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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꽃정서

 

예로부터 삼천리금수강산에서 살며 꽃을 널리 심어온 우리 민족은 독자적인 꽃문화를 창조하였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에서 41년(대무신왕 24년)에 매화를 가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와 리조시기에는 꽃을 궁중에서뿐아니라 민간에서도 널리 가꾸었다.

음력 3월 3일이면 산과 들에 나가 진달래로 화전(꽃을 섞어 만든 전)이나 화채를 만들어먹었으며 음력 9월 9일에는 들에 나가 국화주를 마시며 국화전을 부쳐먹었다. 녀성들은 음력 5월 5일에는 꽃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았으며 여름철이면 봉선화를 짓찧어 손톱에 물을 들였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헌화가》에 의하면 세나라시기에는 사랑이나 존경의 표시로 꽃을 꺾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고려시기에는 꽃을 관상용으로 병에 꽂거나 장식으로 머리와 모자, 옷 등에 꽂았다고 한다. 리조시기에는 꽃이 남녀간의 정을 표시하는데 쓰이였다.

꽃을 사랑하여온 우리 민족은 꽃의 상징적의미를 귀중히 여기였다.

과거에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영예의 상징으로 머리에 꽃을 둘러주었다.

집단이나 가족들끼리 기쁨을 즐길 때에는 《웃음꽃이 피였다》고 하였으며 젊음과 아름다움을 두고 《꽃같은 시절》이라고 하였다.

리조초기 이름난 서화가인 강희안은 40여가지의 꽃을 그 상징적의미에 따라 품계를 매기여 9등급으로 나누면서 장미꽃처럼 겉이 아름다운 꽃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므로 피할것을 강조하였다. 반면에 할미꽃처럼 겉은 허술히 보이나 상징적내용이 있는 꽃은 긍정적인것으로 묘사하였다.

도덕의리심을 귀중히 여기고 참된 인생을 념원해온 우리 민족은 이처럼 꽃 한송이를 감상하여도 도덕적립장에서 평가하면서 독특한 꽃문화를 빛내여왔다.

 

정  선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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