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편

2

 

할빈으로 가는 렬차는 20분가까이나 늦어서 들어왔다. 발바닥이 화끈화끈하도록 달아오른 승차장의 모래판우에 서너명의 손님들이 난쟁이같은 그림자를 끌고 오락가락하다가 더위에 지쳐빠져서 마침내 구내 량끝에 쌍둥이처럼 서있는 두개의 역명판밑으로 모여들었다. 하늘꼭대기에서 면바로 정수리를 내려지지는 정오의 해빛을 명색만이라도 피해볼 의지란 그밖에는 아무것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러나 역명판의 그늘이라는것이 부자집문패만 한 크기도 못되여 이 작은 정거장의 많지 못한 손님들은 카륜이라는 글자외에 서쪽으로 다음역은 흥륭산, 동쪽으로 다음역은 룡가보라는 역명과 거리밖에 적힌것이 없는 그 뼁끼칠이 터슬터슬해진 널판을 고대유적을 발굴한 고고학자와 같이 땀을 철철 흘리며 들여다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가운데 글자를 알아볼것 같은 사람은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기차시간이 늦어진다는것이 알려지자 걸어서 고유수로 돌아가야 하는 차광수를 먼저 떠나보내시였다. 차광수는 차가 떠날 때까지 함께 있고싶다고 했으나 소옥이가 할빈으로 떠난 다음에도 한시간가까이나 지나야 길림행 렬차가 들어오는데 그때까지 있다가 고유수까지 200리를 언제 가서 《볼쉐비크》의 편집사업을 비롯하여 래일로 계획된 사업을 처리하겠느냐고 하면서 억지로 떠밀어보내시였다.

역장이 차표도 팔고 통표도 메고 전철기도 제끼는 작은 역이라 발차시간이 각각 다른 할빈과 길림행 차표를 한꺼번에 사가지고 어설픈 널판자울타리를 대강 둘러막은 나들문을 빠져나오자 소옥이가 걱정스러워 아까부터 외우던 말을 다시 하였다.

《어디 그늘에 앉아있다가 나오세요. 저 불볕아래서 어떻게 기다리겠어요. 길림행 차시간은 아직도 멀었는데…》

《하여간 가봅시다. 소옥동무가 떠난 다음 정 못 견디겠으면 도로 나갔다 들어오겠소.》

김성주동지와 소옥은 승차장끝에 외따로 껑충하니 서있는 장내신호기 가까이 가서 섰다.

소옥은 양산으로 그이께 그늘을 지워드리려고 했지만 그이께서는 웃으시며 《소옥동무, 얼굴을 태우지 마시오. 이제부터 부자집아씨행세를 해야 한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하오.》하고 말씀하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 다시 할빈에 가서 주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 강조하시고나서 지금은 왕청문에 가있는 소옥의 아버지안부를 한참 묻고난 다음에야 통표를 쥔 시래기같이 휘주근해진 중년의 텁석부리역장이 흰 장갑을 끼며 구내에 나타났다. 그가 거드름을 부리며 호각을 홱- 불자 손님들은 덤비기 시작하였다. 이 염천에 제복을 입고 흰 장갑까지 끼고 나타난 역장의 둥글테모자가 이런 벽지에서는 제왕의 왕관같은 위력을 가지고있는것이다.

뗑뗑- 뗑뗑- 역증스럽게 종소리를 울리며 시꺼멓게 검댕이칠을 한것 같은 혼합렬차가 들어왔을 때 소옥은 길림이나 왕청문의 학교시절처럼 그이앞에 머리를 숙이고 절하였다.

《일이 끝나면 곧장 고유수로 돌아가겠어요. 일없겠어요?》

그는 별안간 소심한 어조로 물었다.

그이께서 길림을 거쳐 해룡지구로 갔다가 다시 교하로 돌아오시게 되여있기때문에 자기들이 돌아올 때쯤이면 고유수에서 만날수 있겠느냐는 질문과 함께 그 먼길에 별일 없으시기를 바라는 그 녀자의 간절한 마음이 말보다도 긴 살눈섭이 슴뻑거리는 눈에 어리여있었다.

