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2(2013)년 2월 12일 《우리 민족끼리》

 

력사상식

 

행주산성전투

 

행주산성전투는 임진조국전쟁때 애국적인민들과 군인들이 행주산성에서 일본침략자들에게 큰 타격을 준 전투이다.

1593년 1월 평양성전투에서 크게 이기고 평양성을 되찾은 조선군대는 패주하는 적을 계속 추격하여 서울로 압축하였다. 한편 남쪽으로부터는 전라도군대가 권률(1537-1599)의 지휘밑에 서울서쪽 40리지점에 있는 행주산성에 머무르면서 서울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김포, 통진 등에는 의병대와 관군이 진을 치고 서울탈환전투에 참가할 부대들을 엄호하였다.

조선군대와 인민들의 반침략투쟁에 의하여 여러곳으로부터 무질서하게 쫓기여 서울에 모여든 일본침략자들은 서울을 계속 견지하려는 목적밑에 2월 12일 3만명의 침략군을 동원하여 행주산성을 공격하여왔다.

이때 산성에는 2 300명의 군대와 주변인민들이 와있었다. 성안의 군사들과 인민들은 권률의 지휘밑에 통나무로 목책을 둘러치고 돌과 흙으로 성을 쌓아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적들이 공격해오자 산성안의 군민들은 활을 쏘고 돌을 굴리면서 용감히 싸웠고 성밖에 나가 화차를 쏘며 반돌격으로 적을 무찌르기도 하였다. 성안의 부녀자들도 싸움에 떨쳐나서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날라다줌으로써 싸우는 군인들을 크게 고무하였다.

적들은 큰 타격을 받고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화공전술, 성폭파전술 등을 써가면서 갖은 발악을 다하였다.

저녁때까지 계속된 가렬한 싸움에서 성안의 군민들은 끝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크게 승리하였다. 적들은 무수한 시체를 남긴채 패주하고말았다. 행주산성전투는 임진조국전쟁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전투들중의 하나로서 《행주대첩》으로 력사에 기록되여오고있다.

우리 인민은 이 전투승리를 통하여 용감성과 애국적기개를 다시한번 시위하였으며 일본침략자들의 발악적기도를 꺾어버림으로써 적들의 총퇴각을 더욱 촉진시켰다.

우리 조선녀성들이 부엌에서 입는 앞치마를 《행주치마》라고 부르는것도 이 행주산성에서 앞치마에 돌을 날라다 싸움을 도와나섰던 녀성들의 애국정신에 그 유래를 두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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