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 회)

제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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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쓸쓸한 마음을 안고 말을 달리는데 마을복판으로 나있는 큰길로 사람들이 허둥지둥 뛰여다니고있었다.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더니 누군가가 급병을 만나 죽어간다는것이였다.

고삐를 끄당겨 말을 멈춰세운 설경성이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 마을에 급한 병자가 있는가본데 그냥 지나쳐갈수가 없다.》

말에서 뛰여내린 설경성은 말고삐를 왕택소에게 들려주었다.

《정오가 되여오는데 이 마을에서 묵어가세. 자넨 먼저 촌장네 집을 찾아가 그곳에 거처를 잡게.》

설경성이 제자들을 뒤에 달고 병자가 있다는 집을 찾아가니 그가 의원이라는것을 안 집주인들이 두팔을 잡아끌었다.

안방에서 남산만 하게 불어난 배를 그러안은 녀인이 끙끙 앓음소리를 내고있었다.

로파가 설경성에게 우는소리를 하였다.

《래달이 막달이온데 갑자기 배가 아파 죽겠다질 않소.》

병자의 거동이며 안색에 이어 맥을 본 설경성은 긴숨을 들이켰다.

이거야말로 죽을수가 겹친게 아닌가.

급작스레 용을 쓰는 내옹(급성충수염)에 걸린 녀인의 배속에서 아기까지 거꾸로 자리를 잡고있었다.

이 경우 자칫하다가는 두 생명을 잃을수 있었다. 출로는 임신부부터 구원해야 할것이였다.

설경성은 제자들에게 행장에 꾸려넣은 약을 가져오게 하고 로파에게는 마늘을 청했다.

이윽고 설경성은 임신부가 제일 아파하는 오른쪽배의 압통점에 손바닥만 한 명주천을 놓고 거기에 망초를 섞어 짓이긴 마늘을 손가락두께로 폈다.

그다음 그우에 기름종이를 덮은 설경성이 별꽃과 현호색으로 지은 약을 로파에게 내주었다.

《이 약을 하루 한줌씩 달여가지고 세번에 나누어 먹이되 열흘간 써야 하오. 점심이 지나 다시 오겠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오.》

촌장네 집에 가서 점심을 치른 설경성은 대황가루를 초로 반죽해가지고 병자를 찾아왔다.

그것으로 마늘과 갈아붙인 설경성이 남은 약을 로파에게 주며 일렀다.

《자정무렵에 나머지 약으로 한번 더 갈아붙이오. 래일 아침 다시 오겠소.》

이튿날 설경성은 반갑게 맞아주는 주인들을 보고 예견했던바 그대로 병자가 호전되였다는것을 알았다.

과연 안방문이 열리더니 혈색을 되찾은 병자가 절을 하는것이였다.

방에 들어선 설경성이 로파에게 당부했다.

《아직은 마음을 놓아선 안되오. 먹는 약은 그냥 먹이면서 오늘도 배에다 약을 붙여야 하오.

올해부터는 여름에 민들레와 쇠비름을 뜯어 말려두었다가 이렇게 배를 아파할 때면 하루 서너줌씩 열흘간 달여먹이면 아무 일도 없게 되오.》

병자를 모로 눕게 한 설경성은 그의 남편을 불러들였다.

《이 사람, 내가 하는것을 잘 봐두게.》

설경성은 먼저 병자의 허리를 주무르면서 뜬뜬하게 느껴지는 허리부위를 그것이 풀릴 때까지 계속 주물렀다.

이어 병자를 반듯하게 눕히고 그가 두다리를 동시에 모아세웠다 폈다 하도록 하였다. 했더니 한쪽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것이 알렸다.

그 다리의 넙적다리바깥부위를 만져보니 뜬뜬한것이 있었다.

그 다리의 발목을 움켜잡은 설경성이 병자에게 일렀다.

《발에 힘을 주지 마오.》

그 순간 발목을 안쪽으로 비틀면서 잡아당겼다.

이렇게 하기를 몇번, 그다음 설경성은 새끼발가락의 지음혈과 발목우의 삼음교혈에 뜸을 떴다.

병자의 남편을 대문밖으로 데리고나간 설경성이 그를 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자네 색시의 배안에 있는 아이가 거꾸로 놓여있네. 이걸 바로잡지 않으면 큰일나지.

하지만 이젠 마음을 놓아도 돼. 내가 한것처럼 몸을 푸는 날까지 허리를 주물러주고 다리도 잡아당겨주고 뜸도 떠주면 순산하게 되네. 몸을 풀것 같으면 붉은 생팥을 열알정도 물로 삼키도록 하게. 그러면 진통이 잘 와서 아이를 쉽게 날수가 있네.》

코가 땅에 닿아라 절을 하는 그를 남겨두고 촌장의 집으로 돌아오니 안주인이 부엌에서 김이 무럭무럭 괴여오르는 콩깍지가 가득한 목함지를 안고나오는것이였다.

설경성은 무심히 물었다.

《말을 먹이자고 그러오이까?》

안주인이 성난 어조로 대꾸했다.

