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16 회)

제 2 장

5

 

해방후 처음으로 맞이한 새봄이였으나 서울시민들은 봄날의 훈기를 느낄수 없었다. 그칠줄 모르는 정치파동의 회오리가 이를데없이 살벌한 분위기를 휘몰아왔다. 모스크바3상회의결정을 놓고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전례없이 격화되였다. 어제는 이 결정을 지지하는 좌익계의 시위가 벌어졌는가 하면 오늘은 그를 반대하는 우익계의 시위가 벌어졌다. 어떤 날에는 동시에 두 진영의 시위가 벌어져서 서로 부딪치며 류혈참극을 빚어내기도 하였다. 거리들에는 《찬탁!》, 《반탁!》이라고 쓴 종이장들이 락엽처럼 깔리였다.

물결쳐간 시위의 잔해였다.

지난해 말 모스크바에서 열린 쏘, 미, 영외상회의에서는 해방된 조선에 장차 민주주의독립국가를 세우며 과도적으로 림시정부를 내온다고 결정했다. 문제로 된것은 림시정부가 존재하는 기간 유관국들이 《협조》를 한다는 조항이였다. 당시 남조선출판물에는 그것이 《신탁통치》로 번역되여 실리였다.

리승만을 비롯한 우익반동세력은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이른바 《반탁》운동을 광란적으로 벌리였다. 후날의 력사가 그 진상을 드러내보였지만 당시 미군정청은 뒤에서 그들을 부추겼다. 비록 《신탁통치》가 실시된다 하더라도 통일적인 림시정부가 선다면 남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속심을 실현하기가 어렵다고 타산했기때문이였다. 해방된 조선인민의 민심이 민족의 태양이신 일성장군에게로 쏠리고있다는것을 미국의 대조선전략작성자들은 잘 알고있었다. 미국으로서는 어떻게 하나 자기들이 서명한 3상회의결정을 뒤집어야 했다. 리승만을 내세워 《반탁》운동을 벌리게 한것은 겉과 속이 다른 미국의 정치모략이였다. 물론 당시의 남조선인민들은 그것을 몰랐다. 다만 저들이 서명한 결정을 반대하는 우익세력의 란동을 왜 눈감아주고있는가 하는 의혹을 가졌을뿐이다. 아무튼 통일을 원하고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을 원하는 사람들은 모스크바결정을 지지하는 《찬탁》운동에 떨쳐나섰다.

해산당한 전날의 《조선국군학교》학생들도 《찬탁》운동에 나섰다.

김기환은 삐라도 뿌리고 련락도 하였으며 《찬탁》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그 선두에 나섰다. 그는 물론 복잡하게 뒤엉키는 정치적와류를 꿰뚫어볼만 한 판단이 부족했다. 다른 학생들과 함께 려운형의 연설을 듣고서야 《찬탁》의 길이 옳다는것을 깨달았다.

려운형은 이렇게 말했었다.

《<신탁통치>라는 글자에 얽매여서 일제의 식민지노예의 쓰라림과 관련시켜서는 안되오. 그것은 자라 보고 놀란 놈 솥뚜껑보고 놀라는 격이요. 모스크바3상회의결정자체의 정신을 봐야 하오. 우리 조선사람심정 같아서야 지금 당장 독립정부를 세우고싶지. 허나 정치세계는 랭혹한 현실이요. 3상회의결정을 반대하는것은 론리상으로 따지면 림시정부를 세우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소. 원색적인 감정은 눌러두고 랭철해야 하오. 림시정부수립에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요. 이 기회를 놓치면 조선반도에 분렬의 비극이 고착되여버릴수 있소. 우리는 절대로 그것을 허용할수 없소. 나라를 사랑하고 민중을 사랑하는 열혈의 제군들은 분렬이냐 통일이냐 하는 이 엄숙한 시기에 남과 북의 전체 민중의 의사를 모아 통일적인 림시정부를 수립하는데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하겠소!》

