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2 장

1

(1)

 

반안왕부를 나서는 길로 임아를 찾아가 흑수말갈에 묻어둔 간자들을 넘겨준 장문휴는 즉시 안원부도독으로서의 맡은 소임을 실행하는 일에 달라붙었다.

먼저 자기에게 배속된 원정군의 전군과 후군을 안원부의 군진으로 신속히 기동하라는 공문서를 파발군에게 주어 불녈로 떠나보내였다.

이어 안원부의 소재지인 료동성의 도독영에도 신관도독이 곧 내려가니 모든 일을 오로지 국법대로만 실행하라는 공문서를 띄웠다.

이튿날 아침, 장문휴는 호력이와 호위군사들을 거느리고 동모산을 나섰다.

장문휴가 백성차림을 하고나선 바람에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그의 행차가 이름만 들어도 어려워하는 도독의 행차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원래 장문휴는 자신이 직접 대군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부임행차를 하려 했다.

황상의 어명을 받은 발해군 장수 장문휴가 대군을 거느리고 안원부의 도독으로 부임했다는 소문을 크게 낸다면 그 소문이 곧 날개를 펴고 당나라에도 알려질것이였다.

그러면 당나라임금이 발해군이 곧 쳐들어오는줄로 알고 기겁할것이고 간담이 서늘해서 감히 싸우자고 덤벼들지 못할것이 아닌가.

이렇게도 생각은 했었지만 아직은 흑수원정군에서 일부 병력을 떼내여 서부변방을 증원하고있다는것을 적들이 알지 못하도록 숨겨야 한다는 조정의 의도도 그렇고 또 민심을 알려거든 아래형편을 제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반안왕의 조언도 따르고싶어 백성차림을 하고 나선것이였다.

부임지까지의 천리길만 잠행해도 정사에 도움이 될수 있는 많은것을 보고 느낄수 있을것이였다.

그리고 장문휴가 소리없이 움직여도 그 움직임을 당나라에 알려주던 소식통이 곁에 있으니 그 입이 함부로 놀릴수 없도록 틈을 주지 않으면 한동안은 우리 군사의 형편을 숨길수 있을것이였다.

모두가 말을 탄 장문휴의 일행에 낯선 젊은이도 있었다.

한어를 모국어처럼 하는 풍걸이라는 총각인데 장문휴가 직접 당나라에 박아둘 간자로 쓰라고 반안왕이 붙여준 사람이였다.

코흘리개때부터 당나라에 드나드는 장사군을 따라다니며 심부름을 해온 덕에 풍걸이는 그곳의 풍습에도 환하다고 했다.

일행의 선두에서 말을 달리는 장문휴의 마음은 안원부에 가있었다.

눈에는 익었어도 손에는 설다고 난생처음 백성까지 다스려야 하는데야 그럴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인츰 백성들의 호감을 살수 있을가?!… 이런 일에 생둥이일지라도 국법을 자막대기로 삼아 맞다들리는 모든 일을 결단코 다스린다면 구관만 못하다 하겠는가.

이제 좀 있으면 가을이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관가들에서는 한해껏 뼈빠지게 일해온 농사군들의 가슴을 허비게 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조세를 빨아들이는 일이다. 관가것들이란 하나라도 더 많이 빼앗아들여 제 배를 불리자고 하니…

국법대로만 조세를 받아들인다면 백성들의 원성이 아니라 환호를 받을것이다.

장문휴는 오로지 국법대로만 조세를 받아들이리라 마음먹었다.

눈길을 들어 새털구름이 떠있는 하늘을 쳐다보던 장문휴의 생각은 어느덧 나라방비에로 이어졌다.

그는 커다란 지도를 펼쳐놓고 사색을 이어가는 심정이였다.

그러니 지나치는 길가의 풍경이 보일리 없었다.

안원부는 서쪽으로 바다(발해)를 끼고 북으로는 부여부, 동쪽은 장령부, 남으로는 고려후국과 접해있었다.

여기서 고려후국은 압록강을 중심으로 사방 수백리의 넓은 령역을 차지한 발해의 제후국이였다.

발해의 전신인 진국이 일떠설 때 압록강일대의 고구려유민들도 당나라침략군을 쳐몰아내고 나라를 세웠다.

남쪽에서 왕성강(대동강)을 지경으로 신라와 대치한 이 나라는 보다 넓은 고구려의 강토우에서 조상의 땅을 전부 되찾으려 하는 발해가 일떠서자 그를 섬기는 제후국이 되였다.

고려후국에는 왕도 있고 그를 받드는 조정도 있어 나라의 체모를 그대로 갖추고있었다.

장문휴가 그려보고있는 안원부의 지도에서 두드러지게 그의 마음을 끄는것은 수백리에 달하는 바다가와 역시 수백리에 달하는 장성이였다.

