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1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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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후, 김광우가 하루를 분주하게 보내고 퇴근길에 오르려는데 전학선이 그를 찾았다.

부상의 사무실을 찾아들어갔다.

《바쁘십니까?》

《늘 그렇지. 여기 와 앉소.》

문가에 나타난 김광우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전학선이 벽가의 긴 쏘파를 가리켰다.

《한청사에 있으면서도 만나기 힘들구만. 지석영동무한테 내려갔댔다더구만. 그 동문 잘있습데까?》 대학교단에 있으면서 아끼던 자기의 수제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말하는 전학선이였다.

《예. 무척 바쁘게 지내는것 같더구만요.》

《아까운 사람이 행정사업에 빠져서…》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던 부상은 광우의 얼굴색을 일별하며 근심이 자욱해서 물었다. 《얼굴색이 좋지 않구만. 어디 편치 않은데가 있지 않소? 군대때 심한 동상을 입었던 후과가 좋지 않다더니 그게 말썽을 일으키는건 아니요?》

광우는 얼굴에 밝은 미소를 피워올리였다.

《그게 언제적 일이라구요. 좀 피곤해서 그러겠지요.》

《일없으면 좋은것이구. 그렇다고 해도 너무 무리하진 마오. 그래, 대학들에 내려가서 사람들을 만나보니 어떻소?》

그사이에 있은 광우부국장의 부지런한 행보에 대하여 어지간히 알고 묻는듯 했다.

광우는 아무런 특별한 일도 없었다는듯 태연한 미소를 지어보이였다.

《부상동지도 다 아시는가본데 제가 더 말할게 있겠습니까.》

《허허, 그건 무슨 소리요?》

《전학선부상동지가 콤퓨터에 의한 원격시험을 두고 열사람중 아홉명이 반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더구만요.》

전학선은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말고 김광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니, 그건 어디서 들은 소리요? 내가 언제 그런 소릴 했다고 그러오?》

광우는 떠오르는 웃음을 누르며 짐짓 성난 표정을 지었다.

《부상동지의 따님한테서 들었지요. 이 김광우가 열명중 아홉사람이 반대하는 일을 혼자 하겠다고 뛰여다니는 우둔한 곰이라느니 돈 끼호떼라느니 하면서 동정했다던데요.》

그제서야 전학선은 알만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에 느슨한 웃음을 실었다.

《원, 동무두! 곰소리는 뭐구 돈 끼호떼는 또 무슨 돈 끼호떼요? 열명중 아홉명이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했구만. 허허, 우리 딸년이 제가 좋아하는 총각한테 뭐라고 한 소리가 부국장한테까지 들어간게 아니요?》

김광우는 그제서야 허허 하고 웃으며 악의없이 말했다.

《그러니 부상동지가 원격시험문제를 두고 무슨 좋지 않은 말씀을 한건 사실인게지요? 바빠하시는걸 보니.》

《바빠하기는 누가 바빠해? 동무는 이 전학선을 나라의 교육발전을 저애하는 무슨 보수분자쯤 된다고 생각하는게 아니요? 그것도 앞에서는 말 못하고 돌아앉아 뒤에서만 험담질을 하는 인간으로 말이요.》

김광우는 얼굴이 뻘개졌다.

《그런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실… 제 생각을 말하면…》

《말해보오. 뭐요?》

《부상동지가 정말로 콤퓨터에 의한 원격시험을 많은 사람들의 리해를 받지 못하기때문에 안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정말 신중한 문제지요. 전 옳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교육의 진보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이런저런 타산을 하지 말아야지요. 안그렇습니까?》

부상은 의외라는듯 놀라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그렇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천정에 시선을 못박았다. 늘 사색이 깃든듯 하던 그의 거뭇한 얼굴에 차츰 노여움이 살아났다.

이윽하여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부국장동무, 나는 진중하게 하고싶은 말이 있소. 부국장동무는 얼음우에 엎드려 온몸을 얼구면서 잠복근무를 서본 사람이니 나라의 미래를 두고 누구보다도 생각이 깊을거요. 그러나 이걸 생각해야 하오. 부국장동무자신이 이자 과장해서 말한 그 〈열명중 아홉사람〉이란 교육부문에서 한생을 바쳐오는 사람들이고 나라의 교육발전에 기여도 많이 했으며 지금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 누구보다 사색을 많이 하는 지성인들이라는것을 말이요. 그런데 그들이 부국장동무를 선듯 지지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락후분자나 되는듯이 말하면 되겠소?》

(옳다! 백번 옳은 말이다!)하고 광우는 생각했다. (그런데 속은 어째서 편안치 않은것인가? 나는 대학일군들을 만나고 나오면서도 이런 모순된 감정을 체험하지 않았는가! 결코 그 사람들을 락후분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론리적인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들의 애국의 감정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불만을 느끼지 않았는가. 이 김광우 남들이 한창 대학에서 마음껏 과학의 세계로 나래쳐오를 날개를 자래울 때 최전연초소의 전호속에서 조국을 지켜 청춘을 바쳤다고 저 하나만이 애국자인체 하는게 아닌가? 이 전부상도 나한테 그걸 말하자는게 아닌가?)

문득 오래전 전연초소의 그 처절했던 밤이 떠오른다. 내장이 얼어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을 이겨내야 했던 그밤! 정신을 잃으면 안된다는 그 하나의 단순한 생각만을 하며 어둠속을 쏘아보던 그밤!

《내 말에 의견이 있소?》

고개를 숙인채 한동안 말이 없는 김광우를 지켜보던 부상이 입을 열었다.

광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거밋한 얼굴에는 짙은 고뇌와 함께 무척 미안해하는 표정이 살아났다.

《아닙니다.》

전학선은 그제서야 다시금 온화한 미소를 얼굴에 실었다.

자신을 속박하라고 말해주는게 아니요. 참고로 들어두라는거요. 부국장동무가 아무렴 탈선이야 하겠소? 그래두 명심해서 나쁠거야 없지. 아마… 힘이 들거요.》

지나가는 말처럼 혼자소리로 뇌이는 부상의 마지막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메아리처럼 광우의 머리속에서 인차 사라지지 않았다.

《힘이 들거요.》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 리과대학 책임일군도 그 비슷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얼핏 떠올랐다.

이 전부상은 왜 새삼스럽게 그 말을 했을가? 별다른 생각없이 우연히 나간 소리인가? 아니면 내용이 있는 소리인데 까밝혀 말하기 힘든것이여서 그러는가? 언제나 모를 죽여서 말하지만 새겨보면 한마디한마디 사색이 깃든 소리를 하는 부상이였다.

김광우는 그의 생각을 알고싶었다. 한데 그의 얼굴에선 아무것도 읽을수 없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혹시 원격시험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까?》

《허허, 이 사람이…》 부상은 별안간 소리내여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정말 이 전학선을 금이 간 헌 바가지처럼 생각하는게 아니요? 사명을 다해서 이제는 쓸모없어진 낡은 물건짝처럼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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