《일없지 않구. 아마 내가 먼저 와서 동무들을 기다리게 될거요. 빨리 타오. 김혁동무에게 내가 전투적인사를 보낸다고 하시오. 그리고 우리끼리 <양은쟁개비>니 뭐니 하고 흉을 봤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오. 혹시 성이라도 내면 소옥동무 립장이 딱할게란 말이요.》

이미 렬차의 승강단에 한발을 올려놓은 소옥은 말없이 웃었다. 그러나 그 눈길에는 언뜻 물기가 어리였다. 김성주동지께서도 까닭없이 명치 한끝이 알찌근하시였다.

이상한 일이다. 이 정거장에서 맞고 보낸 동지들이 한둘이 아니요, 카륜회의 이후로는 멀고 험한 길로 중한 과업을 안고 떠나가는 동지들을 수없이 바래우신 김성주동지이시였다. 소옥이만 해도 길림으로, 흥경으로, 장춘으로 얼마나 자주 떠나갔던가. 그때마다 정거장까지 배웅을 나오지도 못했다. 사실 오늘은 그이자신께서 이 정거장에서 기차는 타야 할 형편이니 마침 함께 나왔지만 그전에는 일이 쌓여 진명학교 운동장이나 고유수의 동구밖까지 나와 바래우기도 쉽지 않으시였다. 그래도 언제한번 이렇게 섭섭한 마음을 느껴보신적이 없었다.

무슨 까닭인가? 소옥이가 안고가는 과업이 너무나 중하고 가는 곳이 너무나 낯선 이방세계같아서 소옥이 겪을 시련이 벌써부터 애처로와서일가.

그런것도 아니였다. 조선인길림소년회시절부터 노래를 잘 불러 장춘에서 녀학교를 다닐 때나 왕청문의 화흥중학교 고등과시절에는 벌써 《길림의 꾀꼴새》로 만주일판에 이름을 날린 소옥이였다. 한때 고유수에서 학교교장으로 있던 아버지를 따라 안 가본 곳이 없는 소옥이기때문에 이번 할빈행의 적임자로 선발되기도 하였던것이다.

역시 문제는 김혁이와 사랑하는 소옥이자신에게 있었다. 혁명의 준엄한 요구앞에서 불가피하게 무수한 작별과 상봉을 되풀이하게 되지만 김혁이를 떠나보낼 때마다 섭섭한 생각을 호탕한 웃음속에 가리우려고 애써온 김성주동지이시였다. 그럴 때마다 김혁이도 그이곁을 떠나는것이 괴로운듯 경우에 잘 어울리지도 않는 롱담을 끄집어내서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들어주군 하였다. 지금 소옥이를 보내면서 느끼는 석별의 정 역시 그가 김혁이의 귀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김혁이를 보낼 때와 꼭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는것을 느끼시였을 때 김성주동지께서는 역시 김혁이에게 하듯 껄껄 웃으시며 롱말을 하시였다.

《차에 올라서 곧 화장을 다시 해야겠소. 카륜의 두엄내를 싹 털어내시오.》

《두엄내를요?》

소옥은 웃음과 함께 되물으며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내릴 사람도 오를 사람도 없고 차칸에서는 모두 더위를 먹고 늘어졌는지 단내만 풍겨나왔다.

소옥은 문을 열어놓은 한증탕처럼 더운 김이 확확 뿜어져나오는 승강대로 다 올라섰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소옥의 양산을 받아 접은 다음 그가 승강대에 편히 섰을 때에야 넘겨주시였다.

《빼액-》

이름없는 작은 역에서 1분1초도 지체하기가 지겹다는듯 기차는 급한 소리를 내지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렬차가 검은 연기와 함께 탄가루를 휘뿌리며 떠나가버리자 역구내는 버림받은듯 쓸쓸하였다. 방금 내린 손님들인듯 호로대군복을 입은 하사관 한사람과 앙상한 어깨에 메산자보따리를 둘러멘 막벌이군같은 사나이 그리고 전족을 한 중년의 아낙네가 딸인지 손녀인지 모를 계집애의 손을 잡고 벌써 널판자울타리 한옆에 해단 출구로 나가고있었다.

통표를 어깨에 멘 역장도 방금까지 근엄하게 썼던 둥글테제모를 뒤로 제끼고 흰 장갑을 와락와락 벗어붙이며 침목우를 가로질러 지글지글하는 역사밑으로 조급히 걸어갔다.