바로 그렇구나! 기환은 새로운 깨달음과 열렬한 공감으로 피가 끓었다. 어머니가 평양에 살아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도 인차 서울을 뜰수 없었다. 이 엄숙한 시기에 사사로운 감정으로 조직과 동료들을 저버릴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려운형이 이끄는 《건국동맹》의 맹원이였다. 동맹에서는 언변과 글재주가 좋은 그에게 여러가지 무거운 임무를 주었다. 그에 따라 민중속에 들어가 《찬탁》을 부르짖는 강연도 하고 신문들에 글도 썼다. 하긴 신문에 글을 쓴 덕분에 북에서 지종수가 보낸 사람을 만날수 있었고 어머니의 소식을 알수 있었다.

맹렬한 활동과정에 봉변을 당한 일도 있었다. 철도로동자들속에 들어가 《찬탁》시위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던 도중에 《서북청년단》패거리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하였다. 로동자들이 제때에 막아나서지 않았다면 북에서 쫓겨온 놈들의 악에 받친 폭행에 목숨을 잃었을것이다. 우연한 일치였다고 할가. 기환이가 폭행을 당한 그날에 려운형선생도 정체를 알수 없는 괴한들의 기습을 당했다.

선생은 며칠간 정양을 하고서야 몸을 회복했다.

갓 해방이 되였을 때에는 방구석에 숨어있던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미군정의 비호밑에 버젓이 고개를 들고 이즈막에는 기승스레 날뛰였다. 우익세력이 그놈들을 자기편에 규합했다. 미군의 탄압으로 좌익세력은 점점 렬세를 보이는대신 미군의 후원으로 우익세력은 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려운형선생이 좌우합작을 위해 고심어린 노력을 경주하지만 기환의 눈으로 보기에도 그 실현이 점점 어려워졌다. 서울의 정치현실은 암담한 형편에로 치닫고있었다. 어찌할것인가? 기환은 자기 생활의 좌표를 놓고 고민했다. 마음같아서는 어머니와 녀동생이 기다리는 평양으로 한시바삐 달려가고싶었다.

하지만 《건국동맹》의 한 성원으로 조직앞에 지닌 의무와 동료들과의 의리가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이틀전에 려운형선생으로부터 뜻밖의 지시가 떨어졌다. 전날의 《조선국군학교》학생들은 모두 북에서 창립한 《평양학원》으로 가라는것이였다.

그 지시를 받았을 때 기환은 뛸듯이 기뻤다. 그 어떤 죄스러운 마음의 부담도 없이 평양으로 가게 된것이다. 해산된지 여러달이 되다보니 아직 남아있는 《조선국군학교》학생은 100여명밖에 안되였다. 학교가 운영되던 당시에는 학생수가 1, 000여명을 넘었다. 평양으로 가는 100여명 학생들은 열명가량씩 조를 묶어 떠나기로 했다. 그 모든 조직사업은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김기환은 4조의 조장으로 임명되였다. 정작 떠나자고 하숙방에서 행장을 꾸리고보니 생각이 많았다. 불과 몇달밖에 다니지 못한 《조선국군학교》였지만 자기 생애에서 여러가지로 잊을수 없는 흔적을 남긴 학교였다.

해방을 맞은지 얼마후였다.

필경 서대문형무소에서 희생되였을 어머니의 유해를 찾아 헤매던 기환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절망했다. 로자가 떨어져서 오도가도 못하고 굶주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느날 허기진 배를 부여안고 본정동거리를 지나는데 건물벽에 광고가 나붙어있었다. 현하 민주주의독립국가건설의 치안에 필요한 군정간부양성을 목적으로 《조선국군학교》학생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입학에 돈도 필요없고 무료로 공부시켜주고 먹여주고 입혀준다는 내용이 특별히 눈길을 끌었다. 세상에 이런 학교도 있는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그길로 시험장인 덕수궁을 찾아갔다. 입학생들의 시험은 지망자들이 도착하는 족족 개별적으로 즉석에서 쳤다. 주최측인 건국준비위원회에서는 혼란된 치안을 수습하기 위해 한사람이라도 한시바삐 동원해야 할 필요를 느꼈던것이다. 기환은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에 통과되였다. 다음날부터 군사정치교육을 받는 한편 서울시내의 사회질서유지에 동원되였다.

