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30 회)

제 6 장

1

(1)

 

사향은 눈을 떴다.

얇은 창가림을 한 창문이 희붐히 밝아보였다. 자기는 침대에 누워있다. 밤이 새고 잠을 깬것이다.

온몸이 거뜬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단잠을 잤다는것을 말해준다.

미국땅을 떠나올 때 밤에 잠잘 걱정을 전혀 하지 않은것은 아니다.

쩍하면 불면증으로 고통받고 어쩌다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리군 하는 사향이고보면 더럭 겁도 났다.

조선은 산천도 기후도 생소하고 사람도 다 낯설지 않은가. 잠자리가 바뀐데다가 시간대까지 다르니 수면보장이 힘들것이라고 여겼다.

아닌게아니라 첫날밤은 머리속에 의문표들만 자꾸 살아나서 잠을 설쳤다. 그런데 하루이틀 지나면서부터 자신도 모르게 이런 걱정이 사라졌다.

머리속에 아직은 이 나라의 현실에 대한 의문표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안정되고 편하였다.

평양에 와서는 모든것이 달았다. 잠도 달고 입도 달고 코도 달았다. 보는것 듣는것마저도 달았다.

아침에 잠을 깨서 호텔에서 멀지 않은 대동강반에 나가면 공기가 어찌나 청신한지 걸탐스레 들이키지 않고서는 견딜수가 없었다.

물맛은 왜 이리도 달가. 식탁에 마주앉으면 식욕은 또 왜 이리도 왕성해지는것일가.

사향은 맑은 샘물이 들어있는 수지통을 몇번 안되여 바닥내거나 식사때 음식그릇들을 다 비울 때면 한창 식욕이 왕성하고 어리광을 부리던 철부지로 갱소년된듯싶어 자기 혼자 피식 웃기까지 하였다.

선친들의 고국에 왔다는 생각에 이리도 마음편할가. 그들이 눈을 감으면서도 잊지 못하여 머리만이라도 돌려놓아달라던 그 산천, 그 사람들속에 안겨서일가.

예로부터 조선은 《맑은 아침의 나라》로 불리워왔다더니 그래서 이렇게 심신이 거뜬하고 정이 드는것인가.

안내를 맡은 혜정이와 자기사이에 엊그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이름할수 없는 행복감이 밀물처럼 그윽히 차오른다.

두눈동자가 흑진주처럼 반짝이고 입이며 코며 두볼이며 지어 머리칼밑에 반쯤 숨겨져 좀처럼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귀방울까지도 귀염성스럽게 생긴 발랄한 녀성 혜정이. 처음에 그를 처녀로 알고 이름뒤에 《양》을 붙여 부르다가 가정을 이루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애까지 있다는것을 알고는 자신의 실수를 뉘우치며 얼굴을 붉혔던 녀인.

그날 아침 그는 큼직큼직한 함박꽃무늬가 박힌 꽃보자기에 무엇인가를 정히 싸들고 사향이 있는 호텔방에 나타났다. 바쁜 걸음을 걸은것같았다. 입언저리와 코방울에 잔구슬같은 땀발까지 약간 돋아있었다. 자분치 몇오리가 이마에 달라붙었다.

《혜정씨가 어떻게 아침일찍 나타났어요?》

사향은 눈이 둥그래졌다.

《좀더 빨리 온다는게… 선생님, 아침식사를 하셨나요?》

자기 묻는 말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전혀 다른것을 물었다.

《아직… 방금 식당으로 가려던 참인데… 함께 내려가요.》

그 말에 혜정은 안도의 숨을 호- 내쉬였다.

《아이, 그럼 됐군요.… 선생님, 식당식사를 한끼 건느지 않을래요?》

생긋 웃는데 두볼에 아직도 보조개가 또렷이 패였다. 얼마나 천진스럽고 정답게 말하는지 사향의 마음조차 맑아지고 동심이 되는것 같았다.

《오늘 아침 식사를 건느라?》

사향은 말뜻을 미처 몰라 이렇게 되받아외웠다.

《하긴 끼니까지 에울만 한 음식은 못되는거니까 맛이나 보시고 식당에 내려가셔도 됩니다.》

혜정은 또 한번 생글 웃으며 보자기를 풀었다.

《그게 뭔데?!》

《선생님 맛보시라고 내 손으로 지진 록두지짐을 몇짝 가지고왔어요. 좋아하시는지두 모르고 들고왔는데 흉을 보지 않겠는지.…》

혜정은 퍽 숫저어했다.

《?!…》

보자기안에 두툼한 모달리천같은 싸개가 또 있었다. 그것까지 풀고 보온밥통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피여올랐다. 식지 말라고 무척 왼심을 쓴것 같다.

《선생님, 왜 지짐이라고 하는지 아세요? 지지는족족 먹는거라구 해서 지짐이라구 한대요. 호호호…》

유모아도 재미있었다.

《따끈한것으로 잡수어야 제맛이 나는데…》

혜정은 그러며 집에서 가지고온 접시에 지짐을 한짝만 올려놓았다.

