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2(2013)년 3월 16일 《우리 민족끼리》

정치상식

《배움의 천리길》

 

《배움의 천리길》은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열두살 어리신 나이에 단신으로 장백현 팔도구에서 만경대까지 걸어나오신 력사적인 천여리의 로정이다.

주체12(1923)년초 팔도구소학교를 졸업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을 알아야 한다는 아버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배움의 천리길》에 나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2(1923)년 3월 16일 아침 팔도구를 떠나 압록강을 건느시여 조국땅 포평에 도착하시였다. 이어 월탄을 지나 험한 오가산령을 넘으시고 화평, 흑수를 거쳐 3월 19일 저녁에 강계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4년전 부모님들을 따라 중강으로 가실 때 들리셨던 한 객주집에 드시였다. 다음날 강계우편국에 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곱자부터 전보료금을 더 물어야 하는 사정을 고려하시여 생각끝에 여섯자로 《강계무사도착》이라고 팔도구에 계시는 아버님께 전보를 치시였다. 3월 21일 다시 길을 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성간(당시 별하), 전천, 고인을 거쳐 명문고개를 넘고 청운, 희천, 향산, 구장을 지나 개천에 도착하시였다. 개천에서  기차를  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안주를 거쳐 평양에 도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아버님께 두번째 전보를 치시고 3월 29일 만경대에 이르시였다.

압록강을 건너 포평에서부터 만경대에 이르는 천리로정은 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참으로 멀고도 간고한 길이였다. 하지만 그 길에서 겪으시는 자신의 고달픔보다 더욱 마음아프고 괴로우신것은 일제에게 짓밟히고 뜯기우는 조국의 참상이였다.

조선으로 떠나보내시며 하신 아버님의 말씀과 천리길을 걸으시며 체험하신 그때의 느낌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이렇게 회고하시였다.

《… 조선에서 태여난 남아라면 마땅히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 네가 조선에 나가서 우리 나라가 왜 망했는가 하는것만 똑똑히 알아도 그것은 큰 소득이다, 고향에 나가서 우리 인민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있는가 하는걸 체험해보아라, 그러면 네가 할바를 잘 알게 될것이다.

아버지는 이런 내용의 말씀을 진지하게 하였다.

조국에 나를 내보내면서 조선을 알아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한 아버지의 참뜻이 마음속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였다. 나는 그 뜻을 되새기면서 비운에 잠긴 조국의 모습을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 천리길이 조국을 알게 하고 우리 인민을 알게 해준 하나의 큰 학교였다.》

모진 피로를 꿋꿋이 이겨내시고 심산의 길을 헤쳐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혼자몸으로  고향집 사립문안에 들어서시였을 때 리보익녀사를 비롯한 일가분들은 그 담차고 름름하신 모습에 감탄하며 못내 대견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만경대에서 4㎞가량 떨어진 칠골외가로 가시였으며 거기서 창덕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하시였다.

우리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력사적인 천리길에 수놓아진 불멸의 혁명사적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천리길로정우에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모시였으며 화평과 개천 등지에 혁명사적관을 꾸리고 헌시비를 세웠다. 또한 포평, 강계, 전천 등지에 학생소년궁전들을 건립하고 천리길로정의 의의깊은 곳마다들에도 혁명사적기념비들을 세웠다.

오늘 우리 공화국의 청소년학생들속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셨던 애국애족의 원대한 뜻을 따라배우며 강의한 의지와 튼튼한 체력을 소유하기 위한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이 해마다 정상적으로 진행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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