그는 그 이전까지 언제 한번 자기의 장래를 직업적인 군인으로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때에는 해방의 오늘을 보지 못하고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부모들의 원쑤를 갚기 위해 총을 잡으려는 충동이 불같이 치밀었다. 일제는 패망했으나 친일매국역적들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놈들을 용서치 않으려는 악에 받친 증오가 끓어올랐다. 녀자의 몸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던 어머니는 유해도 남기지 못한채 옥사했다. 당시는 그렇게 단정했다.

아버지 역시 그러했다. 기환은 한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본 일이 없었다.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뿐이다.

아버지는 3. 1인민봉기에 나섰다. 그후 일제의 검거선풍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을 했다. 상해에서 조직된 림시정부에 관여했던 아버지는 이듬해에 조국으로 돌아왔다. 림시정부에서 국내와의 련락을 위해 파견했던것이다. 관헌의 눈을 피해 임무를 수행하던 어느날 밤 집에 들리였다. 해를 넘기며 헤여졌던 안해가 못 견디게 그리웠던것이다. 그밤에 기환이는 유복자의 운명을 지닌 생을 받았다.

이미 아버지가 국내에 침투했다는것을 알고있던 놈들은 여러날째 집주변에 매복해있었다. 비밀공작의 임무를 지녔던 아버지는 그것을 예견하고 각성을 높여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이 세상을 자기나름의 선량한 눈으로만 보는 어머니도 놈들의 매복을 감촉하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 벼락같이 집에 달려든 놈들은 아버지를 체포해갔다. 이것이 부모들사이의 마지막리별이였다.

한달후에 아버지는 사형을 당했다.

기환이는 그렇게 죽어간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눈이 언제나 자기를 지켜본다고 생각했다. 국군학교에서 누구보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훈련도 성실히 받았다. 일제 패잔병들과 친일매국노들의 준동을 진압하는데 목숨도 바칠 각오였다. 그는 건국준비위원회가 조만간에 민주주의독립국가를 세우리라고 기대했다. 평양에 두고온 녀동생이 보고싶었으나 상봉의 그날을 통일정부가 수립된 다음의 일로 미루었다.

남조선 전역에 인민위원회들이 조직되였다. 바야흐로 독립국가건설이 눈앞에 다가오는듯싶었다. 기환이로서는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가 어떤 정략을 꾸미고있는지 알수 없었다. 지난해 12월이였다. 미제는 인민위원회들을 강제로 해산하는 폭압조치를 단행했다. 때를 같이하여 중무장을 한 미군이 《조선국군학교》를 포위하고 페교를 선포했다. 항변을 하던 교원 몇명은 즉석에서 체포되였다. 학생들은 의분의 눈물을 뿌리며 미군에게 총을 바쳤다.

그날의 억울하고 절통하던 심정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것이다. 폭력적인 반항을 절대로 하지 말라는 려운형의 지시가 없었다면 미군과 결사의 대결이 있었을런지 모른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그리도 소망하는 진정한 인민의 군대로 자라기 위해 평양학원으로 가게 될줄이야.

꾸려놓은 행장을 돌아보았다. 방수포배낭에 골숨한 행장이였다. 세면도구와 책 몇권, 어머니와 녀동생에게 줄 값눅은 기념품이 들어있었다. 서켠에 기운 해가 하숙방의 창유리에 비쳐들었다.

이제 하루밤을 보내면 평양으로 떠난다.

-항쟁의 서울이여, 잘있으라.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가 서는 그날에 내 너를 다시 찾아오리라-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작별인사를 보냈다. 이때 마당으로 들어서는 청년이 있었다. 큰 머리에 비해 목이 가는 청년은 전날 한학급에서 공부하던 림정하였다. 그도 래일 평양학원으로 떠나게 되여있었다. 기환은 문을 열고 맞이했다.

