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35 회)

제 3 장. 륙군병원

2

 

류한종의 앞에는 여러가지 크기의 액틀이 놓여있었다. 액틀제작자가 주문받은것을 견본으로 몇개 만들어가지고 왔다. 무늬모양과 형태가 각이한 액틀들이였다. 해당화꽃무늬를 부각한 대형액틀도 있고 20호정도의 그림을 붙이게 되였으나 여러층으로 만들어 종심이 깊어보이게 한 금빛액틀도 있었다.

《선생님, 이걸 봐주십시오. 요즘은 봄철이라 나리꽃이 한창이지요. 그래서 나리꽃을 부각했는데 어떻습니까? 이런 액틀에는 풍경화가 어울리지요.》

한종은 견본들이 비교적 마음에 들었다. 그림보다 액틀이 더 요란하면 안되기에 몇가지 의견을 주지 않을수 없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안경쟁이제작자는 수첩에 그의 말을 부지런히 적어넣었다.

전람회준비가 그럴듯하게 돼가지만 한종은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있는 불안을 느끼고있었다.

입원실에 나타났던 어릴적 적수인 김봉칠의 존재가 그를 마냥 긴장하게 했다.

김봉칠이가 날 알아봤을가? 김봉칠과 눈길이 마주쳤을 때 한종은 미처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한종에게 있어서 이모네 집에 머무른것은 인생행로에서 잠간이지만 체험이 강해서인지 그때 있은 일들이 마음속깊이에 새겨졌었다. 그렇다고 하여 우연히 만난 그 시절의 적수를 순간에 알아볼수 있은것은 아니였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가. 자라면서 모색도 변하였다. 김봉칠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했을수도 있다. 하지만 설마가 큰일을 친다고 하지 않았는가.

《안골출장소》에 접근하는 일도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전쟁모략이 꾸며지는 그곳에 깊숙이 손을 뻗치겠는가?

《선생님, 그러니까 이 액자의 돋을무늬를 좀 약화시키라는 말씀이지요?》

안경쟁이는 연필로 도안을 그려가며 하나하나 구체적인 합의를 보려고 했다. 다 만들어놓은 후에 의견이 생기면 그 이상 랑패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그러면서도 자기딴의 식을 내리풀었다.

《아, 원래 이런 일은 계약을 세세하게 해야 하지요. 우리가 만든것자체가 완성품은 아니니까요. 액틀에 그림을 끼워넣고 조화가 맞아야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나타나지요. 인물 잘나도 옷이 초라하면 안되고 또 치장이 너무 요란해도 안되는것처럼

그 말에 한종은 웃고말았다. 자기쪽에서 오히려 한종을 설득시키려는것이 웃음을 자아냈다.

한종은 그와 마주앉아 액틀의 치수와 형태 그리고 장식무늬에 대해 하나씩 론의하였다.

안경쟁이가 만족하여 수첩을 접으며 일어설 때 원탁우에 놓인 전화기가 따르릉 울었다. 송수화기에서는 뜻밖에도 윤길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건재도매소가 있는 근방에서 급히 만나자는 련락이였다.

안경쟁이를 바래주고난 한종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있었다. 뽀얀 안개비였다. 우산을 쓴 녀인들이 있지만 대체로는 그냥 걷고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물결속에 섞이였다.

무슨 일이 생겼을가?

그에게서 가끔 전화가 걸려오군 했는데 오늘같은 비상신호가 오기는 처음이였다.

목깃을 올리고 한종은 급히 걸음을 옮기였다.

얼마후 그는 건재도매소가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건재도매소 아래쪽으로 길게 뻗은 쇠울타리가 있는데 아홉번째 기둥아래 한사람이 서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윤길이라는것이 알렸다. 윤길은 한쪽다리를 앞으로 내짚고있는 버릇이 있는데 지금도 그 자세로 서있었다.

한종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사람들의 래왕이 드물었다. 윤길이가 이곳을 만나는 장소로 정한것이 대견스럽게 생각되였다. 한종은 성큼성큼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오는것을 알아본 윤길이 날렵하게 다가왔다.

《형님.》

그의 애된 얼굴에 반가와하는 표정이 확 번지였다. 도도록한 이마, 티 한점 없는 말쑥한 살결, 비웃는듯 일그러든 입술도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의 뻗두룩한 머리칼에 비방울이 맺혀있기에 한종은 우산을 펼쳐들었다.

