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 회)

제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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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날 감찰자사 최유엄은 말을 타고 집을 나섰다.

그는 지금 력동을 찾아가는중이였다.

역시 말을 탄 중년사나이가 최유엄의 뒤를 따르고있었다.

몇달전만해도 최유엄은 설경성을 내놓은 다른 의원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늘 설경성이에게서 치료를 받아온 최유엄으로서는 그렇게 여길만도 하였다.

설경성이 원나라로 떠나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최유엄은 한쪽머리가 아파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몇달이 지나도 멎지 않고 오히려 더 아파났다.

어떤 날은 너무도 앞머리가 쏴서 정신을 차릴수 없는 형편이였다.

하는수없이 최유엄은 력동을 찾아갔다.

그런데 력동이 제법이였다.

척 맥을 보고는 편두통에 걸렸는데 우습게 볼 병이 아니라면서 생무우즙에 생룡뇌를 섞은 약물을 량쪽코에 넣어주었다.

력동의 말이 오른쪽머리가 아프면 왼쪽코구멍에 왼쪽머리가 아플 때에는 오른쪽코구멍 그리고 앞머리가 아픈 경우는 량쪽코구멍에 그 약물을 넣어주면 인차 멎는다는것이였다.

과연 얼마 안있어 머리아픔이 씻은듯 없어졌다.

최유엄이 기뻐하니 력동은 머리를 저었다.

《편두통에 쓰는 약비방은 많아도 신통하게 말을 잘 듣는 약은 별로 없소이다.

이제 얼마쯤 있으면 또다시 머리가 아플것이오이다. 그때마다 이 약을 코에 넣어주면서 도홍사물탕을 써야 하오이다.

약도 약이지만 너무 늦게 잠자리에 들지 말고 또 베개도 꼭꼭 베고 잠을 자되 베개높이는 주먹높이가 좋소이다.》

력동이 시킨대로 약도 쓰고 잠도 제때에 자고 베개도 베고 잤더니 보름후부터는 신통하게도 편두통이 사라져버렸다.

비로소 최유엄은 잠을 적게 자고 베개를 베지 않는것이 편두통을 불러들이는 재앙거리임을 알수 있었다.

최유엄은 밤늦게까지 책을 보고 베개도 베지 않고 자는 습관이 있었던것이였다.

그때에야 최유엄은 력동이의 의술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 병자를 뒤에 달고 혜민국을 찾아가는 최유엄이였다.

혜민국에 당도하니 마침 뜨락에서 서성거리던 력동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뜨락의 느티나무에 말을 매여놓은 최유엄이 력동이에게 병자를 가리켰다.

《나와 함께 감찰사에서 일을 보는 사람이네. 머리가 아픈지는 오래되였고 여러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약을 썼는데 낫지 않아 그대에게 온것이네.》

병자의 안색을 보며 맥을 짚어보고난 력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인차 안에 들어가 약을 지어오겠으니 여기서 기다리시오이다.》

그 말에 병자가 미간을 찌프렸다.

세상에 찾아온 병자를 밖에 그대로 세워두는 의원도 있다니?…

좀 있어 대접을 들고나온 력동이 그것을 병자에게 내밀었다.

《단숨에 약물을 쭉 마셔야 하오이다.》

병자는 불쾌한 마음이였지만 약사발을 받아들고 꿀꺽꿀꺽 들이켰다.

빈사발을 받아든 력동이 엄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토하는게 있겠는데 절대로 놀라지 마소이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병자가 억- 소리를 치며 토하기 시작했다.

피덩어리를 토하는것을 본 최유엄이 몸서리를 쳤다.

병자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력동이 일렀다.

《이제 가슴도 후련해지고 머리도 깨끗해질것이오이다. 그러니 속에 있는걸 다 토해야 하오이다.》

이윽고 피덩어리들을 말끔히 토해버린 병자가 허리를 펴자 력동이 수건을 내밀었다.

《입을 닦으시오이다.》

력동이 몸서리를 치는 최유엄에게 눈길을 주었다.

《병자는 타박의 어혈로 몸에 나쁜 피가 쌓여 머리가 아팠던것이오이다. 이 경우 아무리 머리아픔에 좋은 약을 써도 병이 낫지 않소이다.》

가슴도 시원해지고 머리도 거뜬해진것이 이상해서 고개를 기웃거리던 병자가 력동을 경탄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참말 신기하오. 이젠 날아갈것 같소. 그런데 이상한건 타박을 당한 일이 없는거요.》

력동이 웃었다.

