 그의 손을 잡았다. 언제 가져왔는지 심부름하는 아이가 술상을 들고 들어와 옆에 서있었다. 리성계는 얼른 주전자를 들고 옥잔에 술을 남실남실하게 붓더니 서있는 리색에게 한쪽무릎까지 굽히고 두손으로 바쳤다. 리색이 같이 앉아서 받으려는데 리성계의 걸걸한 북방사투리가 울려나왔다.

《공께서 서서 드실걸 바라오.》

이것은 참으로 예상밖의 권고였다. 술을 권하는 사람은 무릎을 꿇고서 바치고 받는 사람은 서서 마시는것, 이것은 아래사람과 웃사람사이에서만 있을수 있는 일이였다.

리색도 처음에는 어정쩡했다. 무엇때문에 리성계가 자기를 이렇게까지 대하는것일가? 다음순간 그는 리성계가 자기의 마음을 낚으려고 비굴하게 행동한다는것을 알아차렸다. 리색은 태연히 그 술잔을 받아서 선채로 쭉 마시였다. 그리고는 공연히 《카ㅡ》하고 큰소리를 낸 다음 리성계가 앉으라는 소리도 하기전에 상좌에 털썩 앉았다.

좌우에 서있던자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아니꼬운 눈길로 리색을 쏘아보았지만 리성계의 제지하는 눈짓이 있는지라 어쩌는수가 없었다.

리색은 속으로 (흥, 네놈들이 나를 보고 어찌 감히 그런 불손한짓을 하는가고 투덜거리려고 했겠다. 그러겠으면 어디 실컷 그래봐라.)하는 태도로 시치미를 뚝 땄다.

이때만이 아니였다. 리성계는 정권을 탈취한 다음에도 리색을 끌어당기려고 애썼다. 한번은 그가 리색에게 사람을 보내여 그를 모셔오라고 하였다. 기별을 받은 리색은 그 《초청》을 거절해치우고싶었으나 여러모로 생각되는것이 있어 리성계가 있는 곳으로 갔다.

리성계는 대청 중심에 놓여있는 룡상에 앉아있고 추종자들이 그의 좌우에 늘어서서 신하된 자세를 취하고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위풍을 마치 리색에게 보라는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리색의 태도는 태연하였다. 리색은 약간 읍을 하였다. 두손을 마주잡고 가슴노리까지 들면서 약간 례절을 표시하는것을 읍이라고 하였다. 읍은 절이 아니다. 리색이 리성계에게 절을 하지 않은것은 왕앞에서 취하는 신하의 례절을 지키지 않는다는 표시였다.

반면에 리성계는 얼른 룡상에서 내려와 귀빈을 대하는 례의로 리색을 맞았다. 이때 시강들이 줄레줄레 들어왔다. 왕앞에서 경서에 대하여 강의하는데 참여하는 벼슬아치들인것이다. 그러자 리성계는 다시 룡상에 돌아가서 앉게 되였고 시강관들도 제자리를 차지하였다. 이제 남은것은 리성계가 특별히 마련한 좌석을 리색에게 권하면 될판이였다. 그 순간 리색이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는 앉을 자리가 없소그려.》

리성계가 얼른 대답하였다.

《어서 이리로 오셔서 앉으시오. 원컨대 한번 가르침을 주시여 이 사람이 아는것 없다고 버리지 말기 바라오.》

《아, 무슨 별말씀을 다… 이 망국의 관원은 여기에 차마 있을수 없소이다. 난 이젠 더는 벼슬할 생각이 없으니 고향에 돌아가서 고향땅에 묻힐가 하오.》

그는 표연히 돌아서서 훨훨 활개를 치며 떠나갔다. 그의 등뒤에서 리성계가 표독스러운 원한의 이발을 가는 소리가 났지만 리색은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이미 정몽주를 거리에서 살해한 리성계는 드디여 리색을 향해 시퍼런 칼날을 들었다. 그리고는 먼저 리색의 아들 둘을 죽였다.

아들의 죽음을 당하고 피눈물을 흘린 리색은 그때 너무도 통분하여 이런 시를 지었다.

 

송헌은 왕이 되고

  우리 집은 흩어졌네

이런 일 있을줄을

  꿈엔들 알았으랴

두정마저 우리 아이

  공격하여 나섰나니

내식구 모여살 날

  언제면 또 있을고

 

※ 송헌ㅡ리성계

※ 두정ㅡ정총과 정도전. 그들은 다 리색의 제자였다.

 

두 아들을 다 죽였으니 이번에는 리색의 차례였다. 리성계와 끝까지 타협하지 않은 리색은 1396년 음력 5월에 사망하였다.

리색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대한 여론은 구구하였다. 왜 갑자기 죽었겠는가. 아마도 리성계가 암살하였을것이다. 이것이 민간에 돌아가는 소리였다. 이에 바빠난것은 리성계였다. 어떻게 하든지 사태를 수습해야 하였다. 리색이 죽은지 얼마후 리성계는 리색사망당시의 안찰사에게 죄를 씌워 처형하는것으로 무마하고 사태를 어물쩍 덮어버렸다.

 

 

《문 닫고 깊이 앉아 진리를 생각할 땐 먹지 않아도 저절로 배부르다.》

《글공부란 산에 오르는것 같아 오르면 오른만큼 얻는바가 있다.》

《위태로운 욕심 버리고 바른 마음 가슴에 간직한채 그 우에 수많은 책을 읽으면 능히 진리를 깨달을수 있다.》

《수레는 물을 건널수 없고 배는 륙지를 다닐수 없다.》

《문과 무는 어느 하나를 그만둘수 없습니다.》

《국학(대학)은 풍숙순화의 원천이며 인재는 정치와 문교(문화교양)의 근본》

《하늘땅은 한 없으나 인생은 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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