《말이라니요? 장을 담그자고 그러웨다.》

삶은 콩깍지를 밖에다 내다버리는 안주인을 바라보는 설경성에게는 그의 말이 리해되지 않았다.

머리털이 돋아 콩깍지로 장을 담근다는 말은 듣느니 처음이였다.

공연히 의원에게 성을 냈다는 후회로 안주인이 나직이 말했다.

《의원님, 부엌으로 좀 오시오이다.》

설경성을 부엌으로 이끈 안주인이 가마를 가리켰다.

가마에는 밤빛갈의 물이 절반가량 차있었다.

《이게 콩깍지를 달인 물이오이다.》

설경성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신장을 보하는데 콩깍지를 달인 물이 아주 좋다지만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달여놓고 어쩌자는것일가?…

《여기다 소금을 치면 간장이 되오이다.》

안주인의 말이 설경성에게는 좀처럼 리해되지 않았다.

《간장이야 콩으로 쑨 메주로 담그는것인데 이걸 어떻게 간장이라고 할수 있소?》

《메주를 쓸 콩이 없으니 할수 있소이까? 이런 장이 요즘 우리네 백성들이 먹는 간장이오이다.》

설경성이 의문이 가득한 눈길로 안주인을 바라보았다.

《메주를 쓸 콩이 없다는건 도대체 무슨 소리요? 그것도 촌장네 집에? …》

금시 두눈에 눈물이 가랑가랑해진 안주인이 울먹이며 말했다.

《우린 그래도 촌장덕에 죽물이나마…

다른 집들에서는 송기를 벗겨먹소이다. 원나라군사들이 집집을 뒤지며 저희가 지켜주는 대가라며 쌀이면 쌀, 짐승이면 짐승 눈에 뜨이는건 모조리 앗아가니 메주를 쓸 콩이 남아있을리 있나요.》

그 말에 설경성이 고개를 떨구었다.

아, 내 너무도 이 고장의 백성살이를 모르고있었구나.

설경성을 지켜보던 촌장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의원님, 무식한 촌아낙네의 말에 마음쓰지 마소이다. 우리가 제 고향을 지켜내지 못했으니 이런 고생을 해도 싸지요.》

촌장의 길쑴한 얼굴을 건네다보며 설경성은 긴 한숨을 내그었다.

《사실 난 원나라것들이 이렇게까지 못되게 구는지는 몰랐소. 진작 알았더라면…》

진작 알았더라면 후비라이앞에서 가만있지 않았을것이였다.

왕택소를 부른 설경성이 성이 나서 말했다.

《알고보니 원나라군사들이 우리 고려사람들의 등가죽을 벗기고있네. 관가를 찾아가 바로잡지 않으면 떼죽음이 날것 같네. 나와 함께 관가에 가세.》

기분이 상한 설경성이 말을 때려몰았다.

마침 의주관가에 원나라조정에서 보낸 고을원이 너렁청한 방에서 술추렴을 하고있었다.

원나라장수차림의 왕택소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관가것들이 후닥닥 놀라 일어섰다.

왕택소가 설경성을 가리켰다.

《이 어른은 황제페하의 딱친구인 천하명의이시다. 이 어른의 령에 불복한다면 그대들의 목이 어깨우에 붙어있지 못한다는것을 명심하라.》

설경성이 몽골말로 물었다.

《누가 고을원인가?》

큰키에 광대뼈가 쑥 삐여져나온자가 허리를 굽신거리며 대꾸했다.

《소인인줄 아오이다.》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네가 받아써야겠다.》

고을원이 헤덤벼치며 붓을 찾아들었다.

《받아써라. <페하께 알리나이다. 의주고을에 들어서니 백성들이 당장 끓여먹을 쌀이 없어 나무껍질로 끼식을 에우니 그 광경을 어찌 눈뜨고 볼수 있겠소이까. 그게 다 관가에서 원나라군사들을 풀어놓아 집집들을 털어냈기때문이라고 하오니 페하께서 하사하신 재물을 백성구제에 쓰도록 하여주신다면 더 바랄것 없는줄 아오이다.>》

설경성은 정신없이 받아쓰는 고을원에게 일렀다.

《그아래에 고려사람 설경성이라는 이름을 써넣고 정월 아무 날이라는것을 쓰게. 다 썼으면 인즙을 내놓게.》

고을원이 내놓은 인즙에 엄지손가락을 묻힌 설경성은 글을 쓴 종이에 손도장을 꾹 눌렀다.

그리고 고을원에게 엄한 어조로 령을 내렸다.

《지금당장 날랜 말에 관속을 태워서 이 글월을 동경으로 가져가 거기에 나와있는 황녀에게 드려라. 이 글월이 제때에 가닿지 못하거나 또한 이제부터 그가 누구이든 고려사람들을 학대한다면 목숨을 보존하지 못하리라는것을 명심하라.》

겁에 질린 고을원에게 왕택소가 을러멨다.

《알아들었는가?》

그의 호통에 고을원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설경성은 여러날동안 마을사람들의 병을 보아주고서야 또다시 길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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