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4월 10일 《우리 민족끼리》

 

12도구전투

 

12도구전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휘밑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주체27(1938)년 4월 10일과 주체28(1939)년 4월 중순에 장백현 12도구에서 진행한 전투이다. 장백현 12도구는 압록강기슭에 자리잡은 집단부락으로서 적의 국경경비의 중요거점의 하나인 평안북도 후창군 동흥진과 강을 사이에 두고있었으며 여기에는 20~30명의 경찰과 100여명의 무장자위단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2도구전투를 승리에로 이끄시여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과시하고 적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시였으며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 주시였다.

-주체27(1938)년 4월 10일 전투 (야간습격전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주체27(1938)년 춘기공세를 조직지휘하시던 시기 12도구전투를 계획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데 기초하시여 2개의 습격조와 정치공작조, 2개의 차단조를 조직하시고 매조에 임무를 주시였다. 차단조들은 동흥진과 팔반도방향에서 오는 적의 증원부대를 막을 임무를 받고 먼저 진출하고 밤 10시에 습격조들이 부락에 접근하였다. 습격조들은 서문과 남문의 적보초를 제끼고 맡은 대상물에 돌입하였다. 불의습격을 받은 적들은 갈팡질팡하다가 저항을 시도했다. 제1습격조는 강력한 집중사격으로 경찰들을 소멸하고 포대를 폭파하였으며 제2습격조도 발악하는 적들에게 세찬 불벼락을 들씌웠다.

숱한 시체만 내게 된 적들은 목숨을 건져보려고 총을 던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부락에서 전투가 벌어지고있을 때 동흥진의 적들이 12도구의 제놈들을 증원하려고 압록강을 건느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적들은 이미 그쪽에 배치된 조선인민혁명군의 차단조에 걸려 숱한 시체만 강물속에 처박고 물러났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마을을 해방한후 4시간가량 부락에 머무르면서 군중정치사업을 벌려 인민들의 혁명적열의를 북돋아주었다.

12도구전투의 승리는 인민들에게 혁명승리의 신심을 굳게 안겨주고 일제침략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주체28(1939)년 4월 중순 전투 (야간습격전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주체28(1939)년 춘기공세를 지휘하시던 시기 12도구전투를 계획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서렬을 2개의 습격조와 2개의 차단조, 물자운반조로 편성하시고 매 조에 임무를 주시였다. 밤 10시 30분에 습격이 개시되였다. 성문보초를 제낀 대원들의 신호에 따라 습격조들은 부락으로 들어가 각기 분담된 대상물에 접근하였다. 제1습격조원들은 분조로 나뉘여 자위단병실과 동북쪽포대, 동남쪽포대에 불의적인 사격을 들이대였다. 뜻밖의 타격을 받은 적들은 혼란상태에 빠져 허덕이다가 발악하기 시작하였다. 제1습격조원들은 저항하는 적들에게 수류탄벼락을 안겼으며 살아남은 적들은 기겁하여 투항하였다.

제2습격조도 3개의 분조로 갈라져 경찰서와 서북쪽포대, 서남쪽포대에 육박하였다. 전투가 벌어질 때 압록강건너 동흥경찰대들이 압록강가에 있는 포대에서 사격해왔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과감한 행동으로 서남쪽포대를 점령한 다음 거기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동흥경찰대들에게 집중사격을 가했다. 동흥경찰대들은 강을 건너오지는 못하고 포대에서 무질서하게 사격만 해댔다. 전투가 끝날무렵 팔반도의 적들이 12도구로 증원을 오다가 조선인민혁명군 차단조에 걸려 녹아났다. 물자운반조는 적의 군수창고를 헤치고 물자들을 집합지점으로 운반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한 지휘에 의하여 이룩된 12도구전투의 승리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시위하고 적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으며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국내진공에 필요한 물자를 더욱 확보할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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