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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자랑ㅡ신문《조보》

 

우리 선조들은 16세기 초에 조정에서 낸다고 하여 《조보》라고 이름 지은 신문을 만들어냄으로써 훌륭한 신문의 전통을 창조하였다.

《중종실록》38권의 중종15년(1520년) 3월 갑인일기록에서는 신문《조보》의 운영과 관련한 문제에 대하여 밝히고있다. 이것은 신문 《조보》가 1536년에 나온 이딸리아신문 《베네찌야 가제뜨》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발간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신문《조보》는 창간당시부터 오늘의 신문들처럼 일간지였으나 이딸리아신문《베네찌야 가제뜨》는 비정기신문이였으며 도이췰란드의 《슈트라스부르 렐라티온》과 영국의 《위클리뉴스》 그리고 프랑스의 《가제뜨》등 신문들은 17세기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주간지였다.

유럽의 첫 일간지는 《조보》가 나온지 무려 140여년이 지난 후인 1660년에 이르러서야 도이췰란드에서 나왔다.

근대시기 우리 나라에 와있었던 프랑스사람 꾸랑은 저서 《조선서지》에서 《이 신문은 매일 오전에 나오므로 그 전날 저녁부터 밤사이의 소식은 물론 당일 아침의 소식도 실었다》고 썼다.

신문《조보》는 현대의 신문과 거의 같은 내용의 기사를 편집함으로써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신문에는 국왕의 명령과 지시, 당면정책에 대한 선비나 관리들의 의견, 관리들의 인사문제, 국왕에게 올리는 수도와 지방의 각종 보고서, 농사에 대한 내용 등을 실었으며 여러가지 희귀한 사건이나 특이한 자연현상에 대한 기사들도 실었다. 이밖에 신문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기사들도 실었다.

《조보》의 너비는 35cm이고 길이는 이보다 길었으나 기사의 량에 따라 규격이 정해졌으므로 일정하지 않았다.

왕에게 올리는 일체 문건을 주관한 승정원이 신문에 낼 자료들을 선택하여 그 산하기관인 조보소에 내려보내면 여기에서는 그 내용을 편집하여 필사한다음 중앙과 지방의 각 관청서리들에게 나누어중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매일 배포된 신문《조보》는 봉건지배계급들에게 당시의 정세와 상식, 사건을 알려줌으로써 봉건정치에 대한 관심과 자연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조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1578년에는 개인들이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민간신문 《조보》를 인쇄하여 발행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국왕 선조는 발행을 중단시키고 그 관계자들을 류배보냈다.

고종때에 이르기까지 중단없이 나온 《조보》는 1895년 2월부터 《관보》라는 이름으로 계속 발행되였다.

이러한 력사적사실은 우리 선조들이 처음으로 세상에 크게 자랑할만한 신문을 창조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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