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1(2012)년 4월 1일 《우리 민족끼리》

 

력사상식

 

신미양요

 

신미양요는 1871년 조선에 대한 미국침략자들의 대규모무력침공사건이다.

미국침략자들은 1866년 침략선 《셔먼》호의 격침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을 대신 이를 구실로 조선에 대한 대규모적무력침공준비를 갖추었다.

미국은 1869년 상반년기간에 본토에 있던 4척의 군함을 중국 연해에 근거지를 두고있던 미국아시아함대에 배속시켰으며 이해 7월 13일에는 해외침략에 이골이 난 로제쓰를 아시아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1869년말에는 캘리포니아주 지사였던 호전광 로우를 청국주재 미국공사로 임명하고 그에게 조선침략의 《전권》을 위임하였다.

한편 미국침략자들은 저들의 조선침략에 일본군국주의자들이 도와나설것을 요구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이에 적극 호응해나섬으로써 조선침략에서 미일 두 침략자들의 공모결탁이 이루어졌다.

무력침공준비를 끝낸 미국침략자들은 1871년 1월 17일 리조봉건정부에 불평등적인 항해 및 통상조약체결을 강요하였다. 그러면서 이것을 거부하여 《친선관계》가 파괴되면 그 책임은 조선측에서 져야 한다는 날강도의 론리로 위협해나섰다.

그러자 리조봉건정부는 침략자들이 침입한다면 방어하고 소멸해버릴것이라고 단호히 경고하였다.

1871년 3월 19일 중국주재 미국공사 로우와 미국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제쓰는 중국 상하이를 떠나 22일 일본 나가사끼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5척의 군함과 80문의 포, 1 230명의 침략군으로 구성된 침략함대를 뭇고 조선에 대한 최종적인 무력침공준비를 갖추었다.

미국침략함대는 3월 27일 나가사끼를 떠나 4월 8일에 조선서해의 물치도부근에 침입하였다.

우리 인민은 침략자들을 쳐물리치기 위한 싸움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각 지방 인민들은 의병을 조직하여 투쟁에 일떠섰으며 전국각지의 포수들도 이 싸움에 적극 참가하였다.

오만한 침략자들은 불평등조약에 응할것을 리조봉건정부에 강요하는 한편 4월 14일(양력 6월 1일)에는 서울로 가는 길목에 놓여있는 손돌목의 우리 포대에 기여들어 각종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

이에 격분한 이곳을 지키고있던 우리 군사들은 적함선들이 사격권내에 들어오자 광성진포대, 덕진포대, 덕포진포대들에서 집중포격을 들이댔다. 맹렬한 포격으로 적의 주력함 《모노카시》호에 물이 새여들기 시작하였고 우리 군인들은 도망치는 적함선에 계속적인 타격을 주었다.

4월 15일 리조봉건정부는 침략자들에게 침략책동을 무조건 중지하고 물러갈것을 강경히 요구하였다.

미국침략자들은 손돌목전투에서 당한 패배와 조선봉건정부의 경고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도리여 강화도에 대한 우리의 방어준비가 끝나기전에 공격함으로써 단번에 서울로 쳐들어가려고 어리석게 시도하였다.

4월 23일(양력 6월 10일) 침략군의 주력은 함대의 엄호밑에 강화도 남쪽 초지진에 달려들었다. 초지진 첨사 리렴이 지휘한 조선군대는 미국침략군에 대한 야간기습전을 벌리여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주고 계속하여 패주하는 적을 추격, 소멸하였다. 초지진전투에서 미국침략군은 100여명의 살상자를 냈다. 적들은 4월 24일 광성진에 침입하였다가 여기에서도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진무중군 어재연의 지휘밑에 광성진수비병 70여명은 적의 포화력과 량적으로 근 10배나 우세한 적의 공격을 맞받아 용감하게 싸웠다. 그들은 적들의 포함 2척에 심대한 손상을 주었으며 육박전을 벌려 적지상부대에 섬멸적타격을 안기였다. 거듭되는 전투에서 심대한 타격을 받은 미국침략자들은 4월 25일 강화도에서 도망쳤으며 5월 16일(양력 7월 3일) 조선경내에서 완전히 쫓겨나고말았다.

미국침략자들의 무력침공을 반대하는 간고한 싸움에서 우리 인민과 군인들은 용감히 싸워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키였으며 미국침략자들에게 또다시 수치스러운 참패를 안기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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