다음차가 들어올 때까지 구내에서 할일없이 기다릴수 없다고 생각한 김성주동지께서도 천천히 승차장을 걸어나오시였다.

 

×

 

김성주동지와 헤여져서 한 이십리쯤 걸어가던 차광수는 뒤에서 울리는 말발굽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니 마차 한대가 달려오고있었다.

무더위속에서 걸어가기가 여간 베차지 않아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신 그는 마침이라고 생각하며 마차가 자기앞에 당도할 때까지 기다렸다. 혹시 마차가 고유수방향으로 갈수도 있다는 한가닥 미련이 그를 붙들어세웠던것이다.

차광수는 마차가 가까이 다가오자 손을 들었다. 허나 풍을 친 마차는 그를 본체만체도 안하고 씽하니 지나쳤다.

일이 맹랑하게 되자 차광수는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그런데 차광수를 지나 한참 달리던 마차가 뜻밖에도 멈춰서는것이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그는 마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마부도 없는 마차에서 웬 처녀가 내렸다.

《차광수동무가 아니예요?》

분명 자기를 찾는 목소리에 안경속에 있는 차광수의 눈이 커졌다.

조금 떨어져서 보니 소옥이와 비슷한 인상을 주는 처녀였다.

(그럴수가 있는가?)

할빈으로 간 소옥이가 되돌아설리 만무한데 그와 비슷한 처녀를 보니 광수는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는 안경을 벗어 눈을 비빈 후 다시 끼였다. 소옥이는 아니였다. 소옥은 치포를 입고있었지만 그 녀자는 수수한 회색양복치마에 새하얀 브라우스를 입고 밤빛손가방을 들고있었다. 이처럼 판이한 차림을 한 녀자를 소옥이와 헛갈린것은 둘 다 이런 촌정거장에서는 보기 드문 신녀성차림이기때문일것이다.

차광수는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 처녀가 한영애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영애가 어떻게 카륜에 나타났는가? 길림에서 각 조직을 련결하고있는 그가 자리를 비운다는것자체가 벌써 보통문제가 아니였다.

차광수를 알아보자 영애는 한숨을 호 내쉬였다.

너무나 살결이 희고 화려한 인상을 주어서 될수록이면 수수한 옷을 입고다니려고 의식적으로 애를 쓰는 그 녀자의 미모는 벽지의 황량한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보니 더 두드러지는듯 하였다. 다만 예상대로 꼭 다물린 입이라든가 만만찮은 빛을 내뿜는 눈에도 벌써 불안한 기색이 어리여있었다.

《영애동무, 웬일이요?》

차광수의 물음에 영애는 다급히 대답했다.

《한별동지를 찾아오는 길이예요.》

《한별동무를?》

《예, 고유수에 계시겠지요?》

차광수는 영애의 행동과 억양에서 심상치 않은것을 느끼고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요?》

《교하에… 폭동이 터진것 같아요.》

《뭐요?》

차광수는 놀라서 영애의 얼굴을 뚜렷이 바라보았다.

《돈화쪽도 심상치 않아요. 혹시 그쪽이 더 심한지 모르겠어요. 어제부터 기차도 전보도 통하지 않는다고 해요.》

《야단났군. 한별동무는 이미 떠났소.》

《예?! 어디로요?》

한영애는 그 하얀 얼굴이 파랗게 질려 되물었다. 김성주동지께서 만약 폭동이 일어난쪽으로 가신다면 정말 큰 문제였다. 이제 폭동을 구실로 대검거선풍이 불겠는데 김성주동지께서 그곳에 계시면 신변이 위태롭다. 차광수도 그것을 느꼈는지 몸을 섬찍 떨며 대답했다.

《좀전에 역전에서 헤여졌소. 승소옥동무를 할빈으로 보내고 길림, 해룡쪽으로 해서 교하로 가겠다고 했소.》

《야단났군요.》

둘은 난감한 기색으로 어떻게 할지 몰라 한동안 못박힌듯 서있었다.

그러다가 차광수가 먼저 말을 뗐다.

