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 회)

제 4 장

3

 

호위군사들을 거느리고 안시성을 찾은 장문휴에게는 벌써 몇번씩이나 이곳을 다녀갔지만 여전히 새롭게 느껴지는것이 있었다.

이 고장에서 주산은 안시성이 의지하고있는 상룡산이라 할수 있었다.

광활한 료동벌의 한복판에 우뚝 치솟은 이 산은 마치도 젊은 룡이 솟구쳐오르고 봉황이 날아가는듯싶은 형국이라고 하여 상룡산이라는 이름이 붙은것이다.

수많은 봉우리들을 품고있는 상룡산에 의지해서 성벽을 이어나간 안시성은 서켠에만 개울물이 흐를수 있도록 조금 터져있다.

그 개울을 따라 안시성으로 드나드는 외통길이 나있다.

호기있게 말을 달려 성문앞에 이른 장문휴는 고삐를 끄당겨 말을 멈춰세우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보면 볼수록 안시성은 기기묘묘한 천험의 요새에 들어앉았다.

성벽은 깍아지른듯 한 벼랑우에 있는데 그 벼랑이 얼마나 아스라하게 높은지 구름우에서 내려다본다면 성의 모양이 하나의 거대한 독이라 할것 같았다.

성 한복판에는 봉우리마냥 커다란 바위언덕이 치솟아있어 그우에 웅장하고 멋스러운 장대가 터를 잡았다.

성밖으로 수십리를 내다보이는 저 장대우에서 안시성의 군민을 거느린 고구려 양만춘장군이 대군을 내모는 리세민을 만만한 배심으로 굽어보며 싸움을 이끌지 않았던가.

치면 칠수록 강해만지는 안시성앞에 악이 난 리세민은 성안의 모두를 생매장하겠다며 흙산을 쌓게 하였다.

외적이 성을 무너뜨리려 높다란 흙산을 쌓기 바쁘게 고구려의 군사들이 질풍같이 달려들어 차지해버리고 양만춘장군이 쏜 명화살에 한쪽눈을 잃은 리세민은 울분을 터뜨리며 쫓기워갔다.

이 얼마나 장한 우리의 선조들인가.

감개무량한 눈길로 장대를 바라보던 장문휴는 군사들에게 그것을 가리켜보이며 말했다.

《바로 저 장대우에서 고구려의 명장 양만춘이 리세민의 대군을 물리쳤다. 우린 자자손손 선조들의 업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윽고 하늘을 쳐다보니 해는 벌써 서산으로 퍼그나 기울어져있었다.

안시성의 군영에 거처를 잡은 장문휴는 날이 밝자 온태곤을 보내여 《안시별인》의 행처를 알아오게 하였다.

이번 시찰길에 《안시별인》을 만나보고싶은것은 그에게서 수전에 대한 조언을 듣고싶기때문이였다. 남달리 뛰여난 식견을 지닌 사람이면 수전에 대해서도 아는것이 있을것이였다.

곧 온태곤이 돌아와 하는 말이 그가 나들이를 떠난지 열흘째인데 래일은 꼭 돌아온다는것이였다.

《안시별인》에게는 남다른 절도가 있어 아무리 먼 고장을 찾아다녀도 식솔들과 약속한 날이면 어김없이 돌아왔다는것이다.

장문휴는 안시성을 보수하는 일도 의논하고 이곳 백성살이도 료해하면서 이틀을 보내였다.

이튿날 온태곤이만을 뒤에 단 장문휴는 백성차림으로 《안시별인》을 찾아나섰다.

어제 저녁 알아보았더니 과연 그가 집에 돌아왔던것이다.

《안시별인》의 집앞에 이르니 삽짝문을 내놓고 빙 돌아가며 세운 울타리에서 팔뚝같은 수세미오이가 주렁주렁한것이 눈길을 끌었다.

온태곤이 《주인어른 계시오이까?》 하고 소리쳐부르자 삽짝문이 열리고 계집애처럼 생긴 아이가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어데서 온 누구시나이까?》

온태곤이 장문휴를 가리켜보이며 대꾸했다.

