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회)

제 3 편

5

(2)

 

꽈꽝, 꽝- 남포는 여전히 튄다.

그래도 사람들은 누가 멈추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는 기계처럼 계속 자갈을 춘다. 세가닥 말장에 쇠그물채를 달아매고 운명을 달래듯이 흔드는가 하면 쇠소쿠리를 앙상한 가슴에 부여안고 몸부림치기도 한다.

달구지는 삐걱거리며 울퉁불퉁한 자갈밭을 굴러가고 먼곳에서는 목도 소리도 멎지 않는다. 니마토앞산 남포현장에서만 사람들이 철길로반이며 산비탈 후미진곳에 숨어 담배질을 하고있다.

춘국이가 진정되는것을 보고야 아들애한테로 달려가던 고만녀는 깜짝 놀랐다. 울음소리가 가늘어진다고 먼 귀결에 어렴풋이 느껴지더니 웬 나그네가 아이를 가슴에 품고 한절반 엎드리다싶이 앉아있는것이다. 날아오는 돌멩이를 막아주느라고 잔뜩 어깨를 구부리고도 한손으로는 아이를 얼리며 다독거린다.

고만녀는 잠시 서서 누굴가 하고 의아쩍은 생각을 하다가 달려갔다.

그뒤에서 중성이가 춘국에게 속삭였다.

《저분이야.》

고만녀는 나그네앞에 손을 내밀었다. 터갈라지고 손가락마다 어지러운 헝겊쪼각이 감겨있고 새로 물집이 터져 피배인 생살이 빨갛게 내민 고만녀는 《이리 주옵소.》하고 마치 용서를 빌듯 낮게 말하였다. 그러나 나그네는 가슴을 기울여 애기를 더 깊숙이 가리워주며 고만녀의 손과 자갈밭에 맨발벗고 서있는 역시 터갈린 발과 강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칼이며 이 날씨, 이 고장치고는 너무나 엷은 토스레옷가지를 한눈에 더듬어보고 조용하게 말하였다.

《아주머니도 여기 앉으십시오. 혹시 돌멩이에 맞으면 어찌겠습니까. 아이생각을 해서라도 몸을 조심해야지요.》

우렁우렁 울리는 목소리지만 퍽 젊은 목소리같았다. 고만녀는 팍 고개를 숙이고 한절반 돌판에 꿇어앉아 애기를 넘겨받았다.

중성이가 춘국이를 데리고 왔다. 키도 옷차림도 비슷한 두 친구는 나란히 서서 춘국이가 굽석 절을 하니 강건너에서 이미 인사를 드린 중성이도 덩달아 다시 절을 했다. 석현에서 오중화를 만나시자 곧 채수항을 고유수로 떠나보내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석현과 회막동의 박달봉, 남양촌일대의 조직들을 지도하신 후 오중화의 안내로 국경을 넘으시였다. 두만강을 건늘 때는 중성이가 젓는 매생이를 타고 상탄나루로 해서 어후골로 들어서시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춘국이의 손을 꽉 움켜잡으시고 그대로 꿇어앉히시였다.

《내 김성주라고 합니다. 이리 앉으시오. 남포가 튈동안 여기 앉아서 이야기나 좀 합시다.》

춘국이가 엉거주춤 자갈판에 꿇어앉자 뒤에 두손을 모아쥐고 서있는 오중화를 보고도 앉으라고 말씀하시였다.

고만녀는 자기가 일하던 상자그늘로 돌아가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상자기슭으로 약간 드러나는 어깨가 떨고있다. 우는 모양같다.

《집사정이 몹시 어려운 모양이지요? 젖먹이를 데리고 녀자가 나온것은 보이지 않는데…》

김성주동지께서는 누구에게라없이 물으시였다.

《저 아낙네가 바로 하연성이 그 사람의 안햅니다.》

오중화가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최춘국이는 아직 무슨 영문인지 모르기때문에 제나름으로 또 대답하였다.

