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 회)

제 4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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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성주동지께서는 긴장을 풀고 시무룩이 웃으시였다. 이쪽 처녀들은 아마 문상우의 두 딸인듯 하다. 이웃에 있는 젊은 아낙네와 처녀들이 부모, 남편들이 든든히 쳐놓은 봉건의 울타리를 용감하게 부시고 넓은 세상에 뛰여나와서 저렇게 마음껏 웃고있다. 저걸 문상우나 곽상하 같은 령감들이 봤다면 기절초풍을 안할것인가.

저 《불효막심한》 녀성들을 혼을 좀 내주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어험 하고 헛기침을 깇으시였다.

땅바닥에 풀썩 무너져앉는 소리가 난다. 가슴이 덜컥해지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서둘러 걸음을 옮겨놓으시며 《거 누구요?》 하고 소리치셨다.

그제야 캄캄하던 땅속에서 《어마나.》 하는 비명과 함께 두 그림자가 엎어지며 자빠지며 달아나고 한 그림자만이 이쪽으로 마주 달려왔다.

《선생님!》

댓걸음 앞에 와서 두손으로 치마를 휩싸고 절을 하는것은 금실이였다. 머리를 쪽졌으나 고유수시절의 모양 그대로 인사를 하는것을 보시니 웬일인지 가슴이 무둑해지시였다.

《금실동무가 어떻게 된 일이요? 이 밤중에…》

김성주동지께서는 저쪽으로 달아나 숨어버린 처녀들쪽을 살피며 물으시였다.

《땔나무를 하러 왔댔습니다.》

금실이는 또박또박 대답한다. 삼광학교 야학방에서 질문에 대답하는 모양같다. 고유수에서 시집으로 떠나올 때 헤여진이래 이렇게 마주서보기는 처음이였다. 그것이 금실이뿐아니라 곽만득에게도 섭섭해서 몇번이고 집으로 청했으나 그이께서는 가실 짬이 없으시였다.

《땔나무를 이 밤중에 한단 말이요?》

김성주동지께서는 그 언저리에 무둑무둑 무져놓은 나무단들을 돌아보며 다시 물으시였다.

《나무는 낮에 리종락선생이랑 주인이 와서 해놓고 갔습니다. 리종락선생은 갑자기 회의가 있고 집주인은 또 야학에 간다고…》

《아니, 곽만득동무가 야학에 나가오?》

이것은 놀라운 소식이였다. 곽만득은 본인자신은 청년동맹에도 나오고싶고 야학에서 공부도 하고싶었지만 아버지의 단속이 너무 심해서 움쩍을 못한다는 보고를 들었었는데 야학에 나간다니 몹시 놀라시였다.

《오늘 리종락선생이 아버지 몰래라도 기어코 나가야 한다고 다짐을 받아냈습니다. 저도 떠밀어보내고… 그래서 우리가 대신 나무를 지러 왔습니다.》

《리종락동무가 나무를 하러 나왔댔단 말이요? 그런데 저 동무들은 웬 동무들이요? 문상우로인네 딸들이 아니요?》

《그렇습니다. 얘들아, 이리 나오너라. 김성주선생님 앞인데 일있니.》

금실이는 나무단뒤에 숨어있는 처녀들을 손짓해 부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이 나무도 리종락선생이 저 애들의 집에 해다주려고 집주인이랑 데리고 나와서 한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래일 새벽에 또 김성주선생님께서 나무를 하시게 될거라고…》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는군. 그래서 금실동무도 나오고 저 동무들도 다 왔구만. 아버지들이 아시면 뭐라고들 하시겠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아무리 불러도 일어날 차비를 하지 않는 나무단뒤에 있는 처녀들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시였다.

《동무들의 얼굴을 여기서 처음 보누만. 그런데 뭐 보여야지. 어느쪽이 언니요?》

김성주동지께서 웃음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자 까투리처럼 나무단에 머리를 쓸어박고있던 두 처녀가 비실비실 옆으로 돌아서며 일어났다.

《이쪽이 언닙니다. 복실아, 너 야학에도 나가겠다는게 왜 그 모양이냐? 인사를 드려야지.》

금실이가 맵짜게 꾸짖었다. 금실이로 말하면 고유수에서는 입이 무겁고 어리무던한 처녀였지만 여기서는 벌써 한시대나 앞선 아낙네가 되였다.

복실이라는 언니가 굽석 절을 하니 동생 옥실이도 덩달아 굽석한다. 다 큰 처녀들인데 절하는 모양은 삼성학교 아이들 같다.

《복실이, 옥실이… 하하하, 그러니 금실동무까지 합쳐 진짜 삼형제 같구만. 내가 동무네 집에서 신세를 지면서도 이렇게 면대해보기는 처음인데 내가 와서 불편하지 않소?》

김성주동지께서는 막대기처럼 굳어진 처녀들의 마음을 풀어주실양으로 이렇게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처녀들은 고개를 숙이고 치마자락만 주무를뿐 대답을 못한다.

《막 좋답니다. 선생님께서 아버지를 타이르시는 말씀을 다 엿듣고 고소해서 혼이 났답니다.》

금실이가 이렇게 말씀드리자 옥실이가 팔굽질을 하였다.

《하하하, 아버지가 얻어맞는데 고소해하면 됩니까? 나는 사실 동무들과 함께 아버지의 아들노릇을 하기 위해 동무들의 집에 간것입니다. 아버지가 동무들을 초롱에 넣은 새처럼 만든것도 캐고보면 동무들을 사랑하기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니 아버지의 사상은 고쳐주더라도 아버지를 잘 위해드려야 합니다.》

《아버지는…》

옥실이가 참을수 없어 뭐라고 말하려는데 이번에는 복실이가 팔굽으로 옆구리를 내질렀다.