《아니, 있소이다. 지난해쯤 분명 넘어진적 있소이다.》

병자가 벙글 웃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지난해 말을 타다가 등자를 헛디더 넘어진적 있소. 그런데 그때 별로 몸이 아프지는 않았소.》

《그게 바로 병의 근원이였소이다. 비록 몸이 아프지는 않았어도 그 타박으로 어혈이 생긴것이오이다.

그래서 난 우리 사부님의 처방대로 활혈탕에다 한두가지 약재를 더 넣어서 약을 써준것이오이다.》

감동된 최유엄이 력동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더니… 설형이 참으로 훌륭한 제자들을 키워냈다는것을 오늘 똑똑히 알았소.》

이 일이 크게 소문이 나서 설경성의 제자들에게 병자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왔다.

날과 달이 거침없이 흘러 정해년(1287)이 왔다.

한해 더 남아있기로 했던 후비라이와의 언약을 지킨 설경성은 정월 어느날 대도를 나섰다.

그가 차리고나선 행장은 너무도 단출하였다. 원나라로 올 때 가지고온 물건외에 고국의 문둥병자들에게 줄 수백근의 태풍자가 전부였다.

후비라이는 눈물속에 설경성을 바래웠다. 그가 바래우며 하는 부탁은 해마다 꼭꼭 한번은 태도에 와서 자기의 몸상태를 보아달라는것이였다.

물론 설경성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쾌히 약속하였다.

나이와 신분, 국적을 초월하여 맺은 둘도 없는 벗을 떠나보내는 작별의 아픔은 무수한 주검들이 딩구는 전장에서 돌심장이 되여버렸던 그를 딴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으니 그로 하여 눈물을 걷잡지 못하는 후비라이였다.

후비라이에게 있어서 설경성은 두번씩이나 목숨을 건져준 은인중의 은인이였다.

설경성이 아니였다면 후비라이는 자객들의 손에 저승귀신이 되였을것이였다.

지난해 황태자 진금이 한밤중에 목숨을 잃는 참사를 당하였다.

설경성이 진상을 밝힌데 의하면 그가 먹은 간식에 독이 들어있었다.

설경성이 검식을 하지 않았더라면 후비라이도 그런 죽음을 당했을것이였다.

골육상쟁의 비극이 세상에 알려지는것을 바라지 않는 후비라이의 의도를 생각하여 설경성은 이 사건을 흑막속에 묻어버리도록 하였다.

후비라이와 헤여진 설경성의 일행을 수백명의 군사를 거느린 황녀 망가대가 직접 호위를 맡아했다.

망가대가 설경성의 호위를 자청해나선것은 원나라에서 불치의 병이라던 유종을 고쳐준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하고싶기도 하거니와 후비라이가 준 만금재물을 고스란히 놓아두고 자기 나라의 병자들을 위해 고려에 없는 약재만을 싸들고나선 설경성의 처사에 반해서였다.

신선같은 설경성을 집에까지 모시고가고싶은 마음에 망가대는 황궁의 군사들로 보란듯이 행차를 무었다.

대도를 나선 설경성은 련덕신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아팠다.

얼마전 앞으로 꼭 만나리라고 믿었던 련덕신이 잘못되였다는 소식이 대도에 날아들었다. 후비라이의 동생이 된다는 변방장수의 병치료를 하던중 적들의 기습을 받아 잘못되였다는것이였다.

세상에는 얼마나 가슴아픈 일이 많은가.…

단출하게 가고싶어하는 설경성의 거듭되는 만류에 못이겨 망가대는 동경에서 멈춰섰다.

그대신 왕택소를 호위장수로 임명하고 설경성을 개경에까지 무사히 모시고 가라는 령을 내리였다.

의주를 마주한 압록강가에 이른 설경성은 백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온 왕택소에게 몇사람만 남기고 돌려보내도록 하였다.

이튿날아침 몇명의 일행만을 거느리고 의주에 들어선 설경성은 대뜸 두눈에 피발이 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강산은 변함이 없건만 주인노릇을 하는 원나라군사들의 더러운 꼴이 눈에 뜨이였기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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