《집사정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 녀인은 남편이 운동바람이 나서 떠돌아다니는 덕분에 저 고생입니다. 그 친구도 이번에 와서는 소작혁명을 안하겠다고 최창익이와 맞대놓고 싸웠다는 말이 짜한데.》

최춘국이는 어려운분 앞이라고 입에 밴 토배기말투를 극력 감추어가며 힘들게 말씀드렸다.

《소작혁명을 안하겠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조용히 외우시였다.

이미 석현에서 오중화한테서 들으신 말이였다. 그러나 불쌍한 녀인의 형상을 눈앞에 보시니 그 말의 뜻이 감각적으로 가슴에 안겨오는듯 하였다. 그러면서 하연성이가 삼촌을 직접 만나본것이 틀림없다는 느낌이 드시였다. 그렇다면 그가 안도로 해서 그 어딘가로 가겠다고 했다는것은 혹 안도의 어머니나 조선혁명군을 찾아간다는것이나 아닐것인가?

이런 착잡한 생각우에 저만치 돌아앉아 어깨를 떨고있는 아낙네의 모습은 처절한 형상이 되여 그이의 가슴을 찔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잠자코 강물을 바라보시였다. 멀리서 볼 때는 그렇게 맑아보이던 강물이 정작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뿌연 젖물같이 흐려있었다.

어느덧 남포는 멎었다. 정남이의 울음도 그쳤다. 《치기영, 허기영.》하는 목소리도, 섬기고받는 달구군들의 선소리도 엷은 가을빛이 찬바람에 떠는듯 한 강기슭에 흐느낌같이 울려온다.

《강연회에 벌써 숱한게 갔소.》

최춘국이가 침묵을 깨뜨리며 오중화를 건너다보고 말했다. 여기 형편을 알린다는것이다.

《강연회는 어디서 한다더냐?》

오중화가 물었다.

《보통학교강당에서 한다오. 하이칼라녀자를 보겠다고 지금 공사판에서도 쉬쉬 말을 돌리고있소.》

오중화는 해가늠을 해보았다. 어쨌든 사회주의운동자로 이름이 알려진 최창익이고 또 바로 이 고장출신 사람이라 김성주동지께서 여기다 발판을 꾸리자면 의례 가보자고 하실것 같았다. 그는 최창익이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있지 않다는데 대해 그이앞에 숨김없이 터놓았기때문에 이제 무슨 말씀이 떨어질지 은근히 마음이 쓰이였다.

《춘국동무, 여기서 일을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나 일자리에 붙여줍니까?》

춘국이는 뜻밖의 질문에 시꺼먼 눈섭을 꾸부럭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 낯빛을 살피다가 대답했다.

《일이야 만보만 한장 얻으면 되지요.》

《그건 이제는 못탑니까?》

《이제요?》

춘국이는 기가 막히다는듯이 되묻더니 말하였다.

《첫새벽에 만보를 내주는데 그때는 전쟁판같습니다. 낮에 내주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도 춘국동무는 여기서 일을 오래 했으니 힘이 좀 있겠지. 그 만보를 좀 얻어올수 없겠습니까?》

《아니, 만보는 해서 뭘합니까? 구경이나 하자면 저 고만녀아주머니가 가지고있겠는데요.》

《구경이나 해서 뭘하겠습니까. 나도 일을 좀 하자고 합니다.》

《예?》

중화네 형제와 춘국이는 한꺼번에 놀란 소리를 질렀다.

《아니, 강연회에는 안 가겠습니까, 읍내까지 가자면 아직 30리길인데요.》

《강연회요?》

중화의 물음에 이번에는 김성주동지께서 놀라신듯 되물으시였다.

《시방 세상물계나 아는 청년들은 다 그리로 갑니다.》

최춘국이가 덧붙였다.