《오래 기다렸니?》

《아니예요. 방금 온걸요 뭐.》

그는 머리칼을 툭툭 털고는 한종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무척 신중해보였다.

《무슨 일이냐?》

《병원에서 온 소식이예요.》

《병원?》

정소미가 무슨 소식을 보냈을가?

《오늘 병원에 웬 사람이 나타나서 형님의 뒤조사를 하더래요.》

륙군병원 간호부로 일하는 채옥이라는 처녀가 가져온 소식이였다.

《어떤 사람인지 모른대?》

《누군지는 알수 없지만 군대인것만은 틀림없다고 해요. 소미누이가 형님에게 알려주라고 해서 왔다고 했어요.》

《그래-》

한종은 드디여 올것이 온듯 한 느낌이였다. 누군가가 자기에 대해 따지고들리라는것을 이미 각오하고있었기에 별로 새삼스러운것은 아니였지만 생각을 깊이 하지 않을수 없었다. 정보국에서는 꼭 자기의 정체를 밝히려 할것이다. 누구보다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는 시밍턴이 그 첫째 인물일것이다. 그외에 구용세와 같은자들도 자기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것이다. 또 진풍계며 보이지 않는 여러 시선들이 자기를 노리고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병원에 와서 207호실에 들어있던 미술가가 어떤 사람인가, 어디서 왔으며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간호부에게 물어봤다고 해요. 형님의 호실을 담당했던 간호부가 뭐라고 재잘거렸다는데 형님의 위치를 알려준것 같애요.》

《음-》

(김봉칠이 날 알아봤구나!)

제일 처음 떠오른 생각이였다. 정보국의 한다하는 전문가들이 그런 방법으로 뒤조사할리는 없다. 분명 이것은 김봉칠의 서투른 솜씨다.

《어떻게 생겼대?》

《나이가 아주 젊고 호리호리한데 꼭 뱀장어처럼 날씬하다고 했어요.》

(자기가 나타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내서 알아보았군.)

한가지 이상스러운것은 오종시에게 물어보면 인차 알수 있는 사실을 왜 병원에까지 사람을 파견했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김봉칠, 무엇을 하는 놈일가? 오종시에게 묻어다니는것을 봐선 《출장소》에서 일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다. 그날 거동을 보아도 오종시의 노복처럼 곁에 붙어 짐을 들고 다니였다. 그런데 왜 오종시에게 물어보지 않고 자기가 직접 사람을 파견했을가?

한종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어제날 자기와 맞섰던 그 소년인가를 확인한 다음에 행동하려고 할수 있다.

윤길이와 헤여져 돌아오면서 한종은 계속 그 생각뿐이였다. 그렇다, 그가 딴생각없이 나를 확인하려고 했다면 분명히 오종시에게 《저 미술가라는 사람을 어디서 본것 같은데요?》하고 말했을것이다. 그래, 분명 김봉칠은 자기딴의 생각을 품고있다. 무슨 엉큼한 수를 쓸지 모른다. 위험한 적수다!

한종은 봉칠이 어느때든 자기앞에 나타나리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이 들장난다. 어떻게 할것인가?

투덕투덕… 비꼬치가 커지면서 봄비가 시원하게 내렸다. 이미 주위는 어두워지고 가끔 자동차들이 물탕을 치며 달려가군 했다.

우산을 윤길에게 준 한종은 비를 맞으면서 천천히 걸었다. 몸이 젖어드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한가지, 어떤 방법으로 맞서야 할가 하는 생각뿐이였다. 그놈을 리용할수는 없을가? 벌써 몇번째 그 생각을 하였다. 《출장소》에 접근하는 징검돌로 그놈을 리용할수 있다면?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전람회장에 도착하니 문밖에서 안경쟁이가 기다리고있었다.

《아니, 왜 여기 있습니까?》

한종이 묻자 안경쟁이는 비를 맞아서인지 우들우들 떨며 말했다.

《글쎄, 자를 떨구고 가질 않았겠습니까. 권척 말이웨다. 그게 없으면 우린 꼼짝 못하지요.》

《예-》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아까 그들이 마주앉았던 탁상아래에 동그란 보라색권척이 떨어져있었다. 그것을 집어들고 안경쟁이는 입을 하 벌리고 웃었다. 한시름 놓은 인상이였다.

그 모습을 보며 한종은 부러웠다. 저렇게 큰 근심이 없이 웃어보면 얼마나 좋을가.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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