《잡순 다음 또 꺼내놓을래요.》

그러는 목소리에 응석기가 섞였다.

연한 록색을 띠면서도 골고루 노릿노릿하게 익은 지짐짝에서 풍기는 향긋한 냄새가 코를 콕 찌르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볼샘에서 군침이 스르르 돌았다. 무슨 흰 무늬같이 네모난것이 지짐짝 한가운데 잘 어울리게 박혀있었다.

보온밥통 말고도 또 다른 작은 꽃단지가 있는데 거기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갓김치가 담겨져있었다. 마늘과 파를 다져넣고 겨자를 적당히 섞어만든 초간장그릇도 있었다.

《선생님, 어서요.》

혜정은 사향의 손에 준비해가지고온 저가락까지 쥐여주었다.

사향은 목이 탁 메고 눈굽에 눈물이 핑 어렸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할머니와 부모들이 세상을 떠난 후 인정에 주리고 메말라 살아온 사향으로서는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도저히 영문을 알수 없었다. 저가락을 받아쥐기는 했으나 선뜻 접시에 손을 내밀수가 없었다.

《혜정씨, 먹어도 알고나 먹어야지.

《선생님두 참, 알고 모르고가 있어요? 잡수시면 되는거지요.》

《그래두…》

《먼저 어서 한짝 들어요. 그래야 사연도 말할래요. 어서요.…》

그가 권하는 목소리가 너무도 곡진해서 사향은 접시의 지짐을 들어 한입 베였다. 그랬던것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두번에 다 먹어버렸다. 혜정이 밥통뚜껑을 열고 또 한짝 꺼내놓았다. 그러면서 조용조용 말해주었다.

《실은 우리 경수 아버지가 이 록두지짐을 무척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식당에 가서도 잘 청하지만 내 손으로 자주 지져 밥상에 놓군 하지요. 어제 저녁에도 록두지짐으로 포식했는데 글쎄 우리 경수 아버지가…》

혜정은 사향을 마주보다 입을 가렸다.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애아버지되는분이 어쨌게요?》

《나더러 여보, 당신 요즈음 이국땅에서 온 기자선생님과 함께 다닌다는데 이 록두지짐을 좀 맛보이게 하면 어떻소?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가 아유, 그 선생님이 미국땅에서 살긴 하지만 기자여서 세계 안 다니는 나라가 없겠는데 우리 집에서 지진 이런 록두지짐을 대접해요? 이렇게 말했지요. 그랬더니 당신 뭘 좀 아는것 같으면서두 모르누만. 우리 나라의 이 록두지짐이 어떻다구 그러오? 영양가나 광물질, 비타민 같은것이 골고루 함유되여있는 장수식품인데다가 맛 또한 독특하지. 그리구 몸에 들어온 독성물질을 해독시키는 작용도 한단 말이요.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 인민들이 즐겨먹던 음식이였소.

하기에 우리 장군님께서 이런 좋은 음식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시며 록두지짐을 지질 때 한복판에 얇게 썬 돼지비게와 김치 같은것을 꼭 박아넣고 지져야 고소하면서 더 맛있다고 세심하게 가르쳐주시지 않았소.

설사 아무리 진수성찬으로 지내는 선생님이라 해도 마다하지 않을거요. 그러지 말고 래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한번 솜씨를 보이오. 나도 곁에서 도울테니… 이러지 않겠어요. 안해야 가정에서 남편의 을 따라야지 별수 있어요? 호호호…》

혜정은 또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웃음이 부부간의 따뜻한 정과 가정의 행복까지 다 엿보게 하였다.

《그러니 오늘 아침 이 록두지짐은…》

혜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접시가 빌세라 놓아주는 록두지짐을 맛스레 들던 사향은 놀라운 눈길로 그를 마주보았다.

《이 지짐지지는 방법까지 정일령도자님께서 가르쳐주셨단 말이지요?》

《선생님 , 그렇습니다.》

《놀랍군요. 놀라와…》

사향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혜정이 접시에 또 놓아주는 지짐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이날 아침 사향은 록두지짐은 더 말할것도 없고 갓김치며 초간장까지 입술을 감빨며 맛있게 들었다. 혜정이 그래도 식당에 가서 정식으로 아침식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자 사향은 펄쩍 뛰며 한손으로 배까지 쓰는 시늉을 했다.

《선생님이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줄 알았으면 벌써 지져왔을걸.

이제 선생님이 시간이 허락되면 우리 집에 한번 가시자요. 집구경도 하고 경수 아버지랑 함께…》

《혜정씨, 고마와요. 정말 고마와요.》

《그런 말씀마세요.》

《이제 집에 돌아가면 남편되는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주세요. 혜정씨의 가정은 깨가 쏟아지게 행복할것 같애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혜정씨와 남편되는분사이에 있었던 로맨스랑 듣고싶은데…》

《별로 특이한것도 재미나는것도 없답니다.》

《왜? 다감한 혜정씨고 보면…》

주섬주섬 빈 음식그릇을 거두어 보자기에 싸던 혜정이 그러는 사향을 쳐다보며 방금전과는 달리 좀 새침한 기색을 보였다.

