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2(2013)년 6월 22일 《우리 민족끼리》

력사상식

남조선일본《회담》

 

미제의 조종밑에 남조선괴뢰도당과 일본당국이 《국교정상화》를 위하여 벌린 침략적이며 예속적인 《회담》이다. 1951년 10월부터 1965년 6월까지 14년에 걸쳐 진행되였다.

미제는 조선전쟁에서 참패를 거듭하게 되자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에 일본군국주의침략무력을 밀어넣으려는 범죄적기도로부터 남조선과 일본사이의 《회담》을 주선해나섰다.

전후에 미제는 이《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일본군국주의자들과 남조선괴뢰들을 결탁시켜 침략적인 《동북아시아군사동맹》을 조작하려는 음흉한 목적을 추구하였다. 한편 이 《회담》을 통하여 일본반동들은 남조선에 대한 재침야망을 실현하려 하였으며 남조선괴뢰들은 미일침략자들에게 아부굴종하여 민족의 리익을 판 대가로 장기집권야망을 실현하려고 하였다.

남조선일본《회담》은 도합 일곱차례에 걸쳐 진행되였다.

제1차《회담》은 1951년 10월부터 1952년 4월까지 진행되였다. 회담에서 일본측은 조선에 있던 일본인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제기하고 어업문제에서 남조선측이 일방적으로 《평화선》(일명 《리승만라인》이라고 함)을 설정하여 량측이 서로 반발해 나섬으로써 결렬되였다.

제2차《회담》은 1953년 4월부터 7월 23일까지 진행되였는데 어업문제 등 일련의 문제들에서 량측의 의견이 대립되여 결말을 보지 못하였다.

1953년 10월부터 1957년 12월까지 진행된 제3차《회담》은 《평화선》을 선포한 후 남조선괴뢰들이 일본어선들을 나포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일본측이 요구하여 진행되였다.

제4차《회담》은 1958년 4월부터 1960년 4월까지 진행되였는데 기본관계, 남조선청구권, 어업 및 《평화선》, 재일조선인의 법적지위의 4개 위원회로 설치하고 문제토의를 하였으나 아무러한 진전도 보지 못하였다. 제4차《회담》은 4. 19인민봉기로 재개되지 못하였다.

1960년 10월부터 1961년 5월까지 진행된 제5차《회담》은 4. 19인민봉기후 남조선에서《정권》의 부단한 교체와 군사쿠데타로 본회담도 열지 못하고 예비교섭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제6차《회담》은 1961년 10월부터 1964년 4월까지 진행되였다. 이 《회담》은 남조선에서 일제의 때묻은 주구가 군사정권의 우두머리로 들어앉은 새로운 환경에서 진행되였는데 남조선괴뢰당국이 《회담》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섬으로써 최대의 현안문제이던 《대일청구권문제》에서 합의를 보게 되였다. 그러나 1964년에 들어오면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일본《회담》반대투쟁이 세차게 일어남으로써 청구권이외의 문제들은 제7차《회담》으로 밀리우게 되였다.

제7차《회담》은 1964년 12월부터 1965년 6월까지 진행되였는데 남조선당국이 《회담》의 일괄타결에 발벗고 나섬으로써 토의된 현안문제들이 락착되게 되였다.

1965년 6월 22일에 범죄적인 남조선일본《기본관계조약》과 남조선일본《협정》 및 《의정서》, 《교환문건》 등이 도꾜에서 정식 《조인》되였다. 이리하여 무려 14년에 걸치는 이른바 남조선일본《국교정상화》를 위한 매국배족적이고 반동적인 흥정판은 끝나게 되였다.

남조선일본《회담》이 결속됨으로써 일본군국주의세력이 공공연히 남조선에 기여들게 되였으며 남조선, 미국, 일본의 군사일체화책동이 더욱 강화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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