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1(2012)년 5월 18일 《우리 민족끼리》

 

력사상식

 

광주인민봉기

 

광주인민봉기는 파쑈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1980년 5월에 벌린 전라남도 광주시민들의 대중적인민봉기이다. 광주인민봉기는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에 걸쳐 진행되였다.

1980년 3월부터 남조선전역에 료원의 불길처럼 타번진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반파쑈민주화투쟁은 전두환도당이 《유신》파쑈독재를 지탱하기 위하여 5월 17일 남조선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것을 계기로 하여 광주땅에서 반《정부》적인 대중적무장인민봉기로 전환되였다.

인민봉기는 5월 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시위투쟁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이날 《비상계엄령》의 해제를 요구하여 시위투쟁에 떨쳐나선 광주시내 청년학생들은 군사파쑈도당이 가장 악질적인 공정부대(락하산부대)를 내몰아 류혈적인 탄압을 가하자 이에 격분하여 억압자들에게 폭력으로 항거하여나섰다. 청년학생들의 폭동적진출은 삽시에 온 광주땅을 휩쓸었으며 여기에는 시내의 모든 인민들과 시주변의 로동자, 농민들까지 합세하여 그 수는 5월 21일에 무려 30여만명에 이르렀다. 봉기군중들은 도청, 시청을 비롯한 괴뢰통치기관들을 들이쳐 그를 장악하였고 놈들의 무기고를 습격하고 수천정의 무기를 탈취하였을뿐아니라 《계엄군》의 많은 땅크와 차량들까지 빼앗아 타고 용감히 싸움으로써 5월 21일에는 《계엄군》을 몰아내고 광주시를 완전히 자기들의 통제밑에 넣었다. 항쟁의 불길은 도내 대부분의 지역과 전라북도에까지 파급되였으며 목포, 라주, 화순, 령광, 담양을 비롯한 17개 시, 군이 봉기군중의 수중에 장악되였다. 광주의 봉기군중들은 자치조직인 《시민위원회》와 《민주투쟁위원회》를 내오고 자위적인 무장조직인 《시민군》, 《특별경계부대》, 《돌격대》를 무어 련일 《유신》파쑈독재를 규탄하는 대규모적인 군중집회를 가지였다. 이에 당황한 전두환일당은 《계엄군》을 더욱 증강하여 2중3중으로 광주시를 완전히 포위하고 군사적위협과 경제적봉쇄책동을 감행하였으며 봉기자들을 회유해보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봉기군이 완강히 항거해나서자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은 미제의 사촉밑에 5월 27일 새벽 수많은 땅크와 장갑차, 직승기, 수만명의 방대한 정규무력을 투입하였으며 대구경포사격과 전쟁력사에서도 전례가 드문 질식가스탄사격까지 하면서 봉기군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봉기군중은 5천여명의 희생자와 1만 4 000여명의 중경상자가 생기였으며 또 식량이 떨어지고 먹는 물과 전기공급까지 끊어진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기들의 투지를 굽히지 않고 마지막순간까지 굴함없이 싸웠다. 전두환살인악당은 광주시에서뿐아니라 광주인민들의 봉기에 호응하여 항쟁에 떨쳐나섰던 목포, 화순, 라주, 려수, 순천, 장성 등지의 인민들도 류혈적으로 탄압하면서 1 700여명이나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다.

광주시와 그 주변의 각계각층 주민들 100여만명이 참가한 영웅적광주인민봉기는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 억압자들이 강요하는 낡은 《유신》파쑈통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정치를 실시하기 위한 가장 높은 형태의 반파쑈민주화투쟁이였으며 전제정치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동방인민들의 근대투쟁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가장 크고 격렬한 대중적봉기였다. 봉기는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식민지통치와 그 앞잡이 군사파쑈도당의 통치지반을 크게 뒤흔들어놓았으며 미제와 그 주구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였다. 광주인민봉기를 계기로 남조선인민들은 미제의 야수적본성과 기만성, 파렴치성과 위선에 대하여,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가로막고 파쑈군사독재를 비호조장시키는 근본장본인이 누구인가를 보다 명백히 알게 되였으며 반미투쟁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게 되였다.

광주인민봉기는 남조선인민들의 반파쑈민주화투쟁사에 빛나는 장을 기록한 력사적인 사변이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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