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6월 4일 《우리 민족끼리》
보천보전투
보천보전투는 항일무장투쟁시기
193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일제침략자들은 대륙침략을 위한 전쟁준비를 완성하기 위하여 조선인민에 대한 전대미문의 파쑈적폭압을 강화하는 한편 경제의 군사화를 다그치면서 경제적략탈과 착취를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 강화하였다. 조선은 말그대로 지옥으로 변하였으며 우리 민족은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였다.
위대한
국내진공작전을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3개 방면으로 진출시킬 계획이 제시되였다. 즉 주력부대는 압록강을 건너 일제의 국경경비의 요충지대인 혜산방면으로 진출하며 한 부대는 백두산을 에돌아 안도, 화룡을 거쳐 두만강연안의 북부국경일대에로 진격하며 다른 한 부대는 림강, 장백일대의 압록강연안으로 진출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위대한
당시 일제는 보천보일대가 백두산근거지와 련결된 대산림지대로서 군사지리적으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활동에 유리한 곳이라는것을 타산하고 이 일대에 경찰기관만 하여도 20여개를 설치하였으며 2㎞마다 포대를 쌓고 국경도로를 부설하였다.
위대한
원정대는 19도구(당시) 지양개를 떠나 23도구(당시) 부락어구와 구시골등판을 거쳐 구시물동에 이른 다음 이곳에서 떼목으로 압록강을 건넜다.
위대한
2개의 습격조와 2개의 차단조, 1개의 정치공작조가 편성되고 각 조에 전투임무가 하달되였다.
6월 4일 22시,
주타격대상인 경찰관주재소에 접근한 습격조원들은 그 정면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집중사격을 들이댄 다음 주재소안에 돌입하여 적경찰들을 소멸하고 갇혀있던 인민들을 구출하였다. 같은 시각 면사무소, 산림보호구, 우편국, 소방회관, 농사시험장 등을 습격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도 적들을 소탕하고 물자들을 로획하여 인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정치공작조는 온 거리에
인민들은 밤거리에 떨쳐나와
위대한
보천보전투직후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에 질겁한 일제는 황급히 《국경특설경비대》를 비롯한 경찰대, 국경수비대, 헌병대 등 대병력으로 추격해왔다. 그러나 적들은 6월 5일 장백현 구시산전투에서와 6월 30일 간삼봉전투에서 또다시 큰 참패를 당하고말았다.
위대한
보천보전투의 승리는 인민들에게 조국해방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안겨주었으며 그들을 반일투쟁에로 힘있게 고무하였다. 또한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주었으며 놈들의 식민지통치체계를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았다. 뿐만아니라 독립과 자유와 정의를 위하여 싸우는 세계혁명적인민들의 반제반파쑈투쟁에도 커다란 고무적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