《아니 어떻게?》

《급히 전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네.》

주위를 살피는 정하의 얼굴에 흥분이 비꼈다.

《어서 방안으로 들어가세.》

마당에 아무도 없다는것을 확인한 정하는 초조히 말했다.

《그럴 사이가 없네. 지금 모이라는 지시가 있었네. 려운형선생이 우리들에게 마지막훈사를 하겠다고 하였네. 어서 가세.》

《그래?!》

기환이의 눈이 빛을 뿜었다. 려운형은 《조선국군학교》에 나와서 여러번 훈사도 하고 강연도 했었다. 그의 뛰여난 웅변과 성품은 학생들을 감동시켰다. 서울을 떠나면서 그의 마지막훈사를 듣는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였다.

기환이와 정하는 서둘러 모임장소로 떠났다. 모임장소가 멀지 않아서 전차나 뻐스를 타지 않고 나란히 걸었다. 그들은 남달리 절친한 사이였다. 그럴만 한 까닭이 있었다. 기환이는 글재간이 좋았고 정하는 그림솜씨가 뛰여났다. 학교에서 벽보를 만들거나 삐라를 찍을 때면 그들 두사람이 맡아서 손을 맞추었다.

기환이는 정하가 여러모로 마음에 들어서 장차 매부가 되여달라고 하였다. 롱담이였지만 어느 정도 진실한 희망이 깔려있었다. 이제 평양에서 분영이를 만나보면 정하도 마음이 동할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모른다. 사랑에는 설명할길 없는 요인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연분이라고들 하는것이다.

그들이 모임장소에 이르니 벌써 거의 모든 학생들이 와있었다. 기환이와 정하는 강당의 뒤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이윽하여 려운형선생이 그 누구의 소개도 없이 연단에 나섰다.

좌중을 둘러보는 그의 얼굴에는 작별의 서운감과 깊은 감회가 흐르는듯 했다.

《제군들!》

약간 갈린듯 한 어조였다. 평소에 그리도 듣기 좋게 잘 울리던 음성이 아니였다.

목이 메는듯 잠시 진정을 하더니 뒤를 이었다.

《미군정당국이 <조선국군학교>를 페교시킬 때 나는 학교와 학생제군들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자식을 키우고 보호할 능력이 없는 부모라면 차라리 낳지부터 말아야 했을것입니다. 몇달간의 단명으로 끝나버릴 학교를 세웠던 나는 참말로 학생들앞에 죄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제군들은 나를 원망할 대신 그냥 남아서 우리 사업을 성의껏 도와주었습니다. 작별인사에 앞서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했다. 일어나서 답례는 고사하고 앉은자리에서 박수도 보내지 못했다. 인사가 뒤바뀐 뜻밖의 처지에서 가슴을 쳐오는 충격에 숨을 죽였을뿐 어찌했으면 좋을지 알지 못했다.

정숙이 깃든 강당안에 어느 학생이 터치는 흐느낌소리가 울리였다.

려운형이 한결 밝아진 어조로 계속했다.

《여러분은 이제 우리 겨레의 영명한 령도자이신 일성장군님께서 세우신 평양학원으로 가게 됩니다. 오늘에 이르러 나는 페교의 그날에 아프고 쓰리던 가슴이 열리는듯싶습니다. 나로서는 키울수 없었던 제군들을 일성장군님께서 우리 민족군대의 기둥감들로 키워주실수 있게 되였기때문입니다. 나는 얼마전에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해방전에 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오려고 보천보에도 달려갔고 만주광야도 편답하였지만 그때에는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가슴에 오래전부터 서리였던 숙원이 이번에 성취되였습니다.

