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8월 2일 《우리 민족끼리》

 

하의도농민폭동

 

하의도농민폭동은 1946년 8월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농민들이 미제와 그 주구들의 토지략탈과 량곡강제수집을 반대하여 일으킨 투쟁이다.

미제의 침략과 략탈정책에 의하여 8. 15후 남조선농민들은 의연히 식민지적, 봉건적착취관계에 얽매이게 되였다. 남조선에 기여든 미제침략자들은 농촌에 봉건적지주토지소유제도를 그대로 두고 지주를 적극 비호할뿐아니라 직접 토지를 략탈하며 농민들을 착취하기 위한 악랄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놈들은 일제의 착취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략탈해 가지고있던 수십만정보에 달하는 조선인민의 토지와 시설을 모조리 가로채기 위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신한공사》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미제와 그 앞잡이들은 하의도에도 《신한공사》출장소를 내오고 1946년 7월에 《하곡소작료수집》을 강요하였다. 이에 격분한 농민들은 《신한공사》에 넘어간 토지를 농민들에게 돌려줄것과 과중한 소작료의 하곡징수를 반대하는 요구를 들고 투쟁에 떨쳐나섰다.

미제침략자들과 그 앞잡이들은 8월 2일 무장경관을 동원하여 강제공출을 반대하는 농민들에게 총질을 함으로써 5명을 살해하고 많은 부상자를 내게 하였다. 이에 더욱 격분한 700여명의 농민들은 일제히 폭동에 궐기하여 경찰분서를 점령하였으며 《신한공사》하의도출장소를 습격하여 창고를 불살라버렸다. 농민들은 무장경찰의 야수적사격과 검거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히 싸웠다. 원쑤들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제침략군까지 끌어들여 농민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였으나 폭동군중은 계속 완강하게 싸웠다. 하의도농민폭동는 8.15후 남조선농민들속에서 일어난 첫 폭동으로서 그것은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남조선농민들을 반미투쟁에로 궐기시키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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