《길림은 어떻게 하고 왔소?》

《약왕묘지하실을 비우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놓고 왔어요.》

《그럼 됐소. 채수항동무를 만났소?》

《어제 들렸더군요. 밤차를 타고 돈화로 곧장 떠났는데 돈화에 내릴 때쯤에 벌써 폭동이 터진것 같아요. 채수항동무 일도 걱정되는군요.》

《거기는 진한장동무가 있으니 채동무의 신변이야 일없겠지. 교하가 문제요. 만약 한별동무가 그쪽으로 간다면 정말 위험하오.》

《내가 교하로 가면 안되겠어요? 나는 길림을 떠날 때부터 그럴 생각으로 준비를 다 해가지고 왔어요.》

《고맙소. 당장 떠나주오. 지금은 한시가 급하기때문에 달리 대책을 세울 방법도 없거니와 영애동무가 가는것이 어느모로 보나 좋을것 같기도 하오. 한별동무가 해룡에서 잘하면 하루, 늦어야 이틀이면 일을 끝내겠으니 영애동무는 한걸음 먼저 가서 만약 한별동무가 온다고 해도 신변에 다른 일이 없도록 조직해주오. 그리고 삼촌과 함께 종파들의 무모한 폭동음모를 짓부시고 그 반혁명적본질을 폭로하여 폭동의 여파가 딴 지방으로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하오. 틀림없이 5.30폭동때처럼 일제와 반동군벌이 야합해서 복수를 들이대겠는데 값없는 희생을 극력 줄이도록 조직과 사람들을 보호해야겠소. 5.30폭동만 해도 혁명에 그만큼 큰 손실을 입혔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또 그 놀음을 벌리다니…》

차광수는 생각할수록 분이 치밀어 주먹을 움켜쥐였다.

《정말 한광삼촌은 뭘하고있는지 모르겠어요.》

한영애는 사태의 엄중성을 깊이 리해할수록 안타까움을 참을수 없었다.

《삼촌 혼자서 어떻게 하겠소. 문제는 많은 군중조직들과 인민들이 아직 우리 혁명의 성격도, 진정한 혁명적인 로선도 잘 리해하지 못하고있기때문에 종파들의 교활한 술책과 파괴적인 선동에 쉽게 넘어가는것이요.

그렇기때문에 지금 한별동무가 내놓은 카륜회의로선을 침투하는 문제가 흔히 하는 선전사업이나 계몽사업과 같지 않다고 그처럼 강조하는게 아니요. 모르긴 해도 동무삼촌이 있었으니 최선을 다했을거요. 폭동을 일으키거나 누르는 일이 어떤 한두사람의 힘으로 될수가 없소. 빨리 가서 삼촌을 도와야겠소.》

한영애는 다시 마차에 올랐다.

《그런데 이 마차는 어디서 났소?》

차광수의 물음에 한영애는 그제야 긴장했던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세를 냈어요. 소식이 너무 급해 역에 내려서 어떻게 할가 망설이는데 마침 역앞에 이 마차가 있더군요. 오가자근방에 사는 중국인지주가 병이 나서 여기 어디 명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댔다는데 명의는 찾지 못하고 지주는 녹초가 되여 역장실에서 아편을 빨고있더군요. 나도 친정아버지가 병이 생겨서 약을 구하러 왔는데 명의를 잘 아니 마차를 빌려주면 명의를 모셔오겠다고 했지요 뭐. 내 차림새를 찬찬히 보던 지주가 믿음이 가던지 마부를 붙여주더군요. 그를 데리고 올수는 없고 그래서 역을 벗어난 다음 한시간이면 되겠으니 주막집에서 그동안 술이나 마시라고 마부에게 돈을 좀 쥐여주고 이렇게 혼자 떠났어요.》

그 말을 듣고 차광수도 히죽이 웃었다.

《동무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만. 그런데 명의를 못 데려가서 어떻게 하오.》

《걱정말아요. 명의가 먼곳에 이사갔더라면 되지요. 그럼 소문만 듣고 헤매는 그 지주의 수고도 덜어줄게 아니예요. 호호.》

《그럼 빨리 가오.》

영애는 미소를 지으며 채찍을 휘둘렀다.

마차는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황토색먼지를 말아올리며 카륜역방향으로 질풍같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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