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3. 새 조선은 인재들을 부른다

교원위촉장

(3) 

 

학자들과 반가이 만나 감격적인 해후가 오간 후 광진이 해방이 된지도 벌써 한해가 되여오는데 그새 어떻게들 지냈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여기 소식은 후에 들을셈치고 어떻게 서울행을 다했는가 물음이 더 압도적이였다.

광진이 서울에 온 사연을 들은 모두가 아연해졌다.

《기왕 말이 난김에 나자신에 대해서도 말하겠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였던지 여러분들도 잘 아실겁니다. 해방전 공부깨나 했다고 친일파딱지도 쓸번했지요. 하지만 김일성장군님을 직접 만나뵈옵고 우리가 갈길을 찾았습니다. 진실을 알고 진리를 찾게 되였습니다. 그 진리에 의해 신념이 생겼고 튼튼히 굳어졌습니다. 그 말을 하자면 며칠을 두고 말해도 모자랄것입니다. 요는 여러분들도 장군님을 한번 만나뵈오라는것입니다. 그러면 다 알게 될것입니다.》

방안은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하나를 말하면 열, 스물을 헤아릴수 있는 그들이기에, 김광진의 인생로정이자 곧 자기들의 운명이고 행로로 될수 있다고 보아지기에 말 한마디, 세부 하나도 무심히 넘기지 못하였다.

들을수록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의 두리에 하나로 뭉쳐 새 조국건설의 길로 약진하는 북반부는 해방의 새 봄빛아래 만발하는 꽃동산이요, 외세의 오라를 진 남녘땅은 말그대로 조금 남은 민족의 얼마저 완전퇴색되여가는 음지, 파쟁군들의 란무장이였다.

광진의 말이 끝나자 모두는 후련히 웃었다. 그간 많이도 모여앉았던 그들이였다.

사실 까놓고보면 8. 15해방이 되여 어느덧 한해가 되여오는 지금까지 그들모두는 할일이 없었다. 그들을 찾는데도 없거니와 그들자신이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학술연구요 실험이요, 취재요 답사요 하는것은 전혀 불필요하게 되였고 그렇다고 해서 신바닥에 불이 일만치 드바삐 뛰는 정치인이나 운동자들의 본을 딸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지식인들인 그들은 정신생활의 공백을 채우는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모여서 론의하느라면 자연히 앞이 트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도 없지 않았던것이다. 그들의 화제가 결코 따분하지 않을뿐더러 몇달이 계속되여도 끝을 볼수 없을만치 지속성을 가진것은 그 무엇인가를 상대로 해서 규탄저주하는 반항의식이 깔려있었기때문이였다.

그것은 바로 남조선을 강점한 외세에 대한 비난과 저주였다.

신문이나 방송, 연설들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주장들은 외세를 비호하고 두둔하는것이였지만 그럴수록 이들은 자기가 목격하고 체험한 생동한 생활세부들과 그것을 종합추리하고 지식으로 얻어낸 견해를 가지고 그것을 완강하게 그리고 걸직하게 부정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러했던 그들이기에 한결같이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을 무한히 존경하고 흠모하고있었으며 그이의 현명한 령도아래 새 조국건설에서 북의 인민들이 이룩한 빛나는 성과들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동경하였다.

이렇게 되여 불과 며칠동안에 수많은 교원, 학자, 기술자들이 어려운 조건을 무릅쓰고 북에 가겠다고 용약 나섰다.

광진과 만난 박시형이 손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저는 력사학을 전공하는 박시형이올시다. 수고스럽게 오셨습니다. 신문에 난것을 보고 이미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김일성장군님의 존함으로 불리우는 대학의 선생을 이렇게 직접 대면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 서울에서는 대학교사에 외국군대가 들었는데 북에서는 없던 대학을 새로 내온다니 낮과 밤처럼 대조가 명백합니다.》

좌석은 정중하였다. 광진은 들고온 가방을 열고 눈부시게 휜 종이봉투를 꺼내였다. 그 봉투안에 그보다 작은 봉투가 또 들어있었다. 여러장의 봉투가운데서 이름을 골라잡은 김광진은 먼저 박시형앞으로 내밀었다.

박시형은 두손으로 정중히 받쳐 내든 봉투를 받아 속지를 꺼내들었다.