《도독어른께서 이 집 어른을 뵙자고 한다.》 했더니 놀란 아이가 총총히 안으로 내달렸다.

좀 있어 중키에 불깃불깃 혈색좋은 로인이 나타났다.

그가 먼저 절을 하자 장문휴는 급히 맞절을 하며 말했다.

《처음 뵙겠소이다. 로인장에게서 가르침을 듣고저 찾아왔소이다.》

《원, 저같은것에게… 하여간 안으로 들어가소이다.》

로인은 장문휴를 방으로 이끌었다.

방에는 값나갈 기물이라고는 없고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책이 한벽에 가득할뿐이였다.

《책이 정말 많소이다?》

로인이 웃으며 대꾸했다.

《시골사람에게 책이 많으면 가난할뿐이오이다. 허- 도독과 같은 큰 어른이 모처럼 찾아왔건만 대접할게 없으니 가난한 이 신세를 탓할뿐이오이다.》

로인은 마주앉은 장문휴를 쭉 훑어보고나서 안색을 흐리였다.

《어른의 상을 보니 남다르게 큰일을 치를 기상이오나 유감스럽게도 위해주는 은인보다 헐뜯는 적수들이 많으니 마음고생을 겪게 되겠소이다. 어른은 매사에 적수들을 조심하셔야 하겠소이다.》

그 말에 장문휴는 웃고말았다.

그도 어떤 놈들이 자기를 헐뜯어대는지 모르지 않았다.

며칠전에도 왕종군이 또 알려주기를 리오구네들이 놀아대는 꼴이 여간 심상치 않으니 그것들이 함부로 무고를 할수 없도록 선손을 쓰자고 하였다.

그 선손이란 도독을 모함하는 뒤소리에 열을 올리는 리오구의 못된 짓을 조정에 알려 료동성에서 쫓아버리자는것이였다.

허나 리오구네 패거리를 강아지무리로나 여기는 장문휴라 공연한 걱정이라며 웃고말았던것이다.

《웃을 일이 아니오이다.》하는 로인의 말에 장문휴는 정색해졌다.

이런 사람의 말까지 소홀히 할수야 없지 않는가. 이 로인이 어떤 사람인가.

남달리 글공부를 많이 하여 문우들도 많고 한때는 군공을 떨치였다니 전장에서 사귄 벗들도 많을게고 글방에서 아이들도 가르치였다니 제자들도 많을것이다.

게다가 팔방미인이기에 선견지명이 있어서 남들의 길흉화복까지 알려주는것이 아닌가.

정색해진 장문휴의 긴장된 마음을 풀어줄 생각으로 책상우에서 얼레빗을 집어든 로인은 화제를 돌리였다.

《도독어른도 건강해서 오래 사시려거든 이런 빗으로 짬이 있을 때마다 머리를 빗으소이다. 그리고 우리 집에 들어오면서 보셨겠지만 수세미오이로 찬을 만들어 잡수시오이다.

사람에게서 제일 못된 병은 적(암에 해당되는 병)이라는건데 일단 이 병에 걸리면 장사가 없소이다.

이런 병을 막자면 일부러라도 의원들을 찾아다녀야 하오이다.

세상에 만병을 다스리는 명의란 있을수 없고 대개 용한 의원일지라도 몇가지 병을 고치는 재주가 있을뿐이오이다.

그러하기에 많은 의원들을 찾아다녀야 적을 미리 막는 비방을 얻을수 있소이다.》

그 말에 흥미가 끌린 장문휴는 밝은 웃음속에 로인을 바라보았다.

이런 식자를 만나기가 어디 쉬운가. 이런 사람이라야 배울것이 많은것이다.

《어서 말씀하시오이다.》

장문휴의 재촉에 책상서랍에서 침통을 끄집어낸 로인이 침을 하나 꺼내보이였다.