《강연회에 가서는 뭘하겠습니까. 나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었습니다. 그런 강연이나 듣자고 여기로 온것은 아닙니다. 나는 고생스레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을 만나보고 앞으로 살아갈 길을 의논해보자고 왔습니다.》

오중화는 너무나 강한 충격에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이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중성이와 춘국이도 놀라서 눈을 더부럭거렸다. 만주총국보다 더 높은 곳에서 왔다는 혁명가가 유명한 사회주의자의 강연은 들을 필요도 없다니 잘 리해가 가지 않았던것이다.

《최창익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일본의 후꾸모도이즘인지 하는것을 그대로 베껴온것인데 그것은 1927년에 국제당에서 비판을 받고 일본에서는 사라진지도 오랜것을 여기서 우려먹고있습니다. 그러니 중화동무, 우리는 강연회는 그만두고 여기서 잠간이라도 저 고만녀아주머니의 일을 거들어주지 않겠습니까. 남편은 여태까지 못된 놈들에게 롱락당하다가 겨우 눈을 뜬것 같은데 저 아주머니한테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저 정상을 보니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같이 다문 얼마라도 힘을 보태줍시다. 그리고 나에겐 로동자들속에 들어갈 기회도 쉽지 않은데 이왕이면 여기 로동자들과 일도 함께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싶구만.》

《아니, 그건 안됩니다. 말이 공사장이지만 국경지역이라 놈들의 경계가 다른곳보다 더 심합니다. 그러다 혹시?》

심각한 표정을 짓고 말하는 오중화를 정깊은 눈빛으로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였다.

《위험을 생각했다면 내가 어찌 조국으로 올수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안됩니다.》

오중화형제와 최춘국은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동무들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일없습니다. 위험을 피하고 혁명을 못합니다. 우리 저 아주머니도 도와주고 로동계급의 숨결도 느껴봅시다.》

자갈상자 저쪽에서 토스레를 걸친 어깨가 물결치기 시작했다.

춘국이는 벌떡 일어났다.

《에- 참, 내가 멍텅구리지. 내 이제 그 서사놈에게 가서 만보를 타오겠습니다.》

춘국이는 자갈밭을 걷어차며 달려갔다.

중화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깊이 떨구고 생각에 잠겨버렸다. 몸부림치고싶도록 가슴을 답답하게 해주던 계급이며 폭동이며 종파며 단결이며 결렬이며 하는 어마어마하면서도 흐리멍텅하던 개념들이 차츰 륜곽을 선명하게 드러내는것 같았다. 최창익이와 머슴 하연성이가 같은 혁명을 하면서 인정을 베풀고 어쩌고하던 아리숭한 관계며, 단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들겨부시고 싹 손을 끊어버려야 한다는따위 칼날같은 말과 어딘가 겉멋만 느껴지고 진실이 가슴을 울려주지 않던 그 화려한 연설들의 진실을 엿본듯 하였다.

오중화는 석현에서부터 김성주동지를 모시고 오는 사이 조선인민의 힘을 믿고 그 힘에 의거해서 조선혁명을 수행한다는 카륜회의정신과 방침을 여러번 들었다. 그는 그이의 소탈하신 인품에 끌리여 그 말씀에 열중해서 귀를 기울였으나 여태까지 너무나 많은 잡탕 《로선》의 탁류속을 헤쳐 겨우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수 있는 기슭에 이르다보니 모든 새것앞에 조심스럽게 대하였다. 그러나 좁게밖에 열려져있지 않던 그의 가슴은 고만녀를 다문 얼마라도 도와주자는 그이의 뜨거운 말씀 한마디에 활짝 열려버렸다. 그는 명주촌 고만녀네 오두막앞에서 느끼던 그 의문의 대답을 들은듯 하였고 말로는 인차 새겨지지 않던 카륜회의방침도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리해한것도 같았다. 말을 다사하게 할줄 모르는 중화는 흥분하여 성급히 일어나서 고만녀가 쓰던 쇠소쿠리에 무덕무덕 자갈을 퍼담았다. 중성이는 춘국이가 사라진쪽을 지켜보더니 기다릴수 없다는듯이 달려갔다.

