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4월 12일 《로동신문》

 

인간의 생활공간을 아름답게 해주는 화초장식 (2) 

우리 나라의 유구한 화초장식문화

 

화초장식은 인류력사발전의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다양하게 발전하여왔다.

특히 우리 선조들은 화초장식문화의 대표자라고 할수 있다.

아득히 먼 고조선시기부터 숲과 나무 등을 신성시하고 꽃을 몹시 사랑한 우리 민족은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여 신에게 제를 지내던 제단을 꽃과 풀로 장식하였다.

이러한 화초장식은 삼국시기에 고구려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 화초장식은 절대적인 완결성과 안정감을 추구하면서도 비교적 풍만하고 부드러운 형태를 갖추었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하여 주로 종교례식의 필수적인 의장품으로 리용되였다.

쌍기둥무덤과 강서세무덤, 안악2호무덤 등 고구려무덤벽화들은 당시 화초장식문화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고려시기에도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화초장식은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이때부터 우리 나라에서 화초장식은 실용적인 목적과 미적감상의 대상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불교문화가 전파되면서 화초장식은 절간들에서 규모가 크고 성대한 의식들에 리용되였다.

이 시기 화초장식문화발전에서 기본은 왕궁에서 화초장식이 장려되면서 그 리용범위와 표현령역이 보다 넓어지게 된것이다.

청자기를 비롯한 고려자기들의 출현도 당시의 화초장식문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수덕사 대웅전의 수화도와 야화도를 비롯한 벽화들, 고려의 관리이며 시인이였던 리규보가 쓴 《동국리상국집》 등 서적들에도 고려시기 화초장식의 발전상이 비껴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들어와 화초장식은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화려함보다는 품위와 격을 중시한 이 시기 화초장식에서는 정갈하고 단아하며 깨끗한 분위기조성을 위해 실용적인 측면을 추구한것이 특징적이다. 이와 함께 평민들의 생활정서를 반영한 화초장식이 널리 리용되였는데 특히 꺾은꽃을 병에 꽂아넣는 형식으로 만든 병화를 흔히 찾아볼수 있다.

안견, 리상좌와 함께 15세기의 대표적인 화가로서 다른 나라에까지 이름을 날렸던 강희안이 쓴 원예서적인 《양화소록》(《청천양화소록》이라고도 함)과 17세기의 이름난 작가이며 학자였던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 18세기의 실학자였던 홍만선의 《산림경제》 등 화초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판된것을 통해서도 당시 우리 나라에서 화초장식이 중시되고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은 그가 돈녕부 지사라는 벼슬자리에 있을 때 화초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가꾸는 과정에 이룩한 경험과 원예부문 서적을 참고하여 쓴 책으로서 화분꽃가꾸기법,꽃을 아름답게 피우는 방법,화초를 접하는 방법 등에 대하여 소개하고있다.

조선봉건왕조말기에는 실학자들에 의하여 화초장식이 과학적인 연구대상으로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우리 나라의 화초장식문화는 오랜 력사와 전통을 가지고있다. 

본사기자


화초장식을 형상한 고려시기의 벽화


조선봉건왕조시기의 화초장식을 형상한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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