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8월 2일 《우리 민족끼리》

 

포츠담회담

 

포츠담회담은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도이췰란드의 베를린부근 포츠담궁전에서 이전 쏘련과 미국, 영국 수뇌자들이 전후처리문제와 관련하여 진행한 회담이다.

회담에는 쏘련인민위원쏘베트위원장 쓰딸린(1879-1953), 미국대통령 트루맨(1884-1972), 영국수상 쳐칠(1874-1965. 후에 애틀리로 교체) 그리고 3개국 외무상들과 군참모장들이 참가하였다.

회담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패국인 도이췰란드의 전후처리문제를 비롯한 일련의 문제들이 토의되였다.

미영제국주의자들은 회담에서 저들의 침략적야망을 실현하려고 책동하였다. 미제는 회의가 열리기 전날인 7월 16일에 범죄적인 첫 원자탄시험을 감행함으로써 힘의 립장에서 회담을 저들의 강도적인 요구를 실현하는데 복종시키려고 꾀하였다. 그러나 미영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은 세계반파쑈민주력량의 압력과 쏘련의 투쟁에 의하여 분쇄되고 8월 3일 15개 장과 서문(1개 장)으로 된 공식보도(포츠담협정)가 발표되였다.

이에 의하면 포츠담회담은 쏘련,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장개석) 5개 나라 외무상리사회를 창설하기로 하였다.

그의 중요임무는 이딸리아, 로므니아, 벌가리아, 마쟈르 및 핀란드와의 강화조약초안의 작성, 유럽령토문제의 조정에 관한 제의서 작성, 도이췰란드의 평화적조정을 위한 조건의 지적 등이였다.

포츠담회담의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도이췰란드문제였다.

회담은 도이췰란드에 여러 점령지대가 존재하지만 그를 경제적 및 정치적으로 하나의 통일체로 고찰하기로 하였으며 도이췰란드를 민주주의국가로 만들기 위하여 그의 무장해제에 관한 제 원칙들을 지적하였다.

도이췰란드의 매개 점령지대에서 최고주권은 점령군 최고사령관들의 수중에 집중되며 대도이췰란드관리리사회의 지도밑에 움직이는 도이췰란드중앙행정국들을 내오기로 하였다. 도이췰란드에서 모든 민주주의적 정당 및 조직들, 직업동맹의 활동을 허용하며 도이췰란드의 완전한 무장해제와 비군사화, 모든 군사 및 반군사조직들, 나치스조직들과 기관들, 연구소들 특히 참모부의 완전철페, 모든 파쑈무장력의 청산, 각종 무장장비의 생산금지, 공군과 해군의 소유금지를 선포하였다. 군비생산에 복무하는 도이췰란드산업은 철페되고 도이췰란드경제는 련합국의 통제밑에 두기로 하였다. 도이췰란드독점체들은 청산되며 도이췰란드경제를 비군사화할것이 지적되였다. 한편 도이췰란드에서 농촌경리와 내부적수요를 위한 평화적산업의 발전을 예견하였다. 이와 함께 도이췰란드로부터의 배상금징수절차와 원천들이 규정되였다.

포츠담회담에서는 또한 쾨니히스베르그(깔리닌그라드)와 그것이 속한 구역을 쏘련에 넘겨줄데 대하여 원칙적으로 합의하였으며 앞으로 새로운 쏘련국경을 설정할것과 도이췰란드-뽈스까국경을 오데르-나이쎄강을 따라 정한다는것을 선포하였다.

미국과 영국은 뽈스까림시민족통일정부를 승인하며 런던에 있는 뽈스까망명정부와의 관계를 단절한다는것이 지적되였다.

회담에서 쏘련은 대일전쟁에 참전할데 대한 제의를 접수하였으며 1945년 7월 26일의 포츠담선언에 합류하였다.

이밖에 회담에서는 전범자문제, 흑해해협문제, 오스트리아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토의결정되였다. 포츠담회담의 결정들은 제2차 세계대전후에 도이췰란드에서 군국주의와 파시즘의 재생을 방지하며 세계평화와 안전을 도모하는데 긍정적의의를 가지였다.

그러나 미영제국주의자들은 제놈들의 침략적목적으로부터 포츠담회담에서 합의된 협정과 선언을 전면적으로 유린말살하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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