김성주동지께서도 일어서시였다. 그이께서 중화의 삽을 빼앗아 쥐시자 고만녀가 황급히 아이를 눕혀놓고 일어섰다.

《제발 그만두옵소. 석현아주바에, 제발 말려주옵소. 귀한 혁명자선생님께 이런 페를 끼쳐서 내 어찌 살겠슴둥. 제발 이러지 말아주옵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삽자루에 매달리는 고만녀를 측은히 바라보며 웃으시였다.

《아주머니, 내 아주머니의 일을 좀 도와드리고 후날 신세갚음을 받으러 갈지 알겠습니까. 이제 애기아버지도 꼭 돌아올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좋은 땅입니까. 혁명을 해도 이 고장에 와서 친한 사람들속에서 해야지 왜 다른데 가서 하겠습니까. 아주머니도 이다음에 남편이 오거든 이런 말을 해서 꼭 붙잡으십시오.

그런데 아주머니 이름을 보니 댁에 아마 형제가 많은 모양인데 다들 어디 갔습니까?》

고만녀는 죄지은 사람처럼 그이께서 푹- 푹- 삽날을 박으시는 자갈밭을 내다보며 어깨를 떨뿐 말을 못했다.

《이름은 고만녀라고 달았지만 형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중화가 와락와락 자갈을 추다가 대신 대답했다.

《다들 어디 갔습니까?》

《모두 죽었소꼬마. 그래서 아들을 하나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어머니가 외웠지만 내 이름이 고만녀라 못 가지고말았소꼬마.》

김성주동지께서는 외로운 녀인의 모습을 다시한번 쳐다보시고나서 삽날을 힘껏 박으시였다.

이날 장정 넷이 격정을 안고 무섭게 일을 다궂다보니 반나절에 번 전표가 고만녀 혼자서 반달을 번것보다 더 많았다. 고만녀는 헝겊으로 칭칭 감은 상처투성이 손바닥을 벌리지도 못하고 억지로 쥐여주는 전표를 받으며 흐느껴울었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공사장의 먼지를 휩쓸어가는 저녁으스름속에 아이를 둘쳐업고선 고만녀는 고개를 외로 꼬고 입안에서 무엇인가 중얼거렸다. 이다음에 정말 남편을 만나게 되면 이 이야기를 꼭 하겠다는 말만은 가까스로 가려들었으나 그밖의 말들은 알아들을수 없었다.

《자, 됐소, 됐소. 인사나 드리고 가기요.》

춘국이가 넉두리조로 변하는 녀인의 말을 듣기가 안타까왔던지 이렇게 말하며 달구지를 내끌었다. 고만녀는 머리를 깊숙이 숙이고 역시 입안의 소리로 작별인사를 했다.

《와- 와- 이놈의 소! 자, 아주마이, 탑소.》

춘국이가 권했으나 고만녀는 못들은척 점점 사나와지는 바람속을 엇비듬히 모로 서서 걸어갔다.

춘국이는 이밤으로 여러 동네에 널려있는 동무들에게 련락을 취하겠다고 고만녀와 함께 떠났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낮에 일하면서 사귀신 철도공사장 로동자들과 함께 그들이 숙식하는 함바로 가시였다. 처음엔 어디에서 학비나 보태러 온 글샌님인줄 알았던 김성주동지가 일도 무섭게 하시고 말씀도 생활적으로 구수하게 하시면서 로동계급의 가슴속에 맺혀있는 많은 설음들을 다 헤아려주시자 로동자들은 하나둘 그이의 주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이께서는 그날 밤늦도록 함바에서 로동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로동자들이 먹는 험한 함바밥도 잡수어보시고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신심도 안겨주시면서 많은 시간을 바치신 김성주동지께서는 밤이 이슥해서야 중화의 안내를 받아 그의 동생이 산다는 니마토본부락으로 향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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