《선생님, 내 선생님한테 투정질을 한가지 하랍니까?》

《투정질? 아이, 재미있어요. 어서…》

《이제부턴 나를 부를 때 이름뒤에 , 하는 말을 붙이지 말아주세요.》

눈을 곱게 흘긴다. 꼭 다정한 자매간인 동생이 제 언니에게 하는 엇드레질같다.

《그건 왜요? 난 처음에는 혜정씨를 처녀인줄로 알고 그렇게 부르다가 내 실수를 깨닫고 이제는 제대로 부르는줄 알았는데…》

《그 말이 좋은 말 같기는 하지만 우리 조국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고 이름뒤에 동무라고 부른답니다. 어쩐지 , 하고 부르니 선생님이 남남으로 대하는것 같아서…》

《그래서 그런다는거지요? 그래두 어떻게 내가 동무라고 부를가.》

《왜요? 그럼 혜정이 이렇게 이름만 부르세요.》

혜정동무!, 혜정이! 이렇게?》

《그래요. 얼마나 듣기 좋아요?…》

혜정은 사향의 손을 자기의 두손으로 꼭 포개잡았다. 따스한 정이 온몸에 전류처럼 퍼지는것 같았다.

《혜정씨, 그럼 나도 한가지 요구조건이 있는데…》

《또 …》

《참, 혜정동무!…》

《뭔데요?》

《혜정이 요구나 같아요. 이제부턴 나를 선생이라고 부르지 말아달라는거예요.》

《예? 그건 안됩니다.》

《안되다니요?》

《사향선생이야 유명짜한 기자인데 선생님이라고 불러야지요. 우리 나라에서도 선생님이란 말은 스승이라는 뜻으로 존경담아 부른답니다.》

《혜정이, 내가 무슨 혜정안내원의 선생님이겠어요. 오히려 이번 평양에 와서 혜정이한테서 많은것을 알고 배우고 가려고 하는데… 그러니 선생으로 말하면 혜정안내원쪽이…》

《아니, 그런게 아니예요.》

《이 이국민의 욕심같아선 날 언니라고 불러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진 않겠지요?》

사향은 애절함과 따뜻한 정이 실린 눈길로 혜정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사향언니!》

혜정이도 물기가 그렁한 눈을 아래로 떨구며 입속으로 불러보았다.

《혜정이!》

《언니!》

혜정이 사향의 손을 꼭 잡은채 그의 한쪽어깨에 다소곳이 얼굴을 기댔다. 사향이도 혜정의 함치르르한 까만 머리칼에 한쪽볼을 기대였다.

 

련 재
[장편소설] 뢰성 (제1회)
[장편소설] 뢰성 (제2회)
[장편소설] 뢰성 (제3회)
[장편소설] 뢰성 (제4회)
[장편소설] 뢰성 (제5회)
[장편소설] 뢰성 (제6회)
[장편소설] 뢰성 (제7회)
[장편소설] 뢰성 (제8회)
[장편소설] 뢰성 (제9회)
[장편소설] 뢰성 (제10회)
[장편소설] 뢰성 (제11회)
[장편소설] 뢰성 (제12회)
[장편소설] 뢰성 (제13회)
[장편소설] 뢰성 (제14회)
[장편소설] 뢰성 (제15회)
[장편소설] 뢰성 (제16회)
[장편소설] 뢰성 (제17회)
[장편소설] 뢰성 (제18회)
[장편소설] 뢰성 (제19회)
[장편소설] 뢰성 (제20회)
[장편소설] 뢰성 (제21회)
[장편소설] 뢰성 (제22회)
[장편소설] 뢰성 (제23회)
[장편소설] 뢰성 (제24회)
[장편소설] 뢰성 (제25회)
[장편소설] 뢰성 (제26회)
[장편소설] 뢰성 (제27회)
[장편소설] 뢰성 (제28회)
[장편소설] 뢰성 (제29회)
[장편소설] 뢰성 (제31회)
[장편소설] 뢰성 (제32회)
[장편소설] 뢰성 (제33회)
[장편소설] 뢰성 (제34회)
[장편소설] 뢰성 (제35회)
[장편소설] 뢰성 (제36회)
[장편소설] 뢰성 (제37회)
[장편소설] 뢰성 (제38회)
[장편소설] 뢰성 (제39회)
[장편소설] 뢰성 (제40회)
[장편소설] 뢰성 (제41회)
[장편소설] 뢰성 (제42회)
[장편소설] 뢰성 (제43회)
[장편소설] 뢰성 (제44회)
[장편소설] 뢰성 (제45회)
[장편소설] 뢰성 (제46회)
[장편소설] 뢰성 (제47회)
[장편소설] 뢰성 (제48회)
[장편소설] 뢰성 (제49회)
[장편소설] 뢰성 (제50회)
[장편소설] 뢰성 (제51회)
[장편소설] 뢰성 (마지막회)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0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