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1(2012)년 1월 14일 《우리 민족끼리》

력사상식

훈민정음

 

15세기에 창제되여 우리 민족의 문화발전에 거대한 기여를 한 훈민정음은 우리 민족이 오랜 글자생활의 경험에 기초하여 독자적으로, 독창적으로 만든 가장 발전된 글자이다.

《훈민정음》이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백성들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말인데 이것은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한 바른 소리를 적는 훌륭한 글자》라는 뜻을 담고있다. 이 글자를 《정음》이라고도 하였고 《언문》이라고도 하였다. 《정음》이라는것은 우리 글자의 우수한 특성의 본질과 관련된 이름이였고 《언문》이라는것은 일반사람들속에서 흔히 쓰이는 글이라는데서 붙인 이름이였다. 근대시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글》이라고도 불리게 되였는데 이것은 《큰글》이라는 뜻으로서 우리 글자의 좋은 점을 자랑하여 붙인 이름이였다.

훈민정음은 1444년 1월(음력 1443년 12월)에 창제되였다. 이와 관련하여 《세종실록》(1454년 편찬) 25년 12월조에는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으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한다.》라고 씌여있다. 훈민정음의 창제일에 대하여서는 《훈민정음해례》(1446년)의 정린지(1396-1478)의 글에도 《계해겨울에 우리 임금이 정음 28자를 만들었다.》라고 기록되여 있는데 계해년 겨울이라고 한것은 곧 1443년 음력 12월을 가리킨다. 훈민정음은 당시의 왕이였던 세종(통치년간; 1419-1450)의 직접적인 주관밑에 정린지(1396-1478), 최항(1409-1474), 박팽년(?-1456),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1417-1464), 리개(?-1456), 리현로(리선로)들이 집체적인 지혜를 모아 만들었다. 훈민정음은 고대시기의 우리 글자인 신지글자를 계승하여 만들어졌다. 처음 만들었을 때에는 28개를 기본글자로 하여 구성되여있었다. 이밖에 기본글자들을 합쳐서 쓰거나 기본글자에 부호를 쳐서 보충적으로 쓰도록 한 합용글자들도 있었다. 훈민정음은 가장 발전된 글자로서 여러가지 우수한 특성들을 가지고있다.

훈민정음은 첫째로, 글자에서 가장 발전된 류형인 낱소리글자이다. 낱소리글자는 글자발전의 견지로 보아도 제일 발전된 류형이며 더우기 소리마디가 풍부하고 자음과 모음들이 다양하게 조화된 우리 말을 적는데는 그것이 제일 적합하다. 훈민정음은 개별적인 말소리들을 따로따로 나타내는 낱소리글자이면서 첫 소리와 끝소리를 나타내는 자음글자와 가운데소리를 나타내는 모음글자를 구분하여 만든 글자이다. 따라서 이 글자는 우리 말의 풍부한 말소리들을 다 잘 나타낼수 있는것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 말소리들도 거의 다 나타낼수 있게 되여있다.

훈민정음은 둘째로, 음운체계의 특성과 글자체계를 기본적으로 대응시키면서 당시에 존재하던 여러가지 말소리들을 다 적을수 있게 만든 글자이다. 이 글자는 우리 말의 음운과 음운체계에 대한 깊은 고려에 기초하여 만들었기때문에 독자적인 음운들을 거의다 기본글자로써 나타낼수 있게 되여있으며 소멸 또는 형성되여가는 과정에 있는 말소리들도 기본글자들을 활용하여 적을수 있게 되여있다.

훈민정음은 셋째로,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따는 독특한 원리에 기초하여 만든 글자이다. 이 글자는 혀, 입술, 이, 목구멍과 같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따서 기초글자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기본으로 하면서 말소리들의 특성에 맞추어 획을 더하거나 두개 또는 세개 글자들을 합치면서 나머지의 모든 글자들을 체계성있게 만들었다.

훈민정음은 넷째로, 매우 배우기 쉽고 쓰기 편리한 글자이다. 이것은 기본글자가 28자로서 그 수가 적고 글자들의 획이 간단하며 체계적으로 서로 련관되여있다. 또한 글자의 모양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고 균형이 잡혀있으며 세련되여있다. 그리고 말소리들의 특성에 따라 매 글자들을 리치적으로 쉽게 리해할수 있게 되여있다. 훈민정음은 이와 같이 우수한 글자이지만 결함도 가지고있었다. 이 글자의 기본결함은 실지 쓰는데서 소리마디단위로 묶어서 쓰게 된것이다. 그리하여 기본글자는 28개이지만 실제 리용하게 되는 글자는 《가, 각, 간, 갈, 값…》 등과 같이 많아지게 되였으며 보기도 좀 어렵고 조금만 획이 달라져도 안되게 되여있다.

만들 때의 기본글자들가운데서 목구멍터침소리를 나타내던 글자 《ㆆ》, 혀끝스침의 청있는소리를 나타내던 글자 《ㅿ》는 16세기이후 곧 없어졌으며 혀뿌리코소리를 나타내던 글자 《ㆁ》도 《ㅇ》과 합쳐지게 되였다. 《아래 아》자로 불리우는 《·》는 그것으로 나타내던 말소리가 없어진 17∼18세기 이후에도 관습적으로 쓰이다가 1930년대에 이르러 없어지게 되였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우리 민족의 언어생활과 력사발전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였다. 고유한 민족문자의 창제에 의하여 우리 인민들은 서사생활에 자유롭게 참가할수 있게 되였으며 리두나 한문과 같은것은 점차 밀려나게 되였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민족어의 규범을 세우며 그에 의한 언어생활의 통일성을 보장할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한 점에서도 력사적의의가 있었다. 훈민정음과 같은 우수한 민족문자를 만들어 낼수 있었던것은 민족문화의 오랜 전통과 풍부한 유산에 토대해서만 가능한것으로서 이를 통하여 우리 인민의 과학적예지를 시위할수 있었으며 동시에 민족문자생활이 시작되고 국문책들이 간행됨으로써 민족문화가 발전하고 언어문화유산이 더욱 풍부화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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