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1(2012)년 3월 24일 《우리 민족끼리》

 

력사상식

 

3. 24투쟁

 

3. 24투쟁은 1964년 3월 일본군국주의자들과 남조선당국사이의 《회담》을 반대하여 남조선의 청년학생들과 애국적인민들이 벌린 반제반파쑈애국투쟁이다.

미제의 사촉밑에 박정희괴뢰정권은 1964년에 들어서면서 13년동안 끌어온 일본과의 《회담》을 빨리 결말지으려고 책동하였다. 당시 남조선괴뢰도당은 《3월타결》, 《4월조인》, 《5월비준》의 계획에 따라 3월에 일본군국주의자들과 《회담》을 벌려놓고 매국행위를 일삼고있었다.

이에 따라 3월 15일부터 21일까지에 서울, 부산, 목포, 대구 등 남조선의 13개 주요도시들에서는 대일굴욕외교를 반대하는 각계각층 인민들의 성토대회가 진행되였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남조선청년학생들의 대중적진출이 시작되였다.

3월 24일 서울에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생들이 매국적인 《회담》을 반대하는 성토대회와 《제국주의자 및 민족반역자화형식》을 가진 다음 괴뢰국회의사당과 《중앙청》을 향해 시위투쟁을 벌리였다.

이들은 《남조선일본<회담> 즉각중지》, 《일본제국주의를 박살하라》, 《미국은 남조선일본<회담>에 관여말라》 등의 구호를 웨치면서 투쟁을 확대하였다.

같은날 서울에서는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대광고등학교 학생들이 각기 시국강연회를 마친 후 시위대렬에 합세하였으며 다음날에는 서울, 부산, 대구, 전주, 광주 등 남조선 각지의 청년학생들이 시위투쟁에 떨쳐나섰다.

3월말까지 계속된 투쟁에서 청년학생들은 《굴욕외교반대》의 구호와 함께 반《정부》, 반매판의 구호를 제기하고 완강하게 싸웠다.

이 투쟁에는 서울을 비롯하여 38개 지역의 37개 대학과 163개의 중고등학교가 망라되였으며 여기에는 학생 21만 7 000여명과 시민 1만여명이 참가하였다.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완강한 투쟁에 의하여 남조선당국은 부득이 진행중이던 남조선일본《농림상회담》을 중지하고 예정되였던 《외상급정치회담》도 보류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으며 결국 남조선일본《회담》의 《조기타결》책동은 좌절되고말았다.

3. 24투쟁은 비록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기본군중을 망라한 대중적인 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하였으나 4. 19인민봉기이후 가장 큰 규모의 반제반파쑈애국투쟁으로서 미제와 일본군국주의자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남조선괴뢰도당의 파쑈통치체계를 뒤흔들어놓았다. 일본군국주의자들과 남조선괴뢰도당사이의 《회담》을 짓부시기 위한 남조선청년학생들의 투쟁은 그후 계속 힘있게 진행되였으며 그것은 마침내 새로운 단계의 투쟁, 6. 3봉기로 발전하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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