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편

3

 

역앞 홍예다리를 건너선 김혁이와 소옥은 곧장 끼따이스까야의 번화가로 접어들었다.

늘씬한 키에 파나마모를 쓰고 신선한 남새들이 담긴 저자구럭을 든 김혁의 행색이나 해빛이 비쳐야만 꽃무늬가 드러나는 은회색치포를 산뜻하게 걸치고 양산을 든 소옥의 모습은 얼핏 보매 류행의 도시, 환락의 도시로서 이름높은 할빈 도리의 낯익은 단골손님같은 인상을 자아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늘에서는 불볕이 쏟아져내리고 포석은 화끈 달아서 훅훅 지열을 뿜어댄다. 사람들은 분주히 송화강가로 더위를 피해 달아났다. 태양도수영장으로 너무 덤비며 달려가던 요트가 뒤집혔다는 과장된 소문도 있다.

두주일전 몬마르뜨르의 밤거리에 처음 나타난 새형의 여름용부인모가 끼따이스까야거리에 얼씬거리더니 요즘 태양도에는 마이아미에서 방금 건너왔다는 아래우가 각각 분리된 녀자용수영복이 새로 나타나서 인기를 끄는 바람에 츄린상점의 매대유리가 마사졌다는 이 또한 틀림없이 과장된 소문도 나돌았다.

빠리에서 할빈까지 기차길로 13일간, 빠리의 류행복이 할빈에 들어오는데는 14일이면 족하다고 한다.

한편 라체예술의 도시 할빈의 비평가들은 그 새로운 취미의 수영복을 론평하기 위하여 태양도로 쓸어들었다.

어딘가 제정신들이 아닌것 같다. 이것이 모두 례년에 드문 지독한 더위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순박한 사람들도 있다.

방종한 1920년대가 물려준 골치아픈 유산때문에 잠 못 드는 1930년대의 번민의 시작이라는것을 느끼는 사람 역시 드물지는 않다.

1920년대는 랑비를 좋아하는 경박한 아씨처럼 수많은 소부르죠아철학과 류행, 수많은 소부르죠아공산당과 무수한 호외를 휘뿌려놓고 그우에 세계적인 경제공황과 10년간의 중국군벌전쟁, 유럽의 한복판에 대두한 파쑈 그리고 멀미나는 속도문명과 라체예술을 꽃다발처럼 척 받쳐서 내놓고 사라져버렸다. 영양실조가 생긴 조산아처럼 1930년대는 태여나는 첫날부터 찌뿌드한 표정이였다.

그것이 옮아선지 아름다운 국제도시 할빈의 표정 역시 아무리 네온과 분과 향수로 닥달해도 그닥 밝지는 못했다. 중동선연선과 동쪽국경에서는 아직도 쏘련특별원동군과 장학량군벌군사이에 긴장이 가시지 않고있다. 이미 1920년대말에 체결된 쏘중간의 협정에 의하면 오래전에 없어졌어야 할 백계신문 《자랴》에는 신경제정책이 전면실패했다고 고소해하는 독설이 범람하고 중동선의 쏘련관리일군과 제니낀의 군복을 입은 백파장교들이 버젓이 한거리를 활보하고있다.

해마다 2 500만석이상의 콩과 1 000만석의 밀을 비롯한 무수한 물화가 실려들어오고 실려나가는 이 도시에 세계적인 불경기의 파도가 휩쓸고 군벌전쟁에 휘뿌리워진 100만명이상의 류랑민들이 쓸어들어서 실업자는 골목을 메우고 아사자는 도처에서 시취를 풍긴다.

거기에 또 폭동이 휩쓸어온다는것이다.

일제가 조선을 병탄한 1910년 8월 29일의 국치일 20주년과 국제반전일이 다가옴에 따라 조선의 공산주의자들과 독립운동자들이 무슨 거사든 일으킬것이라는 판단밑에 일제령사관경찰과 군벌당국이 합동으로 계엄상태에 들어갔다.

마음의 안정을 뒤흔드는 일은 그밖에도 무수하다. 그러나 여전히 라체예술의 도시, 환락의 도시로서의 겉모양을 태연히 유지하고있다.

자동차경적소리, 어디선가 울려오는 간드러진 축음기소리, 허리를 꼬아비트는 녀인들의 웃음소리, 되거리장사아치들의 웨침소리, 치고받고 내뛰는 깡패들의 악다구니소리, 소리, 소리, 소리, 거기에 기름내, 땀내, 가스내, 향수내, 비린내, 냄새, 냄새, 냄새… 아무튼 30여개의 종족이 엇섞여돌아가는 이 거리에 무슨 소리, 무슨 냄샌들 없으랴.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래도 소옥은 좋았다.

(남들이 보면 신혼부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필 저자구럭을 들고나올건 뭐람.)

