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편

2

(1)

 

바로 그 시각, 북방의 도시를 떠나온 급행렬차가 평양을 향해 기운차게 달리고있었다.

차창너머는 어둠에 싸여있었다.

오련희는 한잠 자고 깨여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새벽이 가까와오는 시간이였다. 렬차는 간이역을 통과하고있었다. 희미한 야외등아래 역명판이 얼핏 눈에 띄였다가 사라졌다.

평양이 가까와오는구나! 이제 두시간이면 가닿을가?

대학을 졸업하고 먼 지방에 내려간 다음에는 처음으로 올라오는 평양이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안의 손님들은 대체로 잠을 자고있었다. 옆에서는 그가 데리고가는 최금동학생이 차창턱에 코를 박은채 세상모르게 잠들어있었다. 학생의 목덜미는 땀에 젖어있었다. 태여나 처음 평양에 간다고 좋아하며 늦도록 잠들지 못하던 학생이였다.

오련희는 학생의 목에 대고 살살 부채질을 해주다가 앞에 마주앉아있는 녀인에게 눈길이 갔다. 그만이 온밤 눈 한번 붙이지 않고 저렇게 앉아 꼬박 새우고있다는데 생각이 닿은것이였다.

어제저녁 어느 도중역에서 차에 오른 손님이였다.

간편한 들가방 하나를 들고들어와 오련희앞에 자리를 잡은 그가 낯이 익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몇해전에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 답사를 갔다가 알게 된 녀자였다. 련희는 성스러운 땅에 자기의 정성을 바치고싶어 안개흐르는 이른아침이면 답사숙영소를 나서군했는데 신통히도 같은 시간에 강수영이 역시 전적지구역으로 나오군했던것이였다.

그들은 삼지연못가에서 처음 서로 통성을 했으며 그 땅에 어려있는 혁명선렬들의 고귀한 넋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렬차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두 녀자는 뜻깊은 답사의 나날에 있었던 일들을 감회깊이 추억했다. 강수영이 역시 평양으로 출장을 가는 길이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강수영에게서는 그전에 볼수 없었던 이상한것이 느껴졌다. 그 녀자는 별로 새침해보였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화기로운 대화판에는 영 관심이 없는듯 이따금 그 무슨 심란한 생각에 잠겨버리군 하는것이였다.

나이는 기껏해서 서른살이 되였을가? 아니, 그 나이까지는 이른것 같지 않았다.

그에게 동정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때문인지는 련희자신도 딱히 알수 없었다. 그는 아름다왔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지성미가 풍기였다. 그런데 왜 동정심을 자아내는것일가?

불현듯 련희의 눈앞에는 싱글싱글 웃는 사내의 커다란 얼굴이 떠올랐다. 《동무가 웃으면 내 마음도 기쁠것입니다.》 하던 그의 쾌활한 목소리…

오련희는 지금 이 녀자가 웃는다면 나도 무척 기쁠거야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침 련희는 물을 마시고싶어졌다.

차탁우에는 물을 다 마셔버린 빈병만 놓여있었다. 그래서 배낭가방안에 하나 남아있는 새 물병을 꺼내여 고뿌 두개에 부었다.

《동문 어제저녁부터 음식도 안 들고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더구만요. 이건 장수샘물이랍니다. 그러니 이 샘물을 마시면 유쾌한 기분으로 오래 살거예요.》

물을 권하며 오련희는 말했다.

그 녀자는 새뭇이 웃었다.

《고마와요.》하며 고뿌의 물을 사양하지 않고 다 마셔버렸다.

그 녀자는 빈고뿌를 내보이며 다시금 례의 그 소리없는 웃음을 아름다운 입가에 방긋이 그리였다.

《동문 참 곱군요.》

《제가요?》

오련희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고운 녀자를 보면 난 막 시샘이 나요. 내가 앙큼하지요?》

《호호, 녀자란 마음이 고와야 고운 녀자라더군요. 난 그렇게 고운 녀자가 못된답니다. 심술쟁이고 욕심쟁이니까요.》

《그건 거짓말이예요. 난 사람을 보면 알아요.》

오련희는 대화하면서도 그 녀자의 얼굴에 잠간씩 나타나군 하는 이름할수 없는 그 무엇을 보았다.

