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8월 20일 《우리 민족끼리》

《운양》호사건

 

《운양》호사건은 1875년 8월 일본침략자들의 군함 《운양》호가 강화도에 침입하여 무장도발을 감행한 사건이다.

조선에 대한 일본침략자들의 침략책동은 1870년대 중엽에 로골적인 무장도발단계에로 넘어갔다. 1875년 4~5월에 《운양》호를 비롯한 일본군함 3척이 부산으로부터 금야만에 이르는 조선동해와 조선남해안일대를 싸다니면서 정탐과 무력시위를 감행하였다. 이해 8월에 《운양》호는 또다시 조선연해에 침입하였다. 당시 미국은 해외침략의 강도적수법까지 가르쳐주면서 일본침략자들의 조선침략계획을 적극 지지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이 시기 우선 조선에 불평등적인 《조약》을 강요하는것을 당면목표로 내세우고 그 구실을 만들 흉악한 목적으로부터 《운양》호 선원들에게 될수 있는대로 더 횡포하게, 더 포악하게 행동할것을 지시하였다. 교활한 침략자 이노우에가 이끈 《운양》호는 비법적으로 우리 나라 연해깊이 침입하여 수심측량과 무력시위를 감행하면서 조선남해를 거쳐 강화도로 향하였다. 강화도는 당시 조선봉건정부의 수도인 서울의 주요관문이며 군사요새지로서 봉건정부의 승인 없이는 조선의 배들도 마음대로 접근할수 없는 곳이였다.

침략선 《운양》호는 8월 20일 월미도앞바다를 지나 21일에는 정산도앞바다에 침입하였다. 이날 함장 이노우에는 20여명의 무장인원을 작은 배에 옮겨싣고 정찰과 도발을 목적으로 강화도 초지진포대에 접근하게 하였다. 초지진의 수비병들은 아무런 통고도 없이 침범하는 침략자들을 향해 경고발포를 하였다. 그러나 놈들은 계속 달려들었다. 초지진수비병들은 자위적조치로 침입자들에게 사격을 가하였다. 때를 기다리고있던 《운양》호의 침략자들은 저들의 국기와 군함기를 내건 다음 초지진포대를 향하여 포사격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격분한 우리 수비병들은 더욱 맹렬한 포사격을 들이대여 적들의 공세를 꺾어버렸다. 초지진전투에서 패한 침략자들은 8월 22일에 비교적 방어력이 약한 정산도에 침입하였으며 23일에는 영종도에 침입하여 포대를 파괴하고 무고한 인민들을 학살하는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또한 인민들의 재산을 닥치는대로 파괴략탈하였으며 나중에는 불을 질러 섬을 완전히 페허로 만든 후 도망쳤다.

일본침략자들의 포악성과 야만성, 강도적본성을 그대로 드러낸 《운양》호사건은 조선침략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하여 감행한 계획적인 무장도발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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