소옥은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화려한 양산기슭으로 김혁이가 들고가는 저자구럭을 바라보았다. 버들고리로 엮은 네모난 조롱같은 구럭에 오이가 여라문개, 파가 두어줌 그리고 그밑에 양배추가 몇통 들어있다. 김혁의 모습에는 새로 맞아들인 사랑하는 안해를 위하여 이처럼 충실한 노복노릇을 하는것이 무엇보다 행복하다는듯 한 미소가 어리여있다. 그것이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마치 그런 못난이남편짓을 실지 해본 경험이라도 있는듯 하다.

소옥은 불시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적들이 비상계엄상태에 들어갔다는 거리에 비밀출판물을 날라가면서 순간이나마 들뜬 생각에 사로잡혔다는것이 부끄러웠다. 애인처럼, 신혼부부처럼 가장하고 이 번화가를 걸어가는것은 혁명과업인것이다. 김혁이가 들고가는 저자구럭밑에는 김성주동지의 연설 《조선혁명의 진로》가 실린 《볼쉐비크》특간호가 들어있다. 《한별》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그 글은 카륜회의에서 하신 그이의 연설이였다. 그것을 나하로브까에 있는 부두로동자들의 조직에 전해야 하는것이다.

할빈의 정세는 예견했던것처럼 험하지는 않았다. 물론 토로즈의 조직에서 통보한 내용이 근거없는것은 아니였다. 사실 김혁이가 도착했을무렵만 해도 월과 조청산을 비롯한 화요파의 《거두》들이 할빈에 기여들어 철도로동자들도 쑤셔보고 부두로동자들도 쑤셔보고 나중에는 선술집이며 장마당같은데 나타나서 소시민층들에게 과격한 연설로 추파를 던져보기도 했으나 이미 김혁이를 통하여 카륜회의로선을 전달받은 로동자들과 동포들속에서는 그 누구도 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차에 일제경찰과 특무기관에서 무슨 기민가를 채고 문어다리처럼 수색망을 늘여놓자 황급해서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물론 할일은 아직도 많고많았다. 종파들이 도심지대에서는 자취를 감추었으나 어디 가서 또 쏠라닥거릴는지 알수 없고 워낙 할빈이란 엄청난 대도시여서 카륜회의로선이 다 침투된것도 아니였다.

김성주동지의 긴급지시를 전달받자 김혁은 처음에는 긴장되였으나 인차 자신만만한 태도를 회복하였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소옥이가 온것을 반가와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너무 돌아쳐서 놈들의 눈에 뜨인듯 한 흔적이 있는데 동무가 와서 애인역을 맡아주면 비슷할것 같다고 시침을 뻑 따고 말하였다.

소옥은 공작을 핑게대고 그런 말을 넘실해서 해치우는것이 괘씸하여 한참 새침해있었으나 종당에는 웃지 않을수 없었다.

김성주동지께서 자기를 파견하실 때 그런 타산도 없지 않았던것을 아는 소옥은 일부러 오랜 시간을 끈 끝에 마지못해 찬성하는듯 여러가지 조건을 붙였지만 실상 마음속은 밝고 즐거웠던것이다.

《아무리 해도 취미를 알수가 없군. 어깨를 다 드러낸것을 보니 덥긴 더운 모양인데…》

김혁이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느 나라 녀인인지 등과 가슴을 지나칠만큼 파낸 소매 없는 웃옷을 걸친 젊은 녀자가 털이 북신북신한 삽살개를 끌어안고 연신 볼을 맞비비며 지나가고 그뒤로 남편인듯 한 뚱뚱보가 개사슬을 쥐고 단장을 휘두르며 따라간다.

김혁은 몹시 더운듯 파나마모를 벗어 부채질을 하였다. 긴머리칼이 흩어져드리운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연신 흘러내린다.

소옥은 왕청문 화흥중학교에서 저 긴 머리칼을 연방 고개짓으로 쓸어넘기며 시를 읊던 김혁의 모습을 상기하였다. 자기에게 혁명의 열정과 아름다움을 인식시키고 눈뜨게 해준것이 김혁이였다. 혁명의 노래를 처음 배워준것도 김혁이였다. 그때는 엄한 스승이였다. 어쩐지 그는 하늘공중 솟아있는 옛말속의 장수처럼 생각되였고 반동들을 규탄하는 그의 열변은 아직도 이 세상을 계급의 관점에서 볼줄 모르는 자기에 대한 채찍질같아서 마주 대하기가 서먹서먹하고 지어 무섭기까지 하였었다. 사실 화흥중학교의 실하지 못한 연탁은 김혁의 밤마다 내리치는 주먹아래에서 몇번이나 찌그러졌는지 모른다. 그런 그가 저렇게 의젓한 신사차림을 하고 이 부르죠아냄새가 물씬물씬하는 거리를 행복한체 걸어가자니 자기보다 더 힘들것이다. 소옥이 자기는 사실 그와 같이 걷는 이 길이 행복하지만 그에게야 나같은 촌뜨기와 같이 이런 멋쟁이들의 틈바구니를 누벼나가는것이 무슨 재미가 있을것인가. 소옥은 일상 그를 혁명동지로밖에 생각지 않는척 했고 일부터 쌀쌀한체 대해주기도 했지만 그는 소옥이를 언제나 살뜰하게 대해주었다. 소옥은 그것이 자기가 그를 생각하는 그만큼 자기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표적이라고 생각하는것이였다. 그에게야 혁명밖에 더 생각하는게 있을라구.…

《선생님, 더운데 체면차리지 말고 양산밑으로 들어오세요. 우리는 애인끼리가 아니예요?》

소옥은 키큰 김혁의 얼굴우에 양산그늘을 지어주며 일부러 쌀쌀한 어조로 말했다.

