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상식

리조시기 중앙군영 《훈련도감》
 

리조시기 중앙관청인 《훈련도감》은 임진조국전쟁때 인민들속에서 높은 상무적기풍을 발양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군사관계분야의 관청이다.

1592년 4월 일본침략자들은 수십만의 대군을 내몰아 우리 나라를 불의에 침입하여 우리 인민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하고 재물을 략탈하였으며 수많은 문화재들을 불태우고 파괴하였다.

이러한 환경에 대처하여 리조봉건정부에서는 1593년 8월 《훈련도감사목》을 발표하고 조총과 화포로 무장한 포수를 양성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한 후 그해 10월에 《훈련도감》을 창설하였으며 도감의 관리들을 임명하고 좌영과 우영을 두어 본격적인 훈련을 진행하였다.

《훈련도감》의 군사로는 나라를 사랑하는 유생, 한량, 량인, 아전, 공노비, 사노비 등 각계각층을 다 받아들이였는데 그들속에서도 힘이 세고 건장한 장정들을 뽑아 훈련시키였다.

《훈련도감》의 기본임무는 우선 여러가지 훈련을 통하여 전법을 익숙시키되 특히 조총사격과 포사격술을 익숙시키는것이였다.

다음으로 남쪽에 둥지를 틀고있는 왜적들을 소탕하기 위한 전투에 적극 참가하며 국왕의 호위와 수도방어임무를 수행하는것이였다.

또한 전국의 군사들에 대한 조총사격술과 칼, 창쓰기훈련지도를 하며 군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둔 전군의 임무도 수행하는것이였다.

《훈련도감》이 설치됨으로써 봉건국가의 급료에 의하여 유지되는 직업적상비군이 출현하게 되였고 따라서 조총과 포로써 먼거리에 있는 왜적들을 소멸할수 있는 정예한 군사를 꾸릴수 있게 되였다.

《훈련도감》이 설치된지 1년남짓한 기간 평양에서는 수많은 민간의 아동들까지 앞을 다투어 《훈련도감》의 군사로 입대하여 맹렬한 훈련을 진행하고있다고 당시 군사 최고관청이였던 비변사에서 임금에게 실태를 보고한 사실은 《훈련도감》의 설치가 왜적들을 물리치는 싸움에서 실지로 큰 성과를 나타내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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