료수의 서켠에 있는 장성은 이웃의 부여부로 이어졌다는데 그 연장길이는 무려 천리로서 고구려때 선조들이 쌓은 성이다.

장성과 바다의 방비를 잘하는것, 바로 이것이 안원부도독이 백성을 다스리면서 해야 하는 일이다.

하다면 우리의 흑수원정을 기화로 정말 당나라가 싸움을 걸어올가?!… 그것들이 정말로 싸움을 걸어온다면 어데로 쳐들어올가?…

틀림없이 수륙병진을 꾀할것이다.

당나라군이 발해로 쳐들어오는 경우 크게 두 길이 있다.

당나라의 등주(중국 산동성 연대시일대에 있었던 당나라의 고을)에서 배길로 돛을 달면 하루도 못미처 안원부의 바다가에 닿을수 있고 륙로로는 지금 거란이 차지한 료서의 수백리길을 빌리면 하루이틀안에 천리장성을 기습할수 있을것이다.

그렇다면 거란이 당나라에게 발해로 가는 길을 빌려줄수 있을가?…

거란에게 있어서 당나라는 자나깨나 절치부심하는 불구대천의 원쑤였다.

그것은 당나라가 예로부터 거란족이 살던 만리장성북쪽의 강토를 빼앗았기때문이였다.

하여 고구려의 강토였던 료서일대로 쫓겨난 거란은 저희들의 옛땅을 되찾으려고 애를 쓰고있었다.

허나 힘이 따라서지 못하는 그들은 당나라가 총력을 들이대는 날에는 무너질수밖에 없었다.

이런 형편에서 거란이 당나라의 공세에 겁을 먹고 항복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수는 없었다. 바로 이 점을 우려하는 장문휴였다.

그런즉 시급하게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장성의 군진들과 바다가의 요해처들에 경군을 들이미는 동시에 병선들을 모두 바다에 띄워놓고 엄중경계진을 펴야 할것이다.

그다음 성들을 고쳐쌓아야 할것은 고쳐쌓고 병선도 더 많이 무어내여 앞으로 있을수 있는 전란에 용의주도하게 대처하는것이다.

그러면 당나라를 원쑤로 여기는 거란이 우리에게 더욱 의지하려들것이니 어찌 그것들에게 길을 빌려주려 하겠는가.

장문휴의 이런 생각을 알리없는 호력이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도독어른, 저기 하늘에서 매가 우리를 따르고있소이다.》

호력이의 열기띤 웨침소리에 생각에서 깨여난 장문휴가 눈길을 들었다.

정말 한쌍의 매가 머리우에서 날고있었다.…

며칠째 장문휴의 일행은 료동성을 향해 말을 달리고있었다.

그사이 수백리길을 축낸 그들은 장령부를 지나 마침내 안원부의 지경에 들어섰다.

오늘도 선두에서 말을 달리는 장문휴는 아직도 습관되지 않아 어색하기만 한 자신의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보라색의 관복대신에 평백성의 베옷이 걸쳐있고 높은 벼슬아치임을 알려주는 금어를 찼던 허리에는 허줄하기 짝이 없는 베띠가 둘러있다.

자신의 옷차림을 훑어보고난 장문휴는 벙글 웃었다.

며칠전까지만 하여도 길에 나서기만 하면 오고가던 행인들이 황급히 길가로 물러나서 절을 하군 하였다.

무엇때문에? 그것은 벼슬아치들의 관복이 무섭기때문이였다.

벼슬아치들치고 백성을 천하게 여기지 않는자 없고 그런데로부터 저에게 덮어놓고 순종하지 않으면 마치도 도적이라도 잡은듯 매를 드니 그것이 무서워 꿇어엎드리는것이 아닌가.

그러니 관복차림을 하고 백성들과 허물없이 사귄다는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였다.

막상 백성차림때문에 행인들이 절을 하기는커녕 길도 비켜주지 않으니 기분이 언짢아졌다.

허나 큰것을 이루자면 작은것을 잃는데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옛말을 생각하며 그를 이겨낸 장문휴였다.

점차로 잠행에 익숙되니 오히려 재미가 있었다.

해질녘에 길가의 마을에 들어가 아무 집이든 하루밤 묵어가자고 청하면 그 청을 기꺼이 받아주고 허물없이 마을의 형편도 들려주는데 모든것이 새롭게 여겨지고 어떤 이야기들은 옛말처럼 흥미진진하게 들리였다.

그래서 밤이 더 길지 못한것이 한스럽기까지 하였다.

오늘은 또 어떤것을 알게 되겠는지…

아침에 꾸려가지고 온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길을 달리던 장문휴는 서산마루로 해가 기울기 바쁘게 길가마을로 말머리를 돌리였다.

그의 일행은 군말없이 장문휴의 뒤를 따랐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0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