《아야!》

옥실이는 기겁을 해서 웅크리더니 언니를 향해 숨을 씩씩거리며 입안의 소리로 종알거렸다.

《물귀신같은게… 저는 뭐…》

《자, 됐습니다. 그래 동무들은 혁명군이 오니 어떻습니까? 동무들은 혁명군동무들을 보았습니까?》

《보았습니다. 연설도 듣고… 저, 선생님께서…》

옥실이가 제깍 고개를 들고 이렇게 말씀드리자 복실이가 또 옆구리를 지르려 하였다. 그러는것을 금실이가 슬그머니 가운데 끼여들어 막아버렸다. 가만 보니 옥실이는 나이도 어리거니와 성격이 제 언니보다 활달한 편이였다.

《내가 연설하는것도 들었습니까?》

《예, 이렇게… 연탁을 땅!》

옥실이는 주먹으로 연탁을 땅 치는 흉내를 내면서 갑자기 목소리를 석쉼하게 만들어가지고 연설조로 말했다.

《강도 일제가 사랑하는 고향산천을 빼앗고 우리 부모형제들을 마음대로 죽이는데 피끓는 조선청년들이 어찌… 호호호.》

옥실이는 별안간 배를 그러안고 깔깔거리며 금실이의 뒤에 가 숨어버린다. 복실이도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으려다가 아무래도 참아내지 못하겠는지 어깨를 물결치며 돌아섰다. 신중한 성미인 금실이조차 입을 싸쥐고 웃었다.

《하하하.》

김성주동지께서는 통쾌하게 웃으시였다. 자신의 몸짓과 목소리를 이처럼 방불하게 들어보기는 난생처음이시였다. 목소리의 억양, 발을 옮겨짚는 동작,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고개짓- 모두가 얼마나 신통한지 어둠속에 있는것이 무명통치마에 토스레적삼을 입은 처녀가 아니라 거울속에 있는 자신을 보는것 같으시였다.

《하하하, 과연 그럴듯하오, 과연 그럴듯해. 그래 대체 그런것을 어디서 봤소?》

옥실이는 아직 금실이뒤에 숨어 말을 못하고 금실이가 옥실이를 앞으로 끌어내자고 하면서 대신 말씀드렸다.

《이 애들은 밤이면 안 다니는데가 없어요. 야학방에 가서 침을 발라 문구멍을 뚫고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삼성학교 담장에 올라서서 교실안을 넘겨다보기도 하고… 그런데 이 앤 원래 그렇게 흉내를 잘 낸답니다. 무엇이든지 한번 척 보기만 하면 그대로 한답니다. 변대우선생의 흉내를 얼마나 잘 내는지 전날 밤 우리 집 안방에서 옥실이가 호령하는 소리를 듣고 저의 시아버지가 놀라서… 호호호.》

마침내 금실이도 웃음을 참을수가 없어 말끝을 얼버무리고말았다.

《그래 지금도 아버지는 동무들이 집에 얌전히 앉아있는줄 알겠구만?》

김성주동지께서 정색해서 물으시니 복실이가 비로소 쭈밋거리며 입을 벌렸다.

《예, 혹시 찾으면 형님이 저 금실이언니네 집에 갔다고 대답하게 돼있습니다.》

《허허허, 단단히 짰구만. 그런줄도 모르고 아버지는 빈그물을 치고있구만, 고기들은 다 날쌔게 새여나갔는데.…》

김성주동지께서는 웃으시였다. 아무리 억눌려도 용솟음치는 생명의 힘을 막을수는 없다. 그러나저러나 이 옥실이라는 처녀는 표현력이 대단하다. 배우 찜쪄먹겠다. 게다가 목소리는 얼마나 좋은가.

《이 애들은 야학에 나가고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가요?》

금실이가 정말 언니처럼 근심스럽게 말했다.

《금실동무는 어떻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짐짓 물으시였다.

《저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인도 몰래 다니는 형편이니 아버님 승인이 있을 때까지 기다릴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애들은 다르지 않아요, 처녀들이구. 그러지 않아도 밤마다 다니다싶이 하는데…》

《알겠소. 내 우리 동무들과 토론해보겠소. 사실 좋자면 옥실동무랑은 학교에 다녀도 좋겠는데…》

《학교에도 다닐수 있습니다.》

금실이가 한걸음 나섰다.

대단히 적극적이다. 남의 문제를 이처럼 도와주자고 애쓰는것을 보면 역시 고유수에서 훈련받은 녀자가 다르기는 다르다.

《그래도 커다란 처녀가 쬐꼬만 애들과 함께 다니는게 좀 창피하지 않을가?》

《창피는 무슨… 난 공부만 시켜준다면 아무래도 일없어요.》

옥실이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칠가봐 서둘러 나섰다.

《이 애들은 웬만한 글은 다 읽습니다. 산술이 좀 서툴지 국문공부는 동냥글로 3학년까지는 다 읽었어요.》

《그렇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새삼스럽게 처녀들의 얼굴을 다시 뜯어보시였다.

무엇인가 밝은 전망이 터오는것 같으면서 즐거운 생각이 밀려왔다. 우리의 생활은 어둡고 침침하기만 한것이 아니다. 빈궁과 몽매의 저 밑창에서부터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뻗어오르려는 억센 생명의 지향이 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금실이와 복실이네 형제를 먼저 돌려보내시고나서 밤이 지새도록 료하기슭의 땅버들밭을 거니시였다.

 

꽃사시오 꽃사시오

어여쁜 빨간 꽃

 

꽃분이가 부르는 이러한 노래의 구절이 떠오르는가 하면 꽃분이의 역으로 분장한 옥실이가 꽃바구니를 끼고 무대로 나오는 모습도 얼른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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