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0(2011)년 11월 3일 《우리 민족끼리》

력사상식

광주학생사건

광주학생사건은 1929년말 조선청년학생들이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여 광주를 중심으로 전국적범위에서 일떠선 대규모적인 반일투쟁이다. 
 광주학생사건은 우리 나라에서 로동자, 농민들의 혁명적진출이 급격히 강화되는 환경속에서 1929년 10월 30일 광주-라주행렬차칸에서 일본인중학생이 한 조선녀학생을 희롱하여 모욕적언사를 던진것이 계기가 되였다. 조선인학생들은 광주역에 내리자 오만무례한 일본인중학생들에게 응당한 보복타격을 주었다. 그리하여 광주역에서 군중적충돌이 일어났다. 이때 일제경찰들은 응당 처벌해야 할 일본인학생들을 비호하고 반면에 조선인학생들에게 폭행을 가하고 체포구금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이 사건은 오래동안 쌓이고쌓인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조선청년학생들을 비롯한 우리 인민의 울분과 적개심을 폭발시켰다. 
 11월 1일에는 일본중학교의 교직원, 학생 약 300여명이 군사교원의 지휘밑에 광주역에서 조선인기차통학생들을 불의에 습격하였다.  조선인학생 200여명은 격투끝에 그들을 물리쳤다. 투쟁은 더욱 확대되여 마침내 11월 3일에는 광주시안의 전체 조선인학생들이 일제히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대중적반일시위를 벌리면서 일본인학생들과 이자들을 비호하는 일제경찰을 반대하여 굴함없는 투쟁을 벌리였다. 그들은 도처에서 일본인학생들을 쳐눕혔으며 이 사건을 외곡하여 보도한 일제의 어용보도기관인 《광주일보사》를 포위하고 인쇄기를 파괴하여버렸다.  
 광주의 학생들이 지펴올린 투쟁의 불길은 선진적학생들의 호소와 노력에 의하여 서울과 평양, 신의주, 함흥, 개성, 대구, 부산 등 전국도처에 료원의 불길마냥 세차게 타번지고 급속히 확대되였다. 대중적인 반일시위에 나선 청년학생들은 《일제를 타도하자!》, 《식민지노예교육을 철페하라!》, 《피검자들을 우리의 힘으로 탈환하자!》, 《조선독립 만세!》  구호를 웨치면서 삐라를 뿌리고 가두연설을 하는 등으로 대중적인 반일투쟁을 힘차게 벌렸다. 전국의 청년학생들은 도처에서 일제경찰들을 맞받아 류혈적인 투쟁을 벌렸으며 일제의 야수적탄압과 대량검거에도 불구하고 근 6개월동안이나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일제가 축소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1929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이 투쟁에는 전국각지 194개 학교의 6만여명 학생들과 각계각층 애국적인민들이 참가하였다.  
 광주학생사건은 수만명의 조선청년학생들이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여 일떠선 군중적투쟁이였으며 당시 광범한 조선청년들에게 반일사상을 고취하는데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광주학생사건은 일제식민지통치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식민지노예로 살지 않으려는 조선청년학생들의 굳센 기개를 힘있게 과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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