《하기는 그렇지, 그런데 어떨가? 어디 살펴보오, 녀자의 양산밑에서 걸어가는 사나이들이 있소?》

《별소리 다하지 않아요? 남이야 뭐라건 상관이 있어요?》

소옥은 정말 시뚝한 생각이 나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김혁의 표정은 진지하였다.

《모든게 자연스러워야 한단 말이요. 아시아사람이 바싹 끼고가는것은 아무리 할빈이라도 좀 이상스럽지 않을가?》

역시 그에게는 비밀출판물을 안전하게 날라가야겠다는 그 한가지 생각밖에 없다. 그런 생각이 어찌 자기에게만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없다고 생각하는가.

하기는 그가 밤을 밝혀 《조선혁명의 진로》를 원지에 옮기며 차광수와 웨쳐대던 그 열정을 생각하면 심정이 리해되기도 한다.

《이건 보통잡지에 실리는 정치론설같은게 아니란 말이요. 이건 온 세상을 불태울 불길-누리를 불태우는 불씨란 말이요.》

내가 아무리 주필이지만 이것만은 제 손으로 써야 한다고 내우기며 강필을 들고 석유등밑에 마주앉아있던 그는 불시에 등잔그을음이 거멓게 앉은 코구멍을 벌름거리며 차광수에게 대들듯이 웨치군 하였다.

《볼쉐비크》특간호의 발간행정을 근엄한 표정으로 지켜보고있던 차광수는 비죽이 웃으며 코구멍을 훔치라고 손짓하였다.

김혁은 또 한참 열을 뿜어올리다가 손수건을 꺼내여 코를 훔쳤다. 그을음은 오히려 우습강스러운 코수염을 그려놓았다.

차광수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뒤를 돌아보았을 때 소옥은 벌써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길이 없어 등사판굴대를 한손에 든채 학교마당으로 달려나갔었다. 한참 허리를 잡고 웃다가 들어가니 김혁은 이미 단정하게 차리고 앉아 강필을 놀리고있다가 엄하게 돌아보며 말했다.

《소옥동무, 일을 깐깐히 해야겠소. 출판사업이란 책임적인 사업이란 말이요. 책임적인

《동무는 오늘 밤에 웬 말이 그렇게 많은가? 동무야말로 침착해야겠네.》

차광수가 보다못해 한마디 하고는 나가버렸다.

서로 많은 말을 가슴에 품고도 그다음은 말 한마디 없이 밤을 새우며 원지를 메꾸고 등사판을 밀었다. 즐거운 밤이였다.

화흥중학교에서 김혁을 만나 처음 깊이 사귀기 시작한것도 그러한 학교수직실에서 등사를 거들어준데로부터 시작되였다. 그때도 김혁이는 무엇인가 많은 말을 하였지만 소옥이로서는 알아들을수 없는 외국의 혁명시인과 부르죠아 돈주머니에 매달려 사는 그 무슨 너절한 출판업자가 전혀 리해해주지 않았다는 그의 담시에 대한것이였다.…

김혁은 해가 기울어지자 차츰 더 붐비는 거리를 아래우로 훑어본다.

부르죠아사회와 부르죠아문명에 대해 그리도 한푼 싸잖게 굽어보던 김혁이가 자기 양산그늘에 들어오는것을 이처럼 재는것을 보니 소옥은 유쾌하였다.

불타는 열정으로 제 온몸마저 송두리채 불태워버릴가봐 늘 두렵던 이런 사람도 뭔가 재는것이 있다는것이 즐거웠다. 그가 두려워하는것은 과연 무엇일가?…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거미떼 흩어지는것 같다. 그제야 덮쳐누르는듯 한 비구름이 하늘을 삼켜버렸다는것을 깨달았다. 송화강쪽에서 솨- 하고 누기찬 바람이 불어오더니 먼지와 휴지와 류행복의 치마자락을 한꺼번에 휘말려올렸다.

후두둑 하고 콩알같은 비방울이 먼지길우에 얼룩을 지으는가싶더니 삽시에 장대비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가까운 집 현관으로, 추녀밑으로 달려갔다.

자동차, 인력거, 마차들도 공연히 부산을 피우며 냅다 달아난다.

《우리도 비를 긋고 가자요.》

김혁은 저자구럭을 내려다보더니 비물이 흘러드는것을 보자 어쩔수없이 소옥의 뒤를 따라 가까운 추녀밑으로 들어섰다.

《오뗄 빈쟝》이라는 로씨야간판이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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