나는 일성장군님의 저택에서 김정숙녀사가 손수 지어주시는 밥을 먹으면서 여러날 지냈습니다. 이 나날에 배우고 느낀 소감을 다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것입니다.》

그는 격정에 넘쳐 장군님과 녀사의 비범하신 정치적혜안과 덕망에 대하여 느낀바 그대로를 진실하게 이야기하고나서 결론을 짓듯이 이렇게 말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가슴속에 경모심을 품어온바이지만 직접 만나뵈옵고 수차례 가르치심을 듣는 과정에 일성장군님이시야말로 절세의 애국자이시고 우리 겨레의 운명을 걸머지신 불세출의 령수이심을 확신했습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장군님의 품으로 제군들을 보내는 내 마음은 지금 한량없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내 여적 누구에게도 터놓지 않았던 내심을 자신처럼 믿고있는 젊은 동지들인 제군들에게만은 터놓겠습니다. 지금 리화녀대에 다니는 두 딸애를 장군님과 녀사의 품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평양에서 두분앞에 그런 결심을 말씀드리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영원히 헤여지고싶지 않은 일성장군님곁에 눌러있으면서 일을 하고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현 조건에서 그럴수가 없는 몸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딸애들을 장군님의 품으로 보내려는것입니다.

여러분을 장군님품으로 보내는 내 심정을 충분히 리해하기를 바라며 마음속의 이 사연을 헤쳐보였습니다.

부디 일성군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어서 내 나라의 훌륭한 군대가 되여주시오. 지금까지 나는 제군들앞에 못다한 일도 많고 잘못한 일도 많았는데 널리 리해하여주시오. 몸은 비록 헤여지지만 우리는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한길에서 언제나 함께 있을것입니다. 내 나라, 내 땅이건만 38도선은 수월히 넘을수 없는 장벽입니다. 아무쪼록 조심해서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십시오.》

려운형은 말로써는 다 표현하지 못한 작별인사를 보내듯 청중을 향해 머리를 숙이였다.

학생들은 일제히 일어나 우렁찬 박수를 보냈다.

손을 저어 제지시킨 려운형은 장내로 내려와서 학생들의 손을 차례로 잡아주었다. 학생들은 누구나 그에게 하고싶은 말이 많았고 남기고싶은 심정도 절절했다. 하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다음학생을 생각하며 단 한마디에 인사말을 담았다.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맨 뒤자리에 앉았던 기환이만은 몇마디의 말을 주고받을수 있었다. 다정히 내여미는 려운형의 손을 두손으로 포개여잡으면서 여태껏 가슴속에 품고있던 말을 꺼냈다.

《저는 어머니에게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어릴적부터 들어왔습니다.》

《어머니가 누구길래?》

《정신옥입니다.》

려운형의 얼굴에 반가움이 확 번지였다.

《그럼 네가 김성택의 아들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너의 아버지가 잘못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상해에 있던 우리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여적 그렇다는 말을 왜 하지 않았느냐?》

《가뜩이나 분망하신 선생님이 저때문에…》

기환은 말끝을 삼켰다.

려운형은 터놓지 않아도 충분히 그 심정이 리해되여서인지 눈을 슴벅이며 기환의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너의 아버지를 포함한 우리 세대는 참다운 민족의 령수를 못 만난탓에 빗나간 걸음도 무수히 걸었고 무모한 희생도 많았다. 상해림정시절은 서글픈 수난의 과거였지. 그러나 일성장군님을 겨레의 진두에 모신 우리의 앞길은 창창하다.》

장군님을 만나뵈온 선생님의 인상담을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너의 어머니가 왜놈들에게 투옥되였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후 어찌 되였느냐?》

《저는 옥사하신줄 알았는데 지금 평양에 살아계신답니다.》

《돌아가면 어머니에게 내 인사를 전해라.》

이튿날부터 학생들은 평양학원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100여명의 집단이 움직이는것은 위험한 일이였다. 몇차례 꺾어서 배편 혹은 륙로로 서울을 떠났다.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가는 험난한 길이였으나 그들의 가슴은 커다란 희망과 포부로 설레였다. 기환은 어머니와 녀동생을 만나게 된다는 또 하나의 기쁨에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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