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2(2013)년 4월 1일 《우리 민족끼리》

력사상식

신미양요

 

1871년 우리 나라에 대한 미국침략자들의 대규모무력침공사건이다.

미국침략자들은 침략선《셔먼》호의 격침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을 대신 이를 구실로 조선에 대한 대규모적무력침공준비를 갖추었다. 무력침공준비를 끝낸 미국침략자들은 1871년 1월 17일 조선봉건정부에 불평등적인 항해 및 통상조약체결을 강요하였다.

그러면서 이것을 거부하여 《친선관계》가 파괴되면 그 책임은 조선측에서 져야 한다고 위협하였다.

이에 대하여 조선봉건정부는 침략자들이 침입한다면 즉시 소멸해버릴것이라고 경고하였다.

1871년 3월 19일 중국주재 미국공사 로우와 미국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제쓰는 5척의 군함과 80문의 포, 1 230명의 침략군으로 구성된 함대를 뭇고 4월 8일에 조선서해의 물치도부근에 침입하였다. 우리 인민은 침략자들을 쳐물리치기 위한 싸움에 떨쳐나섰다. 각 지방 인민들은 의병을 조직하여 투쟁에 일떠섰으며 전국각지의 포수들도 이 싸움에 적극 참가하였다. 오만한 침략자들은 불평등조약에 응할것을 조선봉건정부에 강요하는 한편 4월 14일(양력 6월 1일)에는 서울로 가는 길목에 놓여있는 손돌목의 우리 포대에 기여들어 각종 도발행동을 감행하였다. 이곳을 지키고있던 우리 군사들은 적 함선들이 사격권내에 들어오자 광성진포대, 덕진포대, 덕포진포대들에서 집중포격을 들이댔다. 포탄은 적 함선들에 명중되여 적의 주력함 《모노카시》호에 물이 새여들기 시작하였다.

우리 군인들은 도망치는 적함선에 계속적인 타격을 주었다. 4월 15일 조선봉건정부는 침략자들에게 침략책동을 무조건 중지하고 물러갈것을 강경히 요구하였다. 미국침략자들은 손돌목전투에서 당한 패배와 조선봉건정부의 경고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도리여 강화도에 대한 우리의 방어준비가 끝나기 전에 공격함으로써 단번에 서울로 쳐들어가려고 시도하였다.

4월 23(양력 6월 10일)일 침략군의 주력은 함대의 엄호밑에 강화도 남쪽 초지진에 달려들었다. 조선군대는 미국침략군에 대한 야간기습전을 벌리여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주고 계속하여 패주하는 적을 추격, 소멸하였다. 초지진전투에서 미국침략군은 100여명의 살상자를 냈다.

적들은 4월 24일 광성진에 침입하였다가 여기에서도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광성진수비병 70여명은 적의 집중포화력과 량적으로 근 10배나 우세한 적의 공격을 맞받아 용감하게 싸웠다. 그들은 적 함포사격을 맞받아 집중포화를 들이대여 적 포함 2척에 심대한 손상을 주었으며 육박전을 벌려 적 지상부대에 섬멸적타격을 안기였다. 거듭되는 전투에서 심대한 타격을 받은 미국침략자들은 4월 25일 강화도에서 도망쳤으며 5월 16일(양력 7월 3일) 조선경내에서 완전히 쫓겨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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