대화의 수레바퀴가 비교적 원활하게 굴러가기 시작했을 때 오련희는 친절의 감정을 담아 말을 이었다.

《동문 무슨 고민을 안고가지요? 사랑의 고민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나도 좀 알고싶군요.》련희는 모두가 자고있는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무슨 공모라도 하듯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같은 녀자들끼린데 뭐래요. 내가 나이로 보면 언니벌같은데 좋은 경험을 말해줄지 알겠어요?》

그 녀자는 놀라며 눈이 둥그래졌다.

《어마나! 거기서두 그런 고민을 겪었어요?》

오련희는 자기의 그물에 걸려든 그 녀자를 재미있게 건너다보며 옆사람들이 깨여나 듣겠다고 눈을 끔뻑해보였다.

《그것 보라요. 난 사람을 척 보면 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제나름의 사랑의 고민을 겪기 마련이예요.》

《거기선 꼭 산전수전이라는걸 다 겪어본 늙은이처럼 말하는구만요.》

《늙은이라니? 음―》 오련희는 입을 비쭉 내밀어 악의없는 힐난의 표정을 지어보이였다. 《내가 이자 말하지 않았던가요? 나한테도 그런 때가 있었다고요. 이봐요. 동무가 말하지 않겠다면 그러세요. 그런데 내가 말해주고싶은건 좌절감에 포로가 되지 말라는거예요. 그건 아주 해로운거예요. 생활은 아름다운거예요. 희망을 가지면 때로 생활이 자기를 찾아오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것은 마음이 그지없이 깨끗한 오련희자신이 체험한것이기도 했다.

오련희의 말에서 느껴지는 진정에 그 녀인이 마음의 문을 열어놓았는지 모른다.

그 녀자―강수영은 조용조용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문 나하구 이름이 비슷하구나. 난 강수련, 동무는 강수영, 꼭 자매같지 않아요?》

그것은 강수영이 고등중학교(당시)를 졸업하고 속도전청년돌격대에 입대하여 중대에 배치되여간 날 그의 소대장이 처음 만나면서 한 말이다.

강수련은 소대의 막내인 수영이를 정말 친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었다. 그는 수영의 잠자리도 자기옆에 정해주었고 돌격대생활에 인차 익숙되도록 따뜻이 이끌어주었다. 사탕 한알이라도 생기면 《눈은 감고 입을 벌려.》하며 수영의 입에 살짝 넣어주었으며 겨울에 손등이 트면 《손건사를 잘해야 한다. 처녀는 손이 고와야 해. 일이 힘들어서 손이 트는게 아니라 게을러서 그러는거야.》하며 약크림을 구해다 발라주었다.

강수영은 그런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강수련은 수영에게 있어서 세월이 흐르고 살아온 인생길을 돌아보게 될 때에 이르렀어도 고마운 마음으로 추억할수 있는 돌격대시절의 첫 소대장이였다.

《일이 힘들지? 하지만 귀중한 청춘시절을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일에 바친다는 생각을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견디여내게 된다. 오히려 시련과 난관이 클수록 그것을 이겨낸다는 긍지를 느끼게 된다. 돌격대생활을 통해 많은것을 배워라. 어려움을 제힘으로 헤쳐나갈수 있는 강의한 의지도 키우고 집단과 동지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줄 아는 정신도 자래우고… 사람은 그래야 아름다와진단다.》

소대장은 자주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자신이 그렇게 살았다.

어느날 강수영은 심한 독감에 걸리였다. 한창 얼기 시작하는 강물속에 들어가 자갈채취를 한 후과였다.

《미욱재기같은것! 누가 물속에 들어가라고 했어? 지금이 어느때야?》 수련소대장이 정말로 성이 나서 하는 말에 수영은 이불속에 몸을 묻고 덜덜 떨면서도 해죽이 웃었다.

《소대가 경쟁에서 질가봐 그랬지요 뭐.》

약을 먹고 점적을 했으나 열은 내리지 않았다. 와들와들 떨며 음식마저 전페했다.

강수영의 곁을 떠날줄 모르고 걱정하던 소대장은 그 이튿날 어찌된 일인지 점심때가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그한테 미음을 쑤어가지고온 취사원처녀가 하는 말에 의하면 수련소대장이 아침에 소대의 남자들을 모두 데리고 산판으로 올라갔다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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