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식 

 

바둑의 력사

 

바둑은 원래 바돌이라 하던것을 바독, 바둑이라고 하였으며 한때 한자의 영향으로 위기라고 한적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단군시기부터 바둑놀이를 한것으로 전해지고있는데 세 나라 시기에 상당한 정도로 성행하여 다른 나라에까지 알려졌다.

당나라의 력사책 《구당서》에는 고구려사람들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기록이 있고 《후안서》에서는 백제에서 바둑두는것을 더욱 숭상한다고 하였다.

고구려의 중 도림이 백제에 숨어들어가 개루왕을 바둑으로 현혹시키여 나라를 망하게 하고 수도를 광주에서 공주로 옮기게 하였다는 전설은 《사기》에 근거를 둔 이야기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32대 효성왕이 바둑을 매우 좋아하여 당나라에서는 외교사절을 신라에 보낼 때 반드시 이름높은 문인과 바둑의 명수를 수행하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경상남도 가야산 바위우에는 바둑판이 새겨져있는데 그것이 신라때의 학자 최치원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는 전설도 있다.

후기신라시기에는 당나라와 바둑교류를 자주하여 이름을 떨치였다.

738년봄 당나라 현종은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바둑 잘 두는 사람을 보내달라는 요청까지 하였다고 한다.

이 시기 당나라에 바둑기사로 들어가 이름을 낸 박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당황제의 바둑비서(기대조)를 하다가 귀국할 때 시인이였던 한 장교는 《그대 적수 뉘있으리》라는 시까지 지어주었다고 한다.

고려시기에는 귀족계층뿐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바둑이 널리 보급되였다.

리규보의 시문에는 바둑을 소재로 한것이 많고 당시의 묘비석에 바둑이야기를 쓴 글이 지금도 남아있다.

수가 깊고 다양한 바둑은 무인들속에서 애용되여 1010년 거란의 침입때 도통사 강조는 통주성의 지휘처에서 바둑을 두면서 전술을 련마하였다고 한다.

리조초기는 바둑의 쇠퇴기라고 볼수 있다.

리조의 건국세력들은 고려말엽의 부패와 혼돈에 바둑도 한몫 하였다고 보았던것이다.

그러다 왕실과 귀족들속에서 바둑이 다시 퍼져 하층일반사람들에까지 보급되였다.

세종왕의 아들 안평대군이 바둑에 비상히 관심을 돌렸으며 리순신도 싸움터에서 짬짬이 바둑을 두었다는 기록이 《란중일기》에 씌여있다.

대원군도 바둑을 즐겨 전국에서 바둑명수들이 그의 저택 윤현궁으로 몰려들 정도로 바둑이 널리 일반화되였다고 한다.

이렇듯 바둑은 오랜 력사적전통을 가지고있다.

오늘 우리 공화국에서는 바둑을 적극 장려하고 널리 보급하고있다.

결과 나어린 선수들이 바둑 신동이로 자라나게 되였으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련일 우승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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