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여  형

(14세기)

 

고려시기의 시인. 구체적인 경력과 창작활동은 밝혀져있지 않다. 다만 《대동운부군옥》, 《동인시화》, 《동문선》,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단편적인 자료들과 약간의 시편이 실려있을뿐이다.

그에 의하면 윤여형은 리제현 등과 함께 고려말기에 활동한 재능있는 시인의 한 사람이였다. 그는 한때 고려정부에서 지후, 학유의 벼슬살이를 하였으나 어지러운 정계생활에 참여할 생각이 없어 벼슬살이와 인연을 끊고 고향에 내려가 한생을 불우하게 살았고 창작으로 여생을 마치였다. 시 《촌에 살면서》에서 시인은 벼슬살이를 그만둔 자신의 심중의 뜻을 담아 《나라 위한 옳은 대책 세우지 못할바에는 책을 버리고 농사를 배우리라》고 하였다. 또한 시 《관동지방에서 밤을 맞으며》에서 시인은 고달픈 생활처지와 울분을 펼쳐보이면서 《하늘땅 가없이 넓어도 나에게는 집이 없어라》고 하였고 시 《길손으로 령광동쪽 자복사에 묵으며》에서는 《만갈래로 얽힌 근심 버들개지와 같이 분분하고》, 《10년간의 방랑생활 쑥대밭같이 허망하》다고 노래하였다.

윤여형은 풍부한 생활체험에 기초하여 당대의 불공평하고 야속한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재현한 시 《도톨밤의 노래》와 같은 의의있는 작품들을 남기였다. 시 《도톨밤의 노래》는 고려말기의 농촌현실을 생동하게 보여준 가장 우수한 작품의 하나이다.

 

《도톨밤의 노래》

 

한자시.

 

도토리, 도토리

밤 아닌 밤

그 누가 불렀던가

이것을 도톨밤이라고

 

맛은 씀바귀보다 쓰고

빛은 숯인양 검으나

굶주릴 때 먹으면

황정보다 근기가 있다네

 

농가마을 늙은이들

량식을 짊어지고

새벽닭 울 때부터

떠나가누나

 

만길 드높은

벼랑에 기여올라

칡덤불 헤잡으며

짐승들과 아귀다툼을 하네

 

이른아침부터 긁어모은것이

광주리에도 차지 않았는데

두다리는 몹시 저려오고

주린배 쪼르락소리가 나누나

 

날씨는 춥고 해는 저문데

텅 빈 골안에서 밤을 새우려니

솔가지 꺾어다 불을 지피고

나물을 뜯어다 국을 끓이네

 

밤깊어 내리는 찬서리는

부황난 살결을 적시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신음하는 소리에

가슴이 그냥 미여지는듯…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느냐고

마을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더니

늙은이 공손한 말씨로

나에게 이런 사연 들려주었네

 

《요즈음 권력있고 세도 좋은자들

백성들의 논밭을 함부로 빼앗아

산기슭, 시내가에 패말을 박고는

관청을 끼고 자기걸로 만든다오

 

어떤 밭은 밭 하나에

밭임자가 여럿이 있어

도조를 물고 물고

또 물어야 하지요

 

큰물이 지든지 날씨가 가물어

한해농사 흉년 들면

밭이랑은 묵어나고

잡초들만 우거진다오

 

지주들 농민의 살점을 저며

땅우에 열린것 말끔히 쓸어가니

가지가지 관청의 세금들은

무엇으로 물어준단말이요

 

젊은것들은 몇천명씩

그리운 고향을 떠나가고

늙고 병든 사람들만 남아

빈 집을 지키고 살지요

 

구렁에 몸을 던져

죽지도 못하고

이렇게 산에 올라

도토리를 줏는다오》

 

쓸쓸히 울리는 늙은이의 말

이야기는 짧고 소박하나

다 듣고나니 대답할 말 없어

마음은 아프고 목은 잠겼네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귀족들의 집에서는 하루에 만량어치를 먹어

진귀한 음식 상우에 그득차고

다섯 솥에 끓어넘친다네

 

말 부리는 하인까지 술에 취하여

비단자리우에 먹은걸 토해놓고

살찐 말들은 곡식이 싫어

쇠우리안에서 고개를 흔드네

 

그 누가 알랴 잘사는 저자들의

상우에 벌려놓은 맛있는 음식이

모조리 이런 마을늙은이들의

피눈물로 이루어진것임을…

 

시는 고려봉건말기의 썩어빠진 현실을 폭로한 사실주의적경향의 대표적작품의 하나이다.

작품에서는 씀바귀보다 그 맛이 쓰고 숯과 같이 검은 도톨밤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유일한 식량으로 되고있음을 노래하면서 끝없는 착취와 억압속에 눈물겹게 살아가는 당대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처지를 생동하게 보여주었다.

시는 첫부분에서 험한 산속에 들어가 추위에 쪽잠을 자고 새벽부터 험한 산벼랑을 기여오르며 도토리를 줏는 농민들의 참혹한 형상을 펼쳐보이면서 그들이 당하는 불행과 고통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있다.

다음부분에서 시는 왜 이렇게 고생스럽게 도토리를 줏느냐는 시인의 물음에 대답하는 늙은 농부의 하소연을 통하여 량반, 지주, 토호들의 무지막지한 토지수탈과 관가의 터무니없는 조세, 사정없는 부역 등 2중 3중의 착취로 여지없이 황페화되여가는 농촌의 현실과 도탄속에 신음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진실하게 보여주고 이 참혹한 현실을 빚어내고있는 통치관료들의 학정과 죄행을 분노에 차서 고발하였다.

시는 마지막부분에서 《하루에 만량어치를 먹어》치우는 부자놈들의 사치하고 방탕한 생활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바로 《마을늙은이들의 피눈물로 이루어진것》이라고 밝히였다.

작품은 이렇듯 당시 농민들이 당하는 굶주림과 빈궁의 근원이 봉건통치배들, 지주들의 가혹한 착취에 있다는것을 폭로하고 토지의 겸병과 더 많은 재물의 축적을 위해 미쳐돌아가는 놈들의 죄악적행위를 예리하게 비판하였다. 시는 당대의 첨예한 모순과 착취행위가 반인민적인 봉건제도자체와 결부되여있다는것을 밝히지 못하였으나 생활을 사실주의적으로 실감있게 보여줌으로써 봉건시기 진보적인 시문학계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