속지에는 활달한 필치로 평양에 창립되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원을 위촉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아… 김일성장군님께서 친히 서명하셨군요.》

봉투와 속지를 겹쳐든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그만 눈을 내리감으면서 위촉장을 가슴에다 꽉 눌러댔다.

《제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장군님께서 친히 불러주십니까. 장군님!》

감격에 목이 메여 끅끅 숨을 몰아쉬며 옆에서도 알아들을수 없는 혼자소리로 뭐라고 부르짖던 그는 위촉장을 두번세번 거듭 읽고나서 묵묵히 지켜보고있는 김광진을 와락 그러안으며 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면 장군님품에 빨리 안길수 있습니까?》

광진은 만족한 웃음과 함께 눈물이 글썽해서 대답하였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임무입니다.》

이렇게 광진은 위험한 고비를 여러번 넘기며 비밀리에 교원, 학자들을 만났으며 나중에는 홍명희, 허헌, 리극로 등 사회계에서 당당한 지위를 차지하고있는 사람들의 호응하에 《서울청년회관》에서 비공개적인 강연회까지 하였다.

당당히 강연장소에 나가 연단에 나선 그의 머리속에는 연설자의 흥분이나 궁냥이 아니라 수령님께서 자기들을 보내시며 하시던 그 말씀이 떠올랐고 눈앞에는 청중의 모습이 아니라 장군님 모습이 생동하게 떠올랐다. 더하지도 말고 덜지도 말고 그때 그 말씀을 그대로 재현해야 할것이였다.

원래 광진은 격조높은 웅변가가 아니라 담담하고 설득력있는 교수였다.

그러나 그날 그의 자세는 웅변가에 가까왔다.

그는 민족재생의 은인이신 민족의 위대한 영웅 김일성장군님께서 평양에 종합대학을 세우고 당신들을 부르신다,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고 민족의 장래운명을 걱정하는 당신들을, 살길이 막힌 당신들을 민족의 위대한 령수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평양으로 부르신다, 애국애족의 길을 걸으며 과학의 진리를 탐구하고 민족의 대들보를 키워낼 량심이 있는 지성인들을 평양으로 부르신다고 격조높이 웨쳤다.

김광진은 잠간 말을 중단하였다. 흥분이 앞서고 귀가 멍멍 울리였다. 자기가 말을 하고있는것이 아니라 장군님앞에서 자신이 듣고있는것 같은 착각마저 생길 정도였다. 이야기의 구절구절이 다듬어지고 론리에 빈틈이 없었다.

그는 그냥 한본새로 내리엮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보천보에서 해방의 서광을 알리는 총소리를 높이 울리시였을 때 그날의 신문을 돌려읽으며 하숙집 뒤골방에서 울며 웃으며 축하의 술잔을 높이 들었던 우리들이 아니요! 김일성장군님께서 호소하신 전민항쟁에 호응하여 떨쳐나섰다가 일제감옥에 끌려갔던 선생들이 아니요.

하늘이 내신 우리 민족의 영웅 김일성장군님께서 북조선에 개선하시여 우리가 일일천추로 고대하던 밝은 세상을 꾸려놓고 암흑천지에서 허덕이는 당신들을 부르셨소. 단떼의 신곡에서처럼 아비규환의 련옥지옥에서 허덕이는 당신들을 지상천국으로 꾸려지고있는 광명한 해빛이 비치는 북조선으로 부르셨소. 당신들 한사람한사람의 이름을 외우시며 당신들을 데려오라고, 살길이 막힌 그들에게 광명을 안겨주자고 하시면서 당신들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데려오라고 하셨소. 려비도 주시고 뒤에 떨어졌다가 올 가족들의 생활비까지 주시면서 말이요, 애국애족의 길을 걷기를 바라거든, 과학의 진리를 탐구하고싶거든, 민족의 대들보를 키워낼 지식인의 본분을 다할 량심이 있거든 주저말고 나와 함께 우리 민족의 구세주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평양으로 갑시다. 평양에 가서 장군님께서 세우신 장군님의 존함으로 빛나는 종합대학에서, 과학연구기관에서 민족의 만년대계를 경륜하는 인재양성에 한 어깨를 들이밀고 보람찬 삶을 누립시다.》

그러면서 광진은 《자! 보시오. 김일성장군님께서 선생들에게 보내주신 교원위촉장이요. 장군님께서 한사람한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며 몸소 인장을 찍으신 교원위촉장이요.》라고 하며 그들 매 사람에게 위촉장을 나누어주었다.

