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숭  인

(1349ㅡ1392)

 

고려후기의 학자, 시인. 자는 자안, 호는 도은이다. 공민왕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숙옹부승으로 임명되였고 여러 관직을 거쳐 장흥고사 겸 진덕박사로 되였다. 그후 전리총랑, 밀직제학, 춘추관 동지사 등의 벼슬을 지냈다. 우왕때에 김구용, 정도전 등과 함께 북원의 사신을 돌려보낼것을 제의하였다가 귀양갔으나 이어 돌아와서 우사의대부로 되였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헝클어진 관리등용제도, 군사제도 등을 바로잡을것을 제기하였다. 그후 밀직제학으로 있던 그는 정몽주와 함께 실록편찬사업에 참가하였으며 밀직사 동지사로 전임되였다가 대토지소유자 리인임의 인척이라는 리유로 귀양갔다. 그후에도 그는 여러번 감옥살이를 하였다. 그는 리조성립이후 정도전과 조준의 모해를 받아 순천에 귀양갔다가 자객에 의해 죽었다.

그는 문장에 능하여 명나라와 다른 나라에 보내는 문서작성에 많이 참여하였으며 명나라 사람들속에 널리 알려져있었다. 리숭인은 자신의 생활체험에 기초하여 당대 사회현실의 부정면을 비판한 시들을 많이 창작하였다. 시 《옛시 〈세상살이 어려워라〉의 운을 따라》는 이러한 주제의 우수한 작품이다. 리숭인의 산문작품으로 《배렬부전》이 널리 알려져있다. 그의 문집으로는 《도은집》이 있다.

 

《배렬부전》

 

전기. 고려말기 왜구의 침입과 그를 반대하는 투쟁에서 발휘된 고려인민들의 애국적지조를 찬양한 작품이다.

경상도지방에 살고있던 배씨부인은 소박한 보통 녀인이고 두 아이를 가진 어머니였다. 그의 남편은 적들이 우리 나라에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싸움터에 자진하여 나갔다. 집에는 배씨부인과 아이들만이 있었다. 배씨부인이 살고있는 마을에까지 기여든 왜적들은 두 아이를 데리고 몸을 피하려는 배씨부인을 발견하고 뒤쫓으면서 돌아서면 죽이지 않겠다고 회유하는 한편 활을 겨누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조금도 두려움없이 태연자약하게 《왜 나를 빨리 죽이지 않느냐. 내 어찌 원쑤놈들에게 죽을소냐.》고 웨치고 강물에 몸을 던지였다. 그러자 악에 받친 적들은 두 아이들마저 활로 쏘아죽이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작품은 죽을지언정 꺾이지 않는 조선녀성의 민족적지조와 애국적기상을 전하며 왜적들이 우리 나라에서 감행한 야수적만행의 일단을 폭로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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