《이건 보통침이 아니고 당나라사람들이 보물이라 하는 우리 나라 침돌로 만든 돌침이오이다.

이 돌침은 쇠침따위와는 대비할수도 없이 효험이 큰데 이 침 한대면 학질도 떨굴수 있소이다.》

로인은 침통을 제자리로 밀어놓고 말했다.

《천한 사람이든 귀한 사람이든 누구나 장수하기를 바라는데 그 장수의 비결이 매일 먹는 음식에 있다는걸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못하오이다. 사람들은 흔히 기름진 음식이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오이다. 하치않은 음식이라도 흰색, 푸른색, 누런색, 붉은색, 검은색의 다섯가지 색이 구색이 나게 먹으면 보약이 되오이다. 례하면 흰쌀밥에 푸른 남새국, 누런 호박지짐, 검은 참깨에 말린 버섯반찬, 대추나 오미자를 달인 물 이런걸 먹으면 병없이 오래 살수 있소이다.》

들을수록 귀맛이 돈 장문휴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전장에서 흔히 볼수 있는 창상이며 부스럼, 배탈과 같은것을 다스리는 비방을 캐물었다.

아무리 퍼내도 줄어들지 않는 바다물이런듯 거침없는 답변으로 만족한 대답을 주던 로인이 불쑥 질문을 들이댔다.

《도독어른은 우리 선조들이 양광과 리세민의 군사를 쳐부신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오이까?》

장문휴는 어이가 없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그런걸 묻다니…

로인은 또 다른 질문을 들이댔다.

《도독어른은 중원이 천하의 지략가라 자랑하는 제갈량이 어이하여 위나라를 당하지 못했는지 그걸 생각해보았소이까?》

하여튼 대답은 아니할수 없어 장문휴는 입을 열었다.

《우리 선조들이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군을 쳐물리칠수 있은것은 을지문덕, 연개소문장군 같은 천하명장들이 있었기때문이기도 하지만 닥쳐올 전란을 내다보고 싸움준비를 잘해놓았기때문이오이다.

남녀로소가 무술도 닦고 성들도 든든히 고쳐쌓고 병쟁기며 군량도 넉넉히 마련해두고 날랜 사람들이 적중에 들어가 눈과 귀를 도사리였기에 적과 싸워이길수 있은것이오이다.》

장문휴는 조용히 듣기만 하는 로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위, 촉, 오 세나라로 갈라진 중원땅을 하나로 통일하여 멸망한 한나라를 재건하려는 뜻을 품은 제갈량이 위나라를 이기지 못한것은 인재를 널리 구하지 않았기때문이오이다.

그는 생전에 남달리 재주가 뛰여난 몇명의 호걸들에게 의지해서 국사를 처리했소이다.

반면에 위나라는 조금이라도 재주가 있는 사람이면 널리 받아들여 그 재주의 쓸모에 따라 관직을 주었으니 인재가 많을수밖에 없었소이다.

인재가 많으면 산도 떠옮길수 있다 하였소이다. 그러했기에 제갈량은 큰 재주가 있으면서도 끝끝내 위나라를 당할수 없었소이다.》

로인의 얼굴에 웃음이 어리였다.

《바로 그것이오이다. 도독어른이 고구려때 온 나라가 성벽을 이루었던것을 본받아 태평한 오늘에도 금시 전란이 일어날듯 싸움준비에 모를 박고있는데 그건 아주 잘하는것이오이다. 하지만…》

드디여 본론으로 넘어간 화제거리앞에 장문휴는 저으기 긴장되였다.

어떤 조언을 주겠는지.…

《허나 도독어른이 한가지만은 놓치고있소이다. 싸움준비에서 뭐니뭐니해도 선차로 풀어야 하는것은 빈부귀천을 하나로 뭉치는것이오이다. 그런데 어른은 민심을 어지럽힌 관속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몽땅 떼버릴내기를 하고있소이다.

