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 용 가 》

 

신라의 민속가요. 지난날 경상도 울산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남해안일대에서 액막이를 할 때 처용탈을 쓰고 가무놀이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이다. 《처용가》는 8구체가사로 되여있다. 가사의 내용을 해석하면 아래와 같다.

 

동경(경주) 밝은 달에

밤깊도록 놀며 다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랭이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해인데

둘은 뉘해인고

본래는 내해다마는(내 다리가 있던 자리다만)

빼앗긴걸 어찌하리오

 

이 노래와 관련하여 흥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신라 현강왕(9세기)이 학성(울산)지방에 유람갔다가 돌아오면서 개운포(울산 남쪽 25리의 해변에 있다.)에 이르렀다. 이때 어떤 사람 하나가 기괴한 모습에 이상한 옷차림으로 왕앞에 나타나서 노래하고 춤추며 왕의 덕을 찬양하였다. 그는 왕을 따라 도읍지로 들어와서 스스로 처용이라고 부르며 밤마다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었다. 사람들은 그가 어디에서 사는지 알지 못했고 신인(신령스러운 사람)으로 인정하였다. 여기까지는 《고려사》에 있는 내용이다.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더 들어있다. 왕이 따라온 처용을 미인에게 장가들였는데 열병귀신이 그 미인이 탐나서 사람으로 변하여 밤이면 몰래 미인의 방으로 들어가 잠자리를 같이 하였다. 어느날 밤 밖에 나갔던 처용이 집에 돌아와 자리속에 두 사람이 누워있는것을 보게 된다. 처용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난다. 그가 부른 노래가 우에서 본 내용이다. 그러자 열병귀신이 처용앞에 정체를 드러내여 무릎을 꿇고 빌었다.

《내가 당신의 안해를 탐내서 그에게 범접하였소. 그런데도 당신은 노하지 않으니 감탄하게 되오. 맹세하건대 이제부터는 당신의 얼굴을 그려서 붙여둔것을 보기만 하여도 그 문안에 들어가지 않겠소.》

이리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처용의 얼굴을 그려서 집집마다 문에 붙이여 악한 귀신을 쫓아버리고 행복을 맞아들이는 미신적인 풍속이 생기게 되였다는것이다.

우에서 본것처럼 처음에는 민간액막이풍습과 결부되여 불리우던 노래가 점차 퍼지면서 궁중의 액막이의식인 나례에도 리용되게 되였다. 고려시기에는 민간극의 영향밑에 노래의 크기도 여러배로 확대되고 이야기내용도 훨씬 극적으로 째였으며 노래가 춤과 함께 극적인 행동과도 결합되였고 액막이의식끝에 상연되는 공연작품들가운데서도 기둥작품으로 되였다. 처용가무는 19세기 중엽까지 계속 전해져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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