온 장내는 불도가니마냥 세차게 끓어번졌다. 모두가 기쁨의 환성을 올리고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김일성장군님의 품으로, 북으로 가겠다고 광진을 따라나섰다.

바로 이때였다.

《서울청년회관》에 권총을 품은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북에서 온 《빨갱이》가 《서울청년회관》에서 대낮에 공공연히 강연을 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된 서울경찰국은 억이 막혀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경찰들을 보냈던것이다.

그런데 체포조를 인솔하던 경찰이 강연을 하는 광진을 알아보고 입을 딱 벌렸다.

서울한복판에서 대낮에 공공연히 공산선전을 하는 그 《빨갱이》가 다름아닌 보성전문학교때 자기를 배워준 스승이 아닌가.

바로 10여년전에 보성전문학교에서 자기를 배워주던 김광진선생이 지금도 그때 그대로의 열정을 가지고 공산주의를 선전하고 이북을 찬양하고있는것이 아닌가.

그 경찰은 김광진이 해방전에 이미 평양으로 간것을 모르고 아직도 보성전문학교에서 교수로 있는줄 알고있었다.

《아, 선생님!》

(선생님이라니?!)

경찰서를 떠날 때 이북에서 어떤 고위인물이 나와서 반국가적연설을 하는데 그놈을 잡아없애라는 경찰서장의 명령을 받은 부하들은 아연해서 자기 조장의 얼굴을 바라볼뿐이였다.

(북에서 《스파이》가 왔다고 해서 왔는데 하마트면 덕을 악으로 갚을번 했구나.)

상급의 명령이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고 무조건 집행하는것을 의무로, 자랑으로 삼고있던 악질경찰이 된 그 학생출신의 경찰도 광진에게 감히 총부리를 내대지 못하고 발언중지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였으며 부하들을 이끌고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그리고 경찰서에 돌아와서는 북조선《스파이》가 아니라 보성전문학교 교수인 김광진선생인데 시국강연을 하고있었다. 요즘 서울 어디가나 그쯤한 강연은 부지기수이고 또 학자가 자기의 리념을 고창하는건데 어떻게 하겠는가, 그게 큰죄야 아니지 않는가고 하면서 오히려 김광진을 비호하였다.

그리고는 한수 더 떠서 도대체 누가 엉터리고소를 했는가고 불만을 표시했다.

내용을 잘 모르고있던 경찰서장은 믿어지지 않는지 따지고들었다.

《분명 북조선에서 밀파되여왔다고 했는데… 똑똑히 보았는가?》

《내가 왜 자기를 몇년씩이나 배워준 선생을 몰라보겠습니까. 더구나 과외체육까지 맡은 선생이여서 매일처럼 그 선생과 얼굴을 맞대고 살았는걸요.》

경찰서장은 기연가미연가 하면서도 경찰이 말한대로 밀파간첩이 아니라 보성전문학교 김광진교수의 강연이였다고 보고하였다.

그 보고가 한급 올라가고 또 한급우에 올라가자 나중에는 벼락추궁이 떨어졌다.

《김광진이 평양으로 갔고 지금은 평양에서 중요직책에 있다는것을 모르는가!》

귀가 멍멍하게 고아대는 상전의 기갈을 받고 경찰국에서 다시 그를 잡으러 왔을 때에는 이미 행차뒤 나발이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하여 김광진에 대한 체포령이 내리고 전보대, 게시판마다 《북의 밀파간첩》을 체포하라는 광고가 현상금이 얼마라는것까지 밝혀서 나붙었다.

《북한의 김광진 모종의 임무를 띠고 입경, 즉각 체포할것.》

하지만 그것은 위대한 태양의 빛발을 안고온 광진의 마음을 추호도 흔들수 없었다.

믿음은 죽음을 초월하는 억센것이다.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살벌한 환경속에서 이미 은신하고있던 집에서 나와 매일 거처지를 옮겨가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임무를 수행해나갔다.

물론 그동안 위험한 고비에 부닥칠 때도 있었고 적들에게 숙소를 습격당한 때도 있었지만 항상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당부를 명심하고 위험한 고비들을 무사히 넘길수 있었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1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