비록 밥줄을 떼운 관속들이 고을별로 치면 몇십명 안되는것 같지만 그들의 식솔들과 친척들을 모으고 이렇게 온 부가 합쳐지면 실로 적지 않은 수에 이르는데 그들이 다 어른에게 등을 돌려대게 되였으니 그래 이게 손해가 아니오이까.

이제 등을 돌려댄 그들이 어른을 해치려 할것은 말할것도 없고 나아가서는 나라방비에도 화근으로 될것이오이다.

어른은 이제라도 그런 사람들을 무작정 떼버릴것이 아니라 주범을 치고 나머지는 잘 타이르면서 엄한 기강으로 그들이 더는 법을 어기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오이다.》

그 말에 장문휴는 고개가 숙어졌다.

지금껏 이런 조언은 왕종군에게서도 들은바 없었다.

확실히 이 로인은 안목이 넓구나. 멀리에서 지켜보며 내 부족점을 명백히 끄집어내다니…

진심으로 탄복해하며 장문휴는 수전을 입에 올렸다.

《지금 나라방비에서 약한데가 바다방비라고 할수 있소이다. 서해를 우리 수군의 세상으로 만들려 한다면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소이까?》

잠시 생각을 더듬던 로인이 자신있는 어조로 대꾸했다.

《고구려때처럼 서해를 우리 수군의 세상으로 만들자면 병선도 많이 뭇고 모든 병선들이 수전에 익숙하는 동시에 수군이 거처할 진을 잘 꾸려야 하오이다. 그런데 지금 도독어른의 휘하에 견고한 수군진이 없소이다. 든든한 성을 떠나서 견고한 수군진을 생각할수 없소이다. 고구려때 도리진은 견고한 수군진이였소이다. 그런데 지금은 도리진에조차 변변한 성이 없소이다.

도독어른께서 도리진에다 수군영을 내오고 성을 쌓는다면 서해를 다스릴수 있는 기둥을 세웠다고 할수 있소이다. 헌데 도리진은 안원부에 속해있지 않으니…》

장문휴의 마음이 흡족하였다.

그도 도리진에 안원부의 수군영을 내올 생각을 하고있었다.

도리진은 서해를 다스릴수 있는 중심에 위치했을뿐아니라 나루로서의 유리한 점을 다 가지고있었다.

이런 좋은 곳에 안원부의 수군영을 내오겠다고 상주하면 조정에서도 쾌히 들어줄것이였다.

수군진에도 성이 있어야 한단 말이지.…

오늘 이 로인을 찾아뵙지 못했더라면 아주 요긴한걸 놓칠번 했구나.

《로인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겠소이다.》

《말이 난김에 몇마디 더 할가 하오이다. 빈부귀천을 하나로 뭉쳐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오이다. 허나 그를 이루어야만 국력을 기를수 있으니 오로지 국법으로 만사람을 대하시오이다.

그리고 나라방비를 위해 도독어른이 펼치는 일을 지켜보느라니 선조들보다 더 큰것이 보이오이다. 어른께서 다시는 내 나라가 전장터로 되지 않도록 우리의 지경밖으로 내밀겠다고 했는데 정말 훌륭하오이다.

참말 그렇게만 된다면 후세토록 대장부로 그 이름 전해갈것이오이다.》

그 말에 장문휴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것이 내 필생의 뜻인데 어찌 그 길에서 물러선단 말인가.

이윽고 로인은 장문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 늙은것의 말이 소용될수 있으니 한마디만 더 들어주사이다.

소인의 예감에 어른께 좋지 못한 일이 생길것 같소이다.》

로인도 요즘 항간에서 돌아가는 장문휴에 대한 좋지 못한 뒤소리를 듣고있었다.

구름이 자주 끼면 비가 온다고 이는 장문휴를 해치려 하는 놈들이 내돌리는 소문이라 필경 화를 면치 못할것은 당연한 리치였다.

《설사 그런 일이 생긴대도 오직 나라를 위해 어른이 제할바를 하신다면 이 늙은이에게도 기쁨이 되겠소이다.》

장문휴는 더 깊이 고개를 숙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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