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주체102(2013)년 2월 7일 《우리 민족끼리》

 

력사상식

 

2. 7구국투쟁

 

2. 7구국투쟁은 1948년 2월 7일 남조선인민들이 미제가 꾸며낸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이 들어오는것을 반대하여 벌린 반미투쟁이다.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은 미제가 민족분렬정책을 미화분식하며 남조선에서 괴뢰정권을 조작하기 위해 유엔간판을 도용하여 제놈들의 괴뢰들과 추종국가들로 만들어낸 허수아비기구였다.

2. 7구국투쟁은 1948년 1월 8일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이 남조선에 기여드는것을 계기로 하여 시작되였다.

이날 영등포의 경성방직공장을 비롯한 여러 공장 로동자들은 《국운이 위태롭게 된 오늘 우리 로동계급이 용감하게 떨쳐나설 때는 왔다.》라고 선언하면서 파업에 들어갔다. 영등포로동자들의 파업을 신호로 투쟁은 룡산지구와 서울시내, 인천지구에 확대되여갔으며 2월 7일에는 서울, 대전, 목포, 부산, 인천 등지의 40여개의 도시를 포괄하면서 남조선 전지역을 휩쓸었다.

이 총파업에는 철도, 체신을 비롯하여 각 부문에 걸친 수백개의 공장, 기업소 로동자 8만여명이 참가하였다. 그들은 파업과 함께 시위투쟁도 벌리고 경찰기관들을 습격하는 격렬한 투쟁도 전개하였다.

로동자들의 투쟁에 호응하여 농민들도 투쟁에 일떠섰다. 특히 2월 7일 함천군, 완주군, 김제군농민들은 경찰지서를 습격하고 악질경찰놈들을 처단하였으며 홰불시위 등 여러 형태의 투쟁을 통하여 원쑤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청년학생들도 동맹휴학, 시위 등 투쟁에 나섰다. 2월 13일 청년학생들은 서울의 공원앞과 종로네거리, 남대문거리들에서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입국반대》라고 쓴 글발을 들고 구호를 웨치면서 시위를 벌렸으며 달려드는 괴뢰경찰들과 맞서 굴함없이 싸웠다.

투쟁은 처음부터 대중적규모에서 세차게 벌어졌다. 애국적인민들은 2월 7일 하루동안에만도 26개의 괴뢰경찰지서들을 습격파괴하였다. 그후 2월 25일까지 악질괴뢰경찰과 관리 11놈을 처단하였다. 그리고 26자루의 총과 481발의 총탄을 빼앗았으며 61대의 기관차, 27개의 통신기구와 수많은 다리, 도로를 파괴하고 83개소의 전신전화선을 끊어버렸다.

2. 7구국투쟁을 통하여 남조선인민들은 미제와 그 앞잡이들에게 타격을 주고 자기들의 애국적투지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투쟁은 미제의 침략적본성을 낱낱이 폭로하였으며 미제의 침략도구로서의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진면모를 완전히 발가놓았다.

이리하여 2. 7구국투쟁은 남조선에서의 망국적인 《5. 10단독선거》를